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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여신모임 1기 : 7> 나의 엄마, 엄마가 된 나 그리고 모성애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1기 2017 가을

<여신모임 1기 : 7> 나의 엄마, 엄마가 된 나 그리고 모성애

고래의노래 2018. 12. 8. 22:34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 10점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한문화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일곱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원래 모성애와 폐경기, 치유를 위한 단계별 접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모성애' 주제 하나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우리를 억압하는 모성신화가 실제 엄마노릇의 고단함으로 이어지고, 엄마가 되면서 느낀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친정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모성애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시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엄마란...


 우리는 아이를 낳고 친정엄마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육아를 통해 신체적, 감정적 한계를 겪으면서 그 때의 엄마도 매우 힘들었겠구나 연민이 들기도 하고, 지금의 우리 나이이거나 오히려 어렸던 엄마였기에 성숙한 어른이라기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나의 아이에게 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스런 일을 겪고나니, 엄마도 나에게 준 상처를 어쩌지 못하고 후회하며 힘들었겠구나 이해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러면서도 엄마에게 서운했습니다.

그 때 나를 보듬어주지 않은 엄마가,

그 때 나를 이리저리 휘둘렀던 엄마가,

그 때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엄마가,

그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엄마가,

그 때 나에게 저런 말을 안 해줬던 엄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엄마가 나에게 적절하게만 대해줬어도 내가 겪는 이런 방황과 우울과 낮은 자존감은 없을 것만 같았죠.


 엄마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걸까요?

 우리는 모임벗들 중 같은 부모 아래서 성장한 쌍둥이 자매분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서 성장했지만 두 분은 같은 듯 다른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로 서로에게 부러워하는 점이 있었고 각자의 아픔도 있었지요.  언니는 동생에게 쏟아지는 엄마의 관심과 케어가 부러웠는데, 동생은 오히려 엄마의 욕구와 분리되어 당당한 모습의 언니가 부러웠었습니다.


 우리는 왜 아빠보다 항상 엄마에게 더 서운할까요? 아마도 우리 안에 엄마에 대한 기대, 엄마모습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명확한 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심리학은 어떤 면에서 모성신화를 강조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애착'이라는 용어만큼 영아기의 엄마들을 족쇄는 개념도 없지요. 아이의 발달과 정서상태는 기승전'애착'탓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 화살은 오롯히 엄마에게 향합니다. 모성신화에 갇혀 죄책감만 쌓인 상황에서, 내가 엄마노릇을 잘 못하는 건 우리 엄마가 날 그렇게 키웠기때문이라며 또 다시 나의 엄마탓으로 돌립니다. '엄마탓' 신화라는 또 다른 모성신화에 갇히게 되는 셈이지요.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받아들임


 우리는 결핍에 초점을 두고 나쁜 기억만 깊이 간직했는지도 모릅니다. 기억은 그 당시 나의 감정상태에 따라 매우 주관적으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쁜 기억들 사이를 들추어 가만가만 들여다보니 엄마가 나에게 매우 많은 칭찬을 해주며 웃어주었던 기억, 책벌레라며 나를 비웃던 엄마가 나에게 책을 선물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엄마가 완전한 어른이 아니었고 우리와 같은 취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엄마의 행동들이 같은 환경 안에서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는 가운데 우리의 기억 또한 어느 정도 재구성되었음을 인정하니, 우리가 얻게 된 결론은 결핍은 인생의 필연이라는 것이었어요.

 완벽하고 완전한 부모라는 건, 또 그런 어린시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환상과 같습니다. 결핍, 상처, 고통, 혼란은 우리네 삶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 삶에 일어난 모든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내면의 힘을 믿는다는 것, 즉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아픔들까지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죠.


 그 받아들임의 과정에서 엄마와 문제를 두고 대면하는 것은 물론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엄마에게 옛날일에 대한 서운함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엄마가 이를 받아들인 뒤에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셨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했음에도 엄마가 이를 받아주지 않았거나 이미 나약해진 엄마에게 더 상처가 될까봐 미처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리상담자들은 흔히 당사자와 문제를 직면해야만 마음 속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모두의 해결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나약할대로 나약해진 상대에게는 과거를 직면하고 재해석할 에너지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대로 '권위에 중독되지 않고 내면의 지혜를 따라 나만이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 방법은 이제 힘없는 노인이 된 엄마에게 반찬 한통, 김밥 한 줄 건네는 간단한 행위안에 있기도 했습니다. 

 

"지난 수백 년동안 많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인생의 여러 부분에서 조직적인 방법으로 훼손 당해왔다."

 모성애는 자연발생적인 것일까요? 학습되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출산 이후 뇌 자체가 변한다고 이야기하고,

<아기가 울면 엄마는? ...안고 말 건넨다.>

http://v.media.daum.net/v/20171028160103442

 


누군가는 모성은 단지 역할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아빠의 모성, 엄마의 부성>

http://v.media.daum.net/v/20161004212805370


 모성애가 본능이든 사회화든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지 못해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사회는 모성을 신성시합니다. 조건없는 무한 사랑의 결정체, 자기희생까지 감내하는 사랑 중의 사랑을 모성애로 정의하고 찬양하죠. 하지만 정작 모성애를 현실세계에서 발휘할 엄마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평가절하하면서 육아를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짓합니다.


 우리는 나의 외적인 자원(돌봄지원 인프라)과 내적인 역량(체력적, 감정적 상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없이 이상만 쫓게되는 문제를 이야기했었죠.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긍정과 하지만 한없이 부족하다는 자기비하의 양극단 속에서 엄마들은 모성애를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만 느끼게 됩니다. 


 저는 모임벗들에게 저자가 이야기하는 땅의 어머니, 무지개 어머니의 구분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살림과 돌봄행동에 능하지 않은 어머니'인 본인에 대한 합리화에 집중하느라 우리가 진짜로 다시 생각해봐야할 '인간으로서의 어머니'에 닿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니들이 겪는 죄책감의 기저에는 정서적인 면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요. 지난 번에 올린 링크글에서처럼 어머니들도 자식에 대해 무한한 사랑 외에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하는 평범한 '인간'인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어야 모성신화에서 깨어나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는 '인간'이다

 

 

 

 

 모임에서 우리가 나눈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는 출산이후 육아과정 속에서 내가 경험하는 나의 모성애라기 보다는 육아를 통해 돌아보게 된 '우리 엄마의 모성애'에 집중되었습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른 출발점에서 모성애를 바라보고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그건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과거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시절 엄마의 모습 또한 지금의 나를 이루는 내 삶의 부분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겠죠.

 위의 그림은 뒤러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입니다. 어머니를 소재로 그렸지만 무한한 사랑과 따스한 돌봄으로 대변되는 모성애가 드러나는 그림은 아니지요. 그야말로 '어머니라는 인간'의 초상인 것 같습니다. 그림 옆의 글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63세 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1514년 5월 16일 해지기 두어 시간 전쯤 사망했다.’ 라는 내용이라고 하네요.


 어머니는 때론 위대하고,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경박한 '사람'입니다. 엄마가 생명줄이던 어린시절을 지나 이제 엄마보다 더 강한 어른이 된 우리는 엄마를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성애 안에서 저의 과제는 내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되 결핍은 필연이며, 그리하여 아이들이 나에게 받을 상처도 당연하므로 아이들과의 관계가 내가 기대하는 미래가 아니었을 때도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인 어머니'로서 그 옛날의 엄마 그리고 엄마로서의 나와 화해하고 싶습니다.

 내 안의 모성애가 여전히 대부분 죄책감으로 얼룩져있다면, 외부의 틀이 아닌 나만의 시각으로 어머니라는 이름을 다시 칠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주에는 15장 의학적 치료를 통한 최대의 효과, 17장 식이요법, 18장 운동의 힘, 19장 나의 치유가 세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까지 읽고 만납니다. 책의 마지막까지는 읽는 것이죠.

 폐경기와 치유를 위한 단계별 접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기때문에 다음 모임때 이 주제를 먼저 시작한 후 진행하겠습니다. 계획했던 속도보다 느리긴 하지만 계획보다 '우리의 속도'가 중요하니, 다음 주 상황을 보고 어찌할지 생각해보기로 해요~ ^^


*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현재 6명의 모임벗들과 함께 3권의 여성주의 책을 읽으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가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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