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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살아가고 상처받고 또 살아가고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4기 2019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살아가고 상처받고 또 살아가고

고래의노래 2019. 11. 8. 20:42

 [내 안의 여신찾기] 일곱번째 모임에서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 '치유를 위한 단계별 접근'을 읽고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문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치유를 위한 단계별 접근은 저자가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에 대한 개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치유는 몸과 감정의 메세지에 귀기울이고 과거를 파헤치면서 내가 어떤 믿음 안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내면의 지혜를 인정하라고 이야기하죠. 그리고 용서를 통해 자유로워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저자가 말한 치유의 단계 중 어디가 특히 마음에 걸리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문장들 사이에 삐걱거리며 끼어서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뜻일 수도 있지요. 과거를 떠올리는 것, 몸과 함께 하는 것 등 다양한 부분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많은 모임벗께서 힘들어하신 부분은 '용서'에 대한 것이었어요. 

"용서를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철저히 느껴야 한다."

 저자는 용서를 '삶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경험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합니다. 분명 용서는 그 대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아프게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끊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테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용서 이후의 편안함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과해야하는지 간과한 채 성급하게 용서에 닿으려고 합니다.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해야 가능합니다. 고통의 과거를 직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그 '사람'과의 직면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내가 나를 치유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던 불안한 어린 날이 서글프고, 
그 모습을 나의 아이에게 반복하는 내가 두려웠습니다. 
'무심했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내가 무심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죄책감이라는 뿌리깊은 정서가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기도 하고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렇게 우리는 풀어내고 싶지만 자꾸 걸려 넘어지고 있는 부분을 용기있게 바라보았습니다.

"남성 앞에서도 거짓 없이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는 여성만의 모임이 필요하다."

 저자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문제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개별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겹쳐지는 교집합들을 확인하면 나를 고립시키던 나만의 비밀은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 이야기들 속에서도 사회문화적 영향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남성이 가정 안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게 평범했던 시대, 그러한 폭력이 '집안일'로 치부되어 공권력도 개입하지 않고 묵인했던 분위기, 아이들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와 성숙한 자존감을 갖지 못했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투사했던 삐둘어진 잣대들이 아프게 겹쳐졌습니다.

출처 :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919 / 김성진 기자

 위 조각은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자코메티는 죽음에 대한 여러 경험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죽음과 삶의 본질, 그 사이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주제에 집중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듯한 사람이 걸어갑니다. 거칠은 그의 몸은 삶이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듯 합니다. 덜어낼 것, 헤어질 것과 작별하면서 자기자신이라는 본질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남을 것만 남기며 이어지는 것은 결국 또 걸어가는 것,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는 우리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살아있습니다. 물론 때로 불안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꼈지요. 우리는 출산의 진통처럼 무언가 잘 제대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독립을 향한 변화 속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아닐까요. 나를 자각하게 해주던 관계와 상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홀로 바라보며 나를 만나는 중이라면, 독립의 자유로움은 쓸쓸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 나는 ***를 겪은 사람이야.'라는 말은 삶의 폭을 넓혀주지만
'이겨냈다'는 말은 오히려 삶을 제한할 수 있다."

 혼자 생각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른 감정을 불러왔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말하니 나에게 있었던 그 일들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를 그것을 겪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 남은 상처의 흔적들은 안타까왔지만 희망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모임벗들은 내면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계속 귀기울이며 방향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하루를 행동과 감정, 욕구로 살펴보는 일기를 쓰기도 했고 
떠오르지 않는 무의식과 만나기 위해서 카드그림을 매개로 한 이야기모임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마주한 채로 용서의 말을 읊어보기도 했지요. 
융은 인간이 경험의 총합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아프게 한 그 경험 또한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겨내거나 지워야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해석'해야할 무언가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는 생동감 넘치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삶을 온 몸으로 즐기던 그 시절의 나.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입니다.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건 허상일 수 있습니다. 다만 내 삶의 여정에서 나의 변화가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고 미래를 꿈꿀 때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걸어갑니다. 살아갑니다.

 힘들고 아프고 그러면서 큰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 중간중간 무겁게 내려앉던 침묵까지 함께 안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내 아픔이 전체의 일부라는 깨달음은 내 아픔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석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마무리합니다. 8주동안 함께 했던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것들을 나눠보아요.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 )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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