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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네번째 - 일상 + 연구 공유서 : 중심 원형과 개별성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공부 프로젝트, 일상학자

네번째 - 일상 + 연구 공유서 : 중심 원형과 개별성

고래의노래 2020. 4. 17. 19:47

책방을 오픈했다. 이것도 나름 사업인데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어서 신경쓸 사안이 엄청나게 많다. ‘함께’ 무언가를 하며 ‘속도’를 조절하고 ‘의미’를 다듬어가는 것이 올해 나의 과제인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익혀가야겠다.



#물성의 힘

 책방으로 나가서 일한다. 시간이 고정된 건 아니지만 특정 장소로 왔다갔다하니 출근, 퇴근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까지 상상만 하던 명함도 나왔다. 현실의 공간에 머물며 책이라는 만져지는 물건을 팔았다. 오래된 형태가 새롭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물성'의 힘에 대해 요즈음 계속 생각이 머문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고,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주는 명확함들. 그런 것들이 나를 얼마나 살아있다 느끼게 하는 지를 말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육체라는 물성을 통해서만 감각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글쓰기, 독립출판, 작은서점들이 이슈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 하다.

 그렇게 보았을 때 ‘물성으로의 회귀’는 인간의 원형적 욕구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깊게 이어 생각하면 ‘진화’이야기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원형적 에너지가 ‘본래 그러함’인지 아니면 ‘진화적 산물’인지에 대한 질문말이다. 분석심리학이 원형을 이야기할 때 ‘심리적 진화’를 언급하기도 하니 이는 뗴어놓을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여성의 진화 부분에 대한 책으로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을 리스트업해 놓은 상태.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이번 주간에 읽은 책. 제주의 창조 신화인 설문대할망 신화를 바탕으로, 여신, 창조, 신화 이야기의 원형적 요소를 설명해 놓았다. 꿈, 여신, 칼 융이라는 접점이 많은 고혜경 교수님의 책이다. 창조신화에 자주 언급되는 길쌈, 배설, 불 요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세계적으로 이렇게 반복되는 요소들이 하나에서 여럿, 다시 하나로 이어지는 맥락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 여신 신화들은 확실히 한 번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 책들을 살펴보다 <제주신화>라는 책을 구매해 놓았다. <모권>은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었다. 꼭 읽어야지!



#여성과 이야기

 책방에 6명이 책방지기가 꾸리는 6개의 서가가 있다. 각자가 집중하는 주제에 대해 큐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내 서가를 설명하는 글을 쓰면서 내가 '여성' 그리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그게 글의 힘인 것 같다. 짧은 글이라도 글을 쓸 때 나 자신을 새로 발견한다. 아래가 내 서가 설명글.

 

고래, "여성, 삶을 글로 쓰다"

 

반갑습니다. '여성과 이야기'에 대한 서가를 꾸리고 있는 고래입니다. 여성과 이야기라는 단어 사이에는 '여성에 대한', '여성들간의', '여성이 쓰는' 등의 많은 연결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어떤 의미인지 발견하기위해 저는 오랫동안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형식의 여성주의 이야기 모임을 기획,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책으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책방지기의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제 서가에서는 엄마와 딸, 엄마와 아이, 여성의 몸, 여성의 글쓰기, 옛이야기 속 여성 등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책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내 안의 여신찾기> 모임기록집도 독립출판물로 입고되어 있어요. ^^

자신을 스스로의 언어로 정의내리고자 하는 모든 여성들을 응원합니다.

 

 여성을 일반화할 수 없다. 가부장제는 맥락을 걷어낸다.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여성들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해방’이라고 말했다. 깊이 동의한다. 그 개별적인 맥락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하다. 페미니즘을 이론이나 사상, 가치관 자체로 가르치지 않아도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그 개별성 가운데에서 또 하나의 중심 에너지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권위

 페미니즘은 선언적 권위가 아니라 개별적 권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의 내면의 중심으로부터 오는 권위, 나는 그것이 원형적 힘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지난 번 일상+연구 공유서에서 자기만의 방, 공간에 대한 욕구, 권리에 대한 생각이 가상공간에서의 권위로 이어지다가 진짜 공간을 꾸린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나에게는 내가 보호되고 존중되는 한계 설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의 권위에 대해 아직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청소년 때부터 끊임없이 멘토를 찾아헤맸다. 그래서 서태지에 무섭게 빠져들기도 했던 것 같다. (내면의 여성성과 화해하지 못했던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한편 누군가의 권위에 눌릴까봐 항상 불안해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권위를 가지고 영향을 미치길 바라면서도 막상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면 주춤거리게 된다. ‘권위’가 나에겐 아직 ‘권력’이고 그것은 부정적인 힘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책방지기들 중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된 청년들이 있다. 나이 앞자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의 경험으로 세대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 편견이 깨지는 지점들을 자주 만나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조직에서의 경험이 내가 더 많다보니 일을 진행하면서 이리저리 청년들에게 지시하거나 조언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조심스러워진다. PM이라는 역할이 지시가 가능한 팀장이 아니라 의견을 모으고 추진하는 사람이라 여기기에 더 그렇기도 하다.

 며칠 전에 지인을 통해 청년 잭방지기 중 한 명이 내가 그의 멘토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나의 잔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했지만, 부담이 밀려오기도 했다. 나이가 40이 넘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실수와 잘못을 잘 깨닫고 인정하는, 그런 어른이기만 해도 좋겠다.



#둘째의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원형적 에너지들

 원형적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꿈와 아이들의 그림이다. 조금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둘째의 그림에서 이런 점들을 자주 발견한다.

 

1) 여자 아슬란

여자 아슬란

오빠한테서 나니아 연대기 이야기를 듣다가 둘째가 물었다.

"오빠, 아슬란은 남자야, 여자야?"

- 몰라. 그런 거 없어.

"그럼 난 여자로 할래. 내가 여자니까."

 

크고 멋지고 힘센 존재를 나랑 가장 가깝게 느끼고 싶은 건 본능. 그게 신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기독교가 만들어낸 남성신의 이미지가 얼마나 여성을 소외시키고 있는가.

 

2) 할머니 햇님

할머니 햇님

"햇님이 과일나무에 햇살을 내리쬐네."

- 너무 햇살이 세서 과일을 이제 따는거야.

"근데 햇님 얼굴에 이 선은 뭐야?"

- 할머니 햇님이야. 할머니들 이마에 선 있잖아. 할머니 햇님이라 이렇게 햇살이 센거야. 할머니는 원래 힘이 세.

 

늙은 여인은 힘은 세다. 옛이야기에서 늙은 여인은 못된 마녀로 나오기도 하지만(특히 서양의 이야기들에서. 기독교의 영향이 클 것이다.) 주인공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지혜로운 안내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혜의 에너지를 간직한 늙은 여인에 대한 상이 둘째에게 이미 있는 걸까?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융 심리학적 그림해석>, <첫 7년 그림>들을 참고도서로 리스트업한다. 원형적 꿈도 요즈음 엄청 꾸고 있다. 블로그에 계속 기록중인데, 나 자신을 분석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이번 2주 동안 나는 중심 원형과 개별성의 관계에 집중했다. 내면이 이끄는 추동력을 곰곰히 들여다볼 때 이게 원형인지, 개인적 경험이 만든 개별성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선거관련 우편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문장들에 답답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의식하면서도 행하는 위선이 아니라, 그들의 진심이고 최고의 선의라면? 배제와 차별을 디딤돌로 삼으며 내달리는 돈에 대한 집착이 6.25 세대의 트라우마가 남긴 상흔이라면? 원형적 에너지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걸까? 그리고 나에게는?

 원형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온전함으로의 경향성이다. 개별 경험, 유전이 남긴 기울어진 마음을 끊임없이 자각시키고자 하는 에너지. 그러한 의미 안에서 자신의 맥락을 파악하라는 페미니즘은 분명 원형적 가치관이며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왜 페미니즘 원형에 몰두하는지 그 배경, 이유, 그래서 닿고 싶은 상태에 대해 구체화해서 정리해보자.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1~2번 만나 각자의 공부 과정을 공유하고 검토하며 그 결과를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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