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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새로운 나'의 탄생을 위한 진통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4기 2019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새로운 나'의 탄생을 위한 진통

고래의노래 2019. 10. 25. 14:37

 [내 안의 여신찾기] 다섯번째 모임에서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 '생식력'과 그 생식력의 경험인 '임신, 출산'에 대해 읽고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보내는 생식력은 인류를 지속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그렇게 인간사회의 바탕이 되는 힘이기에 여성의 생식력은 역사 속에서 신비롭게 추앙받기도 하고 과격하게 통제되기도 했습니다. '여성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집단'의 힘으로 여겨져왔지요. 그래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에게 생식력은 어떤 의미인지 말이죠.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면서 내가 알게된 사실은 여성에게 성적 자유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읽기만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문장입니다. '누구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성적 관계를 가질 지에 대해서 여성들은 '스스로 선택'을 하고 있는걸까요? 여성이 자신의 성적 에너지를 생기의 근원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이야기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는 생식력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한 생명을 내 삶으로 들어오게 하는 결정에 우리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을까요. 그리고 그 경험은 나에게 '생식력'을 어떤 기억으로 남겼을까요.

 일찍부터 생식력을 갖고 있는 것을 기뻐하고 임신, 출산 경험을 기대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모임벗들에게 어른이 되어서 아기를 낳을거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미래여서 구체적으로 상상한 적도, 의식한 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임신을 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임신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우연이었든 필연이었든 임신, 출산의 실제 경험은 예상치못했던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었습니다.

 임신을 쉽게 하다보니 임신이 힘든 주변인물들에게 의도치 않게 우월감을 느끼며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아이를 낳자마자 아들에 대한 압박을 받거나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되었다는 주변의 안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생식력이 여성의 자존감과 연결되는 방식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이 땅으로 보내는 경이로운 능력으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성을' '얼마나 쉽게' '아무 탈없이' 낳았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사회적인 공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저출생이 문제라며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지만 정부는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고 결혼한 부부에게만 지원정책을 펼칩니다. 여성들의 생식력은 너무나 빈번히 오랫동안 대상화되었기에 여성들은 그 자체를 나의 능력으로 축복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임신은 자기 자신과 자기 내면의 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이다."

 임신과 출산은 나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내 생식력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평이하게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나의 힘을 확인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의 연결감을 생생하게 경험하기도 했습니다.임신을 확인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비빔밥을 먹으며 행복에 빠지기도 했지요. 또한 내 의지와 노력대로 결과를 도출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어쩌지 못하는 흐름과 힘에 나를 맡기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임신 출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후, '보다 적극적인 선택이었고 보다 신중한 과정을 거쳤다면 달랐을까?'하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슴아픈 이별의 경험이기도 했어요.

출처 : http://www.daljin.com/column/15808

 위 그림은 정정엽 작가의 'red bean'이라는 작품입니다. 정정엽 작가는 씨앗, 싹, 콩 등을 소재로 여성의 생명력과 창조력,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합니다. 피처럼 빨간 팥들이 가득한 화면에서 쿵쾅되는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싹을 품은 팥들이 모여 수근수근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대한 생명의 구멍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입니다. 작가가 오랜 시간동안 팥 하나하나를 모두 손으로 그렸다고 해요.

 이 그림을 보며 저는 모임에서 나누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기쁘고 유쾌한 이야기들, 한숨이 쉬어졌다가 다행이라며 마음이 쓸어내려지는 경험들 그리고 아프고 시린 마음까지요.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경험 안에는 그 경험을 통과한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흔드는 '위기의 경험'들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다가 내가 어쩌지 못하는 흐름을 받아들이는 일이었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로서의 고통을 경험한 일이었지요. 극적인 상황에서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며 자아가 분열되는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마음이 열리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변화하는 과정으로서 그 경험은 '내 자아의 위기'였습니다.

"생식력과 관련된 분야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여성이 생식력을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느끼려면 여성을 둘러싼 시선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식주기를 아는 것은 힘을 부여받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나의 생식력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이지요. 나의 주기를 정확히 알고 미리 임신을 계획하는 것은 분명 존재를 환대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갑작스럽고 우연한 잉태도 우리에게 우리에게는 선물같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이 기쁨이 아닐 경우 여성이 겪게 되는 갈등과 아픔은 꽤나 오래 여성 자신과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생식력을 나의 근원적인 창조력으로 받아들이고 생식주기의 흐름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어떨지 상상해봅니다. 여성들이 생식력에 씌워진 굴레를 벗기고 당당해진다면 어떨까요. 생식력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여성들을 줄세우고 비교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여성들이 손잡는다면, 그래서 잉태는 축복하고 노력은 지지하며 안타까움과 슬품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여성들은 서로 연결되고 생식력을 거대한 힘으로 느끼면서 그 경험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을 나눠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함께 아프고 아파하는 과정에서 저 또한 치유의 과정 중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저 자신을 토닥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통이라는 '순조로움의 고통'을 경험한 것처럼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새로운 내'가 탄생하기 위한 진통이 아닐까요. 그 진통의 과정에서 곁에 머물러 어깨를 감싸주는 서로의 둘라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모성애'와 '폐경기' 부분을 읽고 만납니다. 엄마노릇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엄마의 엄마노릇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들 그리고 엄마를 통해 그려보는 나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아요.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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