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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4기 2019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진짜 나'는 누구일까?

고래의노래 2019. 11. 22. 15:14

 이번 주부터 3주간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함께 읽습니다. 8주간 우리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통해 몸과 감정을 살펴보면서 에너지가 정체된 삶의 지점을 알아채고자 했습니다. 이제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으며 원형이라는 무의식적 힘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쳐왔는지 자각해보고 내면의 균형을 위해 애써야 할 부분들을 알아보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꿈은 개인의 신화이고, 신화는 집단의 꿈이다."

 원형은 칼 융의 심리이론 개념 중 하나로, 인류 집단무의식에 존재하는 본능적 행동유형입니다. 융은 신체적 진화와 마찬가지로 인류는 심리적 진화를 거쳐왔으며 오랜 시간동안 쌓인 경험의 상들이 모여 무의식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화와 옛이야기 등 세계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 패턴 안에서 이러한 원형의 모습들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지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는 융의 원형 개념에 페미니즘적 해석을 가미하여 여성의 심리를 분석합니다. 그리스 주요 여신들을 '처녀여신, '상처받기 쉬운 여신,' '창조하는 여신'이라는 세 그룹으로 나누어 여성 내면의 주요한 원형상으로 설명하지요. 이번에 함께 읽은 부분은 '처녀여신' 부분이었습니다.

 융은 무의식 안의 여성성, 남성성을 아니마.,아니무스로 개념화하고 이를 전형적인 성별구분 특징으로 정의내렸습니다. 적극적인 행동, 논리적 판단력을 남성적 심리, 아니무스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수동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은 여성적 심리인 아니마로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융의 구분을 깨고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며 적극적 행동력을 보이는 여신들을 처녀여신 원형으로 제시합니다. 이제까지 배제되었던 부분을 여성의 내면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여성성이라는 에너지를 전체적으로 긍정할 수 있도록 하지요.

"이 책은 정상적인 여성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한 처녀여신 원형은 아르테미스, 아테네, 헤스티아입니다. 모두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신들이지요. 결혼한 적도 없고 남자들에게 상처받은 적도 없으며 자신이 중요시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여신들입니다. 아르테미스는 자연친화적이고 약자를 배려하며 다른 여성들과 친화력이 강한 원형으로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에게 강하게 나타납니다. 아테나는 수공예, 전쟁, 지혜의 여신으로 아버지와의 유대가 끈끈하며 논리적, 계획적이고 권력과 성공을 추구합니다. 영리 기업의 여성간부들이 떠오르는 이미지지요. 헤스티아는 가정과 불의 여신으로 가장 외적 이미지가 분명하지 않은 여신입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공간을 따뜻하고 안락하게 가꾸며 내부의 주관적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것을 충분히 즐깁니다. 타샤 튜터에게 강하게 발현된 원형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과 비슷한 여신의 원형을 꼽아보았습니다. 원형으로 나를 살펴보는 것은 이제까지의 심리이론들과 달리 딱딱하게 경계짓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상황이나 대상, 관계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던 내 모습들을 줏대없는 유약함이 아니라 적절한 원형 에너지에 집중했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었지요. 나와 맞지 않았던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특정 여신원형의 영향이라고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그런데 우리 내면에 모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고 외부의 상황과 관계에 따라 그 발현의 정도가 차이나는 것 뿐이라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요? 이 원형들을 하나씩 걷어내면 내가 나오는 걸까요? 우리는 삶이 만들어낸 총제적 모습으로서의 나를 파악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때 외부의 영향은 받겠지만 변하지 않는 핵심으로서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믿음도 었지요. 행동과 생각의 간극 속에서 우리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진짜 나'라는 것이 존재할까 의문이 들고 그저 하나의 중심 에너지일 뿐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각자 가진 내면의 과제에 따라 '진짜 나'라는 개념은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었어요.

David Hockney <Bigger Trees Near Warter>

 위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존하는 최고가 작품화가로 유명하지요. 80이 넘은 나이이지만 항상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회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예술가입니다. 위의 작품은 커다란 캔버스 60개를 이어붙인 대작입니다. 그는 하나의 초점만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사진은 오히려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서 하나의 풍경을 여러 화면으로 분할하여 찍은 사진 작업을 토대로 다초점 그림을 시도했습니다. 피카소의 큐비즘과 비슷하지만 훨씬 경험적인 방식인거죠. 그러면서 압도적이고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관람자가 실제 풍경 앞에 있는 듯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즉 호크니는 실체를 다각도의 재현과 실제적 감각 안에서 구현하려했습니다.

 2차원 평면 위에 현실을 구현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내 이어져온 회화의 과제였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과 다양한 시간과 공간의 상들을 한 화면에 넣는 것 중 어느 것이 그 대상의 실체일까요? 선이 강조되면 색이 물러나고 색이 강조되면 선이 희미해지는 대립 속에서 진실을 그린다는 건 어느 정도의 타협을 의미할까요? 사실적인 재현에 골몰하던 회화가 사진이라는 기술에 부딪혀 다시 고대 이집트 벽화처럼 언뜻 어색해 보이는 다초점으로 돌아간 것은 아이러니한 도돌이표입니다.

"인생의 중년기는 변화의 시기다."

 직업을 선택하고 일을 하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부분도 있었고 변한 듯 했지만 하나의 중심을 향해 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했어요.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에 따른 선택이었음에도 그 쪽으로 계속 나아가다보니 느껴지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건 때로는 내면의 변화이기도 했고 때로는 원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게 하는 외부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맥락의 일이어도 내가 중요시하는 것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기도 했고, 일의 내용이 달라져도 방법을 찾고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집중하는 쪽이면 모두 어렵지 않게 완수하곤 했지요. 그러다가도 일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내 효능감의 간극으로부터 갈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같은 듯 다른 이야기 속에서 겹쳐져 보였던 건 '에너지가 집중되었다가 새로운 전환을 요하는 시점이 어김없이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에 대한 인식이 쌓이고 모이면 다초점이 모인 작품처럼 나라는 실체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정-반-합이라는 갈지(之)자를 반복하면, 또는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다보면 점점 좁아지는 하나의 골목에 닿을 수 있을까요?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처녀여신들의 강력한 자기 확신은 우리 모두가 부러워한 부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찾고 싶은 '진짜 나'의 모습은 아마도 그러한 자기확신의 원천일 것입니다. '강같은 사람이고 싶다'는 한 모임벗의 말씀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좁아지고 굽이치고 때로 폭포로 떨어지는 격정들을 통과하고 나면 그 과정을 모두 기억하지만 평온한 강물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먹고, 살아가고, 순간순간 대처하는 상황들의 반복 속에서 내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건 '진짜 나'를 같이 이야기하는 이런 시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음 주에는 관계지향적 여신들인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p306)까지 읽고 만납니다. 지금 우리의 생애주기를 반영하는 여신들이 어떠한 에너지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아요.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 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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