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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지금 나에게 충실한 일이 울음이라면, 기꺼이 본문
이번 주에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의 마지막 여신을 만났습니다. '창조하는 여신 아프로디테'입니다. 아프로디테는 사랑, 관능의 여신으로 유명하지요. 저자는 이 특성을 '연결'과 '욕구'로 해석하면서 '창조'로 이어갑니다. 아프로디테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처럼 항상 어떤 관계 안에 있으면서도 '처녀여신'들처럼 자신의 욕구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한번도 상처받거나 희생된 적이 없지요. 이러한 중심잡힌 관계맺기와 소통을 저자는 '아프로디테 의식'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 의식 안에서 심리적 성장이 일어나기도 하고 생명이 잉태되기도 합니다.
아프로디테 그리고 사랑
우리는 이런 아프로디테 원형이 나와 얼마나 연관되게 느껴지는지, 우리 삶에 영향을 준 적이 있는지 이야기나눠 보았습니다.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가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고 상대에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태도때문에 여러 번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지요. 이렇게 이건 진짜 나다!라고 느끼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전혀 공감하지 못한 분들도 계셨어요. 성적 욕구를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고 짜릿한 희열보다는 동요없는 평온함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삶의 활력과 생기를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관계 속의 소통과 연결감 안에서, 계획대로 진행되는 업무 속에서 또는 선한 영향력으로 기여했다는 뿌듯함 속에서 느껴졌어요. 각자 다른 모습이지만 이것은 모두 '창조'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창조는 변화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아프로디테는 여러 신화 이야기 속에서 변화의 동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나 여성들의 내적 성장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프시케에게 과제를 내주어 신이 되는 여정을 시작하게 하고, 아탈란테의 배우자 시험에 끼어들어서 결혼이 이루어지도록 하지요. 여성들에게 사랑이 큰 변화의 힘이라면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요? 우리는 같은 사람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증오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해'라는 말은 진짜 상대를 향한 것일까요? 혹시 그 당시에 상대에 감응하는 나의 생기에 대한 고백은 아닐까요.
한 모임벗께서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 없다는 생각에 결혼이 두려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마주보고 서로를 확인하며 변화, 발전한다면 같은 사람이어도 계속 새로운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얄궂게도 대부분 나랑 전혀 다른 기질의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습니다. 그건 우리 내면에 통합해야 할 부분에 대한 투사였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배우자가 우리를 변화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때로 거칠고 성근 방법이더라도 말이지요.
아프로디테는 꿈을 키워주는 사람의 원형입니다. 누군가 아프로디테 의식으로 꿈을 지켜봐주면 그 꿈은 현실로 창조됩니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뮤즈가 있었다는 것이 아프로디테 의식의 힘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는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하지요. 우리가 배우자와 경험하고 싶은 것은 아프로디테 의식 속의 소통이라는 사랑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의식 안에 있을 때 활력 속에서 두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사랑은 활력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아프로디테 여성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프로디테 의식 속에서 느껴진 순간적인 환상이 아니라 상대방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신이 아닌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과 희생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주인공은 스스로 선택하며 그 선택이 가져오는 기쁨, 즐거움, 고난과 슬픔을 모두 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희생자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요.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우리는 자주 희생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취급받느냐에 상관없이 자아감각을 유지한 예로 폭력적인 상황에서 영혼이 몸과 분리되는 듯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영웅이야기의 속 역경처럼 여기고 자신을 신화의 주인공으로 상상한 경우도 들지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내면이 몸과 분리될만큼의 고통으로 강조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는 스스로 주인공일 수 있도록 한 '본능적 결단'으로 해석합니다.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겉으로는 유약하고 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프시케가 에로스를 찾으며 과제를 수행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콩쥐팥쥐'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콩쥐는 새엄마가 내준 과도한 과제 앞에서 통곡하며 웁니다. 그 소리에 검은소가 나타나 콩쥐를 도와주지요. 분석심리학에서는 이 통곡을 신을 부르는 '완전한 내맡김과 순수한 열림'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언뜻 연약해보이는 울음이 자신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힘이기도 한 것이지요.
저자는 삶의 주인공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곤경에 처했음을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강력한 힘에 호소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해결이 나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 상황에 머물며 '무언가 나타나 구해줄 것'이라는 원형적 상황을 기다리는 것을 융은 '선험적인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나보다 더 큰 힘을 믿으며 문제상황과 더불어 기다리는 것은 <여성의 몸~>에서도 강조했던 부분입니다. 이것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성과는 다릅니다. 모순 속에 자신을 두면서 의식을 분명히 하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장을 토해낼 듯 한 오열이 주었던 힘과 위로를 경험한 적이 있었지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서 기다렸을 때 필요한 인연이 다가오거나 기회가 생기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 속에서 우리는 나의 핵심가치를 찾아보고 내가 계발할 필요가 있는 여신원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듯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아니기도 했고 지금 내가 행동으로 쫓는 가치보다 추구하고 싶은 가치가 더 강하게 드러나기도 했어요. 복직을 앞두고 지적인 전략의 여신 아테네 원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헤스티아 원형을 계발하고 싶지만 아직은 깊게 그 원형에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었어요. 내면의 강한 다른 원형들을 보완할 수 있는 수용적인 페르세포네를 활성화하고 싶어졌고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헤라 원형이 배우자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졌지요. 좀 더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올라오며 아르테미스와 아테네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원형을 계발하도록 배우자와 자녀들이 돕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새로운 나, 혹은 잊어버렸던 나를 다시 발견하면서 삶의 과제를 조금씩 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뱀의 힘을 다시 선언하라
저자는 우리에게 '뱀의 위력'을 다시금 선언하라고 소리칩니다. 뱀은 기독교 안에서 악의 상징이 되기 전에 여신들의 힘을 상징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여러 번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뱀이 여신들의 생명력, 창조성을 상징한다고 여긴 것이지요. 데메테르를 비롯해서 많은 위대한 여신들이 뱀과 함께 조각되고 숭배되었습니다. 뱀의 위력을 다시 선언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권위의 감각을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가부장제에 억압되고 무시된 여성 내면의 힘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위 그림은 천경자 화백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라는 자화상입니다. 천경자 화백은 꽃과 뱀, 여인의 화가로 유명하지요. 천경자 화백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35마리의 뱀을 사실적으로 그린 '생태'라는 그림을 통해서였습니다. 힘들고 우울한 날을 보내던 중 뱀의 환상을 보고 뱀집을 찾아가 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 삶의 활력을 다시 되찾게 되지요. 이 자화상은 가장 암울했던 22살 당시의 화가를 그린 것입니다. 그 때 첫번째 남편이 죽고, 몇 년 지나 전쟁통에 동생도 죽습니다. 의지했던 사람들은 죽고 가난한 살림에 두 아이도 부양해야 했습니다. 그 때 다시 세상으로 고개를 들 수 있게 한 것이 '뱀 그림'이었습니다. 슬프고 힘든 그 시절의 그가 뱀을 머리에 두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그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삶의 바닥에서 허물을 벗고 거듭났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던 건 아닐까요.
저자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처한 상황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에 기반하여 주인공으로의 선택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 주변 상황은 어떤지, 지금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알게된다는 것은 기쁜 깨달음이기도 하지만 감당해야 하는 두려움이거나 때론 불편한 긴장이기도 합니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혹은 주기에 따라 내면의 원형은 다르게 작용했습니다. 오랫만에 전화한 누군가에게서 '여전하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쁘고 위로받는 느낌이었지요. 예전의 나와 다른 생기없는 모습이 퇴보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지하세계에 처음 들어선 페르세포네처럼 강력한 힘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 맞이하는 하강의 상태는 아닐까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나를 만나는 것은 분명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를 인도할 것입니다.
모임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나를 드러내면서, 소통하고 깨닫는 아프로디테 의식을 매번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나를 이해하고 다른 벗의 변화를 다정하게 살폈지요. 정말 잘 할 수 있을 꺼라고, 반드시 그럴꺼라고 미래를 서로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들고 모호한 안개 속에서 견딜 수 있는 건 이렇게 모임벗들의 따뜻한 눈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 모든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보겠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충실한 증거가 울음이라면 기꺼이 울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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