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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삶이라는 우리의 신화가 기다리는 곳으로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4기 2019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삶이라는 우리의 신화가 기다리는 곳으로

고래의노래 2019. 12. 14. 15:14

 [내 안의 여신찾기] 마지막 모임을 가졌습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이라는 두 책을 읽으면서 삶을 돌아보고 나를 알아가는 12주간의 여정이었어요. 두 책은 몸과 내면이라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자극했습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는 우리가 몸과 질병을 대했던 태도를 되돌아보면서 이제까지의 인생 중 우리가 치유하고 보듬어야할 부분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통해서는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여신원형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받아들이는 작업을 했지요. 마지막 모임에서는 이런 과정들 끝에 발견하고 느낀 것들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 상황은 그런 나를 어떻게 자극하거나 돌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았어요.

나를 새롭게 알아간다는 용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는 것은 즐겁고 기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버거운 관계들이 나에게 부딪혀 일으키는 감정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합니다. 그렇게 알게 된 내 모습은 이제까지 쉽게 인정하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했어요. 그 부분은 삶에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왔었기에 애써 외면하거나 억압하려 했었지요. 하지만 나를 아프게한 그 충돌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못나게만 바라봤던 나의 일부를 이제 인정하고 따뜻하게 품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나를 알게되는 과정은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관계 속에서 내가 알아간 나를 인정받고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헛헛함이 밀려왔어요. 이런 현실적 감정외에도, 나를 정의내리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구분이었기 때문에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기대고 의지했던 관계의 손을 놓고 혼자임을 오롯히 느끼는 것은 분명 기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에도 불구하고 관계에 의해 지나치게 영향을 받았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 나에게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이제까지 행동과 말 사이에 간극을 확인하면서 나를 알아가기도 했습니다. 생각과 말이 나라고 여겨왔는데, 돌아보니 행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행동이 선택이고 그 선택의 지점들이 모여 삶의 형태를 그려간다면 내가 만들어온 삶, 내가 빚어온 내 모습은 이제까지 알고 있다고 여겨온 것과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이래야 한다'는 당위에 중독되어 진짜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행동이 보여주는 나'를 잘 살피고 받아들여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알지만 변화에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나를 걸려 넘어뜨리는 답답한 매듭들을 어서 풀고 싶은 욕심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편안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했었지요. 하지만 이제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느리게 천천히 변해가는 나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었지요. 일상에서부터 작은 평화를 찾아가며 서서히 내면의 단단함을 세우면서 미래를 열린 가능성으로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임 중에 삶의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어서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순간순간 올라오는 내면의 욕구들을 대면하고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욕구의 충동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내가 그 충동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두 책들이 내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였지요. 질병의 메세지에 집중하며 몸을 바라보니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아플 필요가 있고, 이것이 삶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변화라는 씨앗을 위해 겨울을 맞이하기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서 원하는 미래로 가기 위한 변화의 방향들이 각자 달랐습니다. 관계를 벗어나 나에게 집중해야겠다 싶기도 했고 관계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겠다고 생각되기도 했지요. 관계에서의 변화뿐 아니라 나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중독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마주해야 할 두려움의 지점도 달랐습니다. 취약해진다는 것은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이기도 했지만 다른 벗에게는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이기도 했지요. 이렇게 우리가 발견한 것들은 모두 달랐지만 그것은 모두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부분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내 속도와 시간을 존중하는 법도 알아갔습니다.

 

 

 동네 개천길을 산책하다가 메마른 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못했는데 생명이 다한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던 마른 풀들은 모두 씨앗을 품고 있었어요. 마치 페르세포네의 지하 여정처럼 죽음이라고만 여겼던 겨울의 시간은 씨앗이라는 생명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영웅은 더 큰 가치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삶이라는 신화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아프게 나를 희생하는 순간들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애주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위해 내 욕구를 희생하는 과정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영웅의 희생은 이제까지의 나를 죽이고 변화를 감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나를 알아가며 쓰리고 아프게 이제까지의 나를 벗어냅니다. 그리고 내가 의지했던 손들을 놓고 차가운 바람을 홀로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지요. 그렇게 새로운 내가 탄생합니다. 마치 여신의 뱀처럼, 겨울바람 속에서 씨앗을 품은 풀들처럼 말이지요. 모호한 안개 속 같은 안타까움 속에서도 모임벗들의 이야기에서 생명과 창조의 힘이 느껴진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믿었던 나'는 변화의 시점에서 흘려보내야 할 또 다른 나일 뿐, 거짓된 나이거나 쓸모없는 내가 아닙니다. 그건 때가 올 때까지 우리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차가운 이별이 아니라 감사함이라는 애도로 다정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경직된 등에 손을 얹고 가만히 쓸어내봅니다. 이제 괜찮으니 그만 가도 된다고, 고마웠다고요.

 12주 동안 우리는 나를 죽이고 또한 살리는 아픔 속에 머물렀습니다.  때로 도망가고픈 그 버거움을 감당할 수 있게 모임 안에서 서로 응원하며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목요일만큼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었기에 모임이 끝나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으로 맞이하게 될 앞으로의 여정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지지와 격려, 공감의 시간들이 힘이 되어 주리라고 믿습니다. 삶이라는 우리의 신화가 주인공을 기다립니다. 자, 이제 내딛여볼까요.

"언젠가는 당신의 꿈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라. 새로운 세상이 당신을 통해서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5기는 2020년 9월에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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