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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여섯번째 - 일상+연구 공유서 : 기꺼이 불편하게 하라! 본문
융이라는 멘토로부터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내본다. 권위를 갖는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내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것!
# '엄마와 딸 그리고 나'
엄마와 딸에 관한 모임을 만들었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서로 분열하며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관계인 엄마와 딸, 그 복잡한 관계를 세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찬찬히 들여다보는 모임이다. 내가 만드는 모든 모임이 그러하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모임. 세가지 형식, 세가지 관점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라는 '한 인간'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셨지만 시간대가 토요일 오전이라며 난감해하시는 경우가 많다. 냇물은 토요일이 휴무이기에 평일 오전에 모임을 열었었는데, 직장다니는 분들이 참여하실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매번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책방 공간에서라면 토요일 모임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기획했는데...조금 더 기다려보련다.
www.findmygoddess.tistory.com/223
# 융을 다시 한 번
내가 선택한 연구 주제가 결국 나라는 배경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라면,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라는 개별성과 보편성의 갈래에서 지난 번에는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결국 '원형'이라는 개념에 다시 한 번 집중해보기로 하고, 융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융의 수제자,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의 'C.G. 융 우리 시대 그의 신화'. 융의 자서전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가까이에서 친밀하게 사귄 지인이자 학자로서 이해한 융과 융의 이론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다. 몇 페이지 펼치기도 전에 마치 나에게 조언하는 듯한 문장들이 쏟아졌다.
"우리는 무의식적 현상의 궁극적인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을 관찰하는 정신은 그 경험을 만드는 자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의 궁극적 본질에 관해 어떤 것을 결정짓고자 하지 말고 참으로 겸손하게 그 경험을 정리하고 자세히 서술하고자 시도할 뿐이다."
"그래도 나를 충만케 하는 것이 그리도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의 영원한 것, 나 자신에게 불확실하면 할수록 내가 이 모든 것들과 한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더욱 커졌지."
"융의 책은 독자가 그를 통해 깊은 사색을 하게 되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한 개인의 물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개성화는 복잡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생물은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그것이 된다...인간은 그의 본등적 토대에서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만약 본능적 토대가 무의식에서 발굴되어 의식에 결합된다면 이간은 또한 사회적이며 동료들과 함께 더 잘 맺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개성화는 개인지상주의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아아..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주제와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며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냐 하는 것이 전부라는 걸 말해주는 그의 언어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처음 '일상학자'모임에 거창하게도 '학자'라는 이름을, 프로젝트 내용에 '연구'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나를 짓누르는 자격지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애썼었다. 그래서 맨 처음 모임에서 박혜수 작가의 개념미술작품을 보며 느꼈던 바를 나누면서 일상학자로서의 태로를 단단히 하려고 노력했었다. 잠시 길을 잃었던 그 마음을 융이 돌려주었다. 게다가 '페미니즘의 원형'이라는 주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도와주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그에게 돌아가 조언을 구해야겠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꿈모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이 나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절실하다.
# 권위에 대한 두려움
잃어버린 권위를 쫓아 그것을 되돌리며 애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어떤 권위가 주어지면 불편하다는 것을 계속 깨닫게 되는 2주간이었다. 반장 역할은 나에게 고역이었고 어떤 그룹에서든지 귀여운 막내역할을 맡았었다. 그런데 이제 누군가에게 조언과 가이드를 하며 이끄는 역할을 해야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곰곰히 들여다보고 있다.
여성은 권위를 행사한다는 것 자체에 쉽게 죄책감을 느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행사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다. 그래서 책임질 일이 없게 완벽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계속 챗바퀴를 도는 느낌이다.
넷플릭스에서 '미스 아메리카나'라는 다큐를 보았다.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미국의 국민가수가 국민 good girl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그를 변화시킨 건 그가 감당해왔던 각종 무례함들과 성희롱이었다.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하는 착한 소녀'를 사람들은 함부로 대했다. 그래도 괜찮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몇몇 사건을 겪으며 그는 '목소리'를 찾기 시작한다.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SNS 글을 써서 올리기 전에 그과 그 주변인들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다큐는 여실히 보여준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해지고 기분나빠하고 나를 미워하는 게 두려운 마음. 그게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는 게 그를 그저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겠다. 아무도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 시간과 경험의 힘
40년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 안에서의 경험이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아주 작은 경험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도. 책방을 함께하는 20살 청년들의 미숙함, 풋풋함을 보면서 그 시절의 내가 자주 소환된다.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다는 게 기쁘고, 여전하다는 것도 기쁘다. 일상학자를 포함해서 지금 내가 살아내고 있는 모든 경험들이 앞으로의 나를 만들거라고 생각하니 그 또한 기대된다.
*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1~2번 만나 각자의 공부 과정을 공유하고 검토하며 그 결과를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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