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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세번째 - 일상 + 연구 공유서 : 공간에 대한 권리와 권위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공부 프로젝트, 일상학자

세번째 - 일상 + 연구 공유서 : 공간에 대한 권리와 권위

고래의노래 2020. 4. 6. 22:00

# 집, 방, 자기만의 공간

 둘째가 오랫동안 방을 요구했다. 거실 벽면 한 쪽을 길게 둘째의 공간으로 쓰고 있었는데, 자기도 자신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직 컴퓨터와 어른들 책이 꽂힌 책장을 거실로 내는 것은 이른 것 같아서 계속 어르고 달랬지만 이번만은 강경했다. 고민 끝에 거실 한 쪽 구석을 천으로 가려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남편이 집들이 선물도 주고, 가족 모두가 방이 생긴 걸 축하하는 편지도 써주었다. 거실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기만 했을 뿐인데, '영역이 구분되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둘째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이가 친구와 만든 난쟁이집

 아이는 산에 가면 난쟁이들의 집을 지어주고, 살아보지 않았어도 '집'이라고 하면 지붕있는 하나의 공간을 그린다. 길고양이를 보면 쟤들 집은 어딘지 궁금해한다. '나를 위한 공간'이라는 건 인간 마음 속 원형인 것만 같다.

 둘째의 모습을 보며 책장에서 <자기만의 방>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 내 공간은 이 집에서 어디일까? 내내 고민해보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가 잡힐까. 가족 간에도 '숨'이 지나갈 공간이 필요하다아아아~

 

# 버지니아 울프 언니!

 오래 전에 사두었지만 읽고 있지 않았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만의 방>이 너무나 유명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글들에 인용되는 걸 읽으면서 읽지 않았는데도 마치 읽었던 것인 느낌마저 들었었다. 게다가 제목이 주는 틀이 너무 강렬했다. '여자들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겠거니 미리 짐작했다. 칼 융의 <인간과 상징> 책을 읽으면서 칼 융을 비판했던 책을 먼저 읽고 그의 생각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짐한 것이 있었다. 그 저자가 직접 쓴 책을 읽기 전에 판단하지 말자! 그런데 또 미리 짐작을 했던 거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시간, 공간, 금전적 독립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 뿐 아니라 , 거기에서 나아가 생각의 독립을 위해 '여성은 글을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글쓰기 책들의 원조격인 거다. <자기만의 방>을 읽은 후, 버지니아 울프를 지금 만난 것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이보다 더 완벽한 타이밍이 있었을까. 다른 때였으면, 지금이 아니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울림이 날 휘감았다.

 

 

 

# 페북이라는 공간, 그리고 페북 챌린지들

 페이스북을 즐겨 이용한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연결망을 활용한 챌린지들이 예전엔 시기적으로 일어나더니 이제 일상적이 되어가고 있다. 몇 번 이런 챌린지에 지목되고 참여했었는데 이번에는 피로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챌린지가 매우 좋은 내용이었는데, 그 선의의 손길에 내 SNS 활동이 침범당하는 느낌이었다.

 

 '일상의 감사한 사진 한장 올리기' 프로젝트에 지목되었을 때는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페북지인으로부터의 초대였고, 의미도 좋았다. 하지만 이걸 거절한 권리도 내게 있다는 게 중요했고 그걸 어떻게 하면 조율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사진은 올리되 나는 누군가를 초대하지 않는 식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래도 이 챌린지를 하게 동기부여한 것이 '버지니아 울프'였다. 해당 챌린지는 여성들끼리의 챌린지로, '사랑하는 여인들' 3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초대하며 포스팅이 마무리된다. 그 여성들의 연대가 감동적이었다. <자기만의 방>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다.

 

 "때로 여성은 여성을 좋아합니다." 이 말은 동성애적 관계만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문학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와의 관계만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여성이 갖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아래와 같은 글로 챌린지를 마쳤다.

 

"'사랑하는 여인들'을 부르는 그 다정함. 이런 경험들이 제가 여성인걸 감사하게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초대하진 않지만 페북으로 연결된 '사랑하는 여인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담벼락에 가서 안부를 물으려합니다."

 

# 내 담벼락은 내 공간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다른 글들이 돌았다. 이번에는 챌린지의 탈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교묘한 심리전은 더 심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만났건, 여러분 대다수는 저를 아주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저를 좋아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페북 친구이시니 제게 호감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가 단지 '좋아요'를 넘어, 글로 소통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빵나무 열매끼리의 만남(A Meeting Between Breadfruit)"이라는 실험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누가 사진이 없는 포스트를 읽는지 알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최신 기술에 너무도 빠진 나머지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참된 우정 말입니다.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는다면 이 사회적 실험은 금방 마무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우리에 관한 댓글을 한 단어로 달아주십시오. 예를 들어, 저 하면 떠오르는 장소나 물건, 사람이나 순간에 대해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글을 복사해 자신의 페이지에 게시해... 주세요. (공유하면 안됩니다.) 그러시면 제가 찾아가 당신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댓글로 달겠습니다. 이 글을 복사할 시간이 없다면 한 단어 댓글을 달지 마세요. 그것은 이 실험에 방해가 됩니다. 페이스북 너머로 퍼진 이 이야기 처럼 누가 시간을 할애해 이 글을 읽고 응답하는지 알아봅시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히 불편했다.  "답을 쓰지 않으면, 게다가 복사를 해서 내 담벼락에 올리지 않으면 당신과 나의 관계는 생각하는 만큼 깊은 것이 아닐꺼다"라는 메세지가 페북 친구들과 나 사이를 쉽게 누군가 판단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일단 가벼운 관계와 깊은 관계를 왜 나눠봐야하는지 모르겠다. 그걸 꼭 이 실험을 통해서 말이다. '한단어'를 이야기해주는 것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다정하게 부르는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좋은 점들을 오래 생각하며 그 관계를 고마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 "당신은 이렇게 나에게 깊은 의미입니다' 표현하는 물결이라면 좋지 않았을까.

 

 이 챌린지에 참여한 지인들은 게다가 내가 매우 애정하는 분들이라 더 안타까웠다. 난 기꺼이 그 한마디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 담벼락에 복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 글에서는 그 복사 행위를 '마음을 내는' 행위로 단순화 하는 것을 넘어 게다가 이것이 '실험'이고 글을 복붙하지 않으면 '실험을 방해하니 덧글도 쓰지마라'라고 하고 있다. 이건 분명 설계자의 의도고 그 의도로 무언가 연구하고자 실험을 시작했다면 자신의 의도를 더 섬세하게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해야됐다고 본다. 이렇게 페북유저들 뒤에 숨어서 관계의 메카니즘을 관찰하는게 아니라.

 

 많은 페북유저들은 그냥 저 글을 쓴 지인들에게 덧글로 한마디를 남기고 자기 담벼락에는 옮기지 않았다. 이 불편감은 규칙을 매우 중요시하고 상대가 이미 설정해놓은 선을 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 성향과 무척 연관이 깊은 것 같다.

 

 N번방 사건 이후로도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다. 분명 그것은 경악할만한 일이었고, 근본적인 면에서 분노하고 있지만 해시태그가 어떠한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 지인들은 '사소하다 생각말고 꼭 복붙해달라!'고 써진 그 글을 복붙하고 있다. 내가 내 담벼락에 무엇을 써야하는지 계속 등떠밀리는 기분이다. 페미니즘이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권위'에 대한 문제라고 여기기에 '권위에 대한 침범'으로 내가 느낀 일들을 자세히 기록해나가는 게 의미있겠다 싶어서 계속하고 있다. 이 불편함이 무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지.

 

# 책방 오픈

 이번 2주간은 책방 오픈에 온 정신은 쏟은 시간이었다. 한 기관에서 공간 플랫폼을 제공하고 6명의 운영진이 1년 프로젝트로 운영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운영팀 PM으로서 오픈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살피고 관리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많이 힘들기도 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올 한해 내 테마이자 주제인가보다.  4월 1일이 오픈이다. 크고 작은 삐걱거림들이 모두 알찬 경험으로 나에게 쌓일 것을 알기에 많이 설레이고 기대된다. 나에게 일터, 진짜 공간이 생긴거다.

 

자기만의 방, 공간에 대한 욕구, 권리에 대한 생각이 가상공간에서의 권위로 이어지다가 진짜 공간을 꾸린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나에게는 내가 보호되고 존중되는 한계 설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책방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garden.bookshop

 

책방 책읽는 정원

책방 책읽는 정원, 서울. 좋아하는 사람 110명. '책읽는 정원'은 '함께 살기'에 대한 실험을 하는 작은 책방입니다. 민주 시민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밸류가든'과 책방이 하고 싶어 모인 6명의 '책방지기들'이 함께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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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1~2번 만나 각자의 공부 과정을 공유하고 검토하며 그 결과를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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