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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진실이 되도록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 여섯번째 모임에서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 '모성애'와 '폐경기'부분을 읽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모성애와 폐경기는 왜곡된 허상이 덮입혀져 내 삶 안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힘듭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공식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모성애를 '완벽한 사랑'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숭고한 자기희생과 무조건적인 애정이며 아기를 낳는 순간 샘솟는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겨지지요. 하지만 우리가 아기를 낳은 순간 경험한 감정들은 다양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있을 때는 흥분감에 머리가 멍했고, 아기와 떨어져있어야 할 때는 불안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막연히 두렵고 갑자기 요구되는 엄마 역할에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출산환경과 병원 시스템의 차이에서 오는 다른 감정도 있었지만 가장 강하게 느꼈던 건 미처 모성이라는 내 직관에 연결될 틈도 없이 쏟아져들어오는 '모성애 강박'이었습니다.
"중독된 사회구조에서 어머니 노릇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좌절은 수유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 젖양이 충분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에 불안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때문에 분유를 먹이게 되면 죄책감이 몰려왔지요. 아기와 나만의 리듬을 찾기도 전에 시작된 '4시간 간격 수유 신화'는 수유환경이 적절한지에 대한 자기검열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가슴이 터질듯한 사랑을 느끼기기도 했지만 반대로 파괴적 분노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표현은 물론이고 이런 감정 자체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수많은 육아서들이 정답을 제시하지만 결국 우리의 엄마됨은 희생적 사랑과 치열한 자기욕구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험에서 모성애는 저절로 샘솟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저자는 경직된 어머니상에 대한 틀을 깨는 정의로 '땅의 어머니와 무지개 어머니'를 제시합니다. 땅의 어머니는 아이를 잘 양육하고 돌보는 어머니이고 무지개 어머니는 따뜻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어머니라고 설명해요. 그런데 이 개념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을 일으켰어요. 모성에 대한 계속되는 분석과 틀지우기의 연장이라는 생각에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무지개 어머니'로 스스로를 구분하는 저자의 자기합리화같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내가 어떤 어머니인가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 아이들이 느낄 부분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런가하면 어떠한 모습이어도 모든 엄마들에게는 나름의 모성애가 있다는 저자의 응원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진화적으로 보았을 때 인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든 과정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며 가족 단위가 쪼개지면서 육아는 당사자들만의 일이 되어 버렸지요. 게다가 여러 연구들이 양육태도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분절된 사회에서 이 연구결과의 의미는 공동체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부모, 특히 엄마에게 그 모든 책임이 쏠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남자들이 양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문화는 엄마는 물론이고 아빠에게도 해롭습니다. 부모됨은 나의 사고체계가 무너지면서 이제까지의 내 자아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찰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죠. 부모됨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는 건 이러한 기회를 잃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우리 사회를 받치고 있는 삐뚫어진 두 기둥이 가부장과 모성애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어요.
우리의 엄마됨은 내가 엄마로부터 받은 양육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머리로는 아니라도 해도 결국 내가 경험한 그대로 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요. 내가 원했던 사랑과 엄마가 주었던 사랑이 달라서 어긋난던 아쉬움, 여전히 그 사랑과 인정이 목마른 내 안의 어린 나, 근원적인 사랑의 힘이 아니라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반영으로서 행동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사이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내가 자랐던 시대에 받았던 사랑의 방식이 아이가 자라는 환경에는 맞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는 거라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랑은 어떠한 모습일지 고민이 되기도 했어요.
위 사진은 윤석남의 핑크룸입니다. 윤석남은 여성과 여성의 삶을 작품에 녹여 표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예술가입니다. 미술에 대한 제도교육 경험없이 40살에 예술활동을 시작했지요. 결혼하고 자식낳으며 가정주부로 지내면서 남이 보기에는 하나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지만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욕구가 차올랐다고 합니다. 그 마음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서예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흉내내는 것이 아닌 자기표현에 대한 강한 욕구를 발견하고 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됩니다.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어머니'라는 주제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10년간 어머니의 삶을 작품에 녹여내다가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핑크룸 시리즈라고 하네요. 그 변화는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해요. 화려하게 꾸며졌지만 가시돋힌 의자가 바깥의 틀과 내면의 욕구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숭고하게 추앙받지만 죄책감이 강요되는 모성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폐경기라는 단어에서 오는 단절과 끊어짐의 부정성을 바꾸기 위해 완경기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윤석남 작가를 보니 '중년은 자기 표현의 맹렬한 욕구를 다시 경험하게 되는 때'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와 닿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그러한 욕구를 경험하면서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시기로 중년을 정의내리면서 완경 또한 그 속의 한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완경기를 경험하는 것은 문화적 환경, 기대감, 가족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이야기하면서 처방이 필요한 결핍 상태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완경을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요. 완경증상 중 불편한 부분에 대해서 의학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완경 자체를 치료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폐경기와 노화를 새롭게 정의할 선구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완경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긍정적인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월경이 멈추고, 아이들이 떠나가는 것을 원치않는 임신 걱정과 양육 의무로부터의 해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완경을 상실의 과정이 아니라 진짜 자유의 시작으로 보면서 완경기의 우리를 그려본다면 어떨까요?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 다시 시작하는 사랑, 내가 계획하는 나의 시간과 같은 미래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평균수명은 길어지는데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자식들에게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일 때 국가의 복지 시스템이 나를 지탱해줄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어요. 완경 이후의 이런 긴 삶은 인류에게 다가오는 숙제입니다. 노년이 홀가분한 가능성일 수 있으려면 우리가 변화를 이끌어내야할 지점이지요. 노년의 삶은 새로운 기준으로 다시 정의내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켈트족 문화에서는 나이 든 여성을 씨앗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원시문화에서는 완경 이후의 여성들은 피의 지혜를 더이상 흘려보내지 않고 간직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완경기 이후의 여성의 역할은 진실과 지혜로 공동체에 긍정적인 씨를 뿌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언가가 멀어지면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옵니다. 완경은 잃을 것이 없을 때 생기는 용기이며 자연이라는 엄마로부터의 독립이고, 그래서 떨리고 불안하면서도 새로운 기대를 품게되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바깥의 기대가 아니라 내면의 지혜와 연결된다면 모성애와 완경기는 우리에게 어떠한 경험인지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 바로 세우는 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결국 그 시간, 그 상황에서 모두 최선이었지만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나누었지요. 내가 받은 상처에 몸서리치며 아이에게만은 되물림하지 않겠다 다짐하기도 했었지만 그 또한 중독된 완벽주의일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자기 안에 모성과 계모성이 모두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계모는 옛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독립으로 나가게 하는 상징입니다. 삶의 여정은 상처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품으며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최선 속에서 상처받을 아이들도 각자의 힘으로 상처를 잘 담아내길 바랍니다. 내면의 지혜가 말하는 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상처로부터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힘이 아닐까요.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 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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