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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페미니즘 더하기] 상처입은 내가 여기에 있도다 ! 본문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4부에서는 분노와 용서, 비밀과 상처 그리고 삶의 어둠을 통과하는 야성의 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창의적이고 내면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분노는 발산하고 해소해야 할 응어리입니다. 분노에너지를 새롭게 변형시키지 못하면 그 상처가 계속 되풀이되면서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여인을 구한 반달곰'은 분노를 처리하고 치유하는 과정에 대해 보여줍니다. 전쟁에서 심하게 다쳐서 돌아온 남편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아내에게 매몰차게 대합니다. 남편이 걱정된 아내는 무당을 찾아가 방법을 물어보고, 무당은 반달곰의 목털을 구해다주면 약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지요. 곰을 찾아 험한 산길로 들어선 아내는 이리저리 긁히고 떠도는 영혼들에 놀라고 눈보라에 몸이 얼어붙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고비를 넘을 때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곰의 동굴 앞에 도착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애쓴 끝에 간절하게 요청해서 곰의 목털을 얻은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무당에게 찾아가지만 무당은 털은 촛불에 그을려 날려보내지요. 그러면서 곰털을 가져오기까지의 그 여정에서 가졌던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 질꺼라고 알려줍니다.
"깨달음은 환상에서 벗어나 현상 아래 숨어있는 본질을 이해하는 순간 찾아왔다."
이야기에서는 분노하는 남편과 치유하는 아내로 역할이 구분되어 나오지만 우리는 이 모두가 한 사람의 내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분노의 에너지 전환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망상을 극복하고 자비롭게 보듬으며 때로 애도하는 과정이 내면에 필요하지요. 분노는 여성들에게 가까이 있지만 친숙하지 않은 감정입니다. 여성주의 심리학에서는 여성들의 심리 증상 속에 남성지배에 대한 무의식적인 분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가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하지요. 분노는 여성스럽지 않은 감정으로 여겨져서 억압되어 왔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 '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게다가 분노는 자주 관계의 균열을 가져오는데 여성들은 이것을 견디기 힘들어하죠.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분노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분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또다른 환상을 지적합니다. 분노를 풀어내면 나약해질꺼라는 두려움과 분노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꺼라는 무력감 등이 그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경험으로 터특한 실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분노해야 했던 때에 분노하지 못했던 많은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성희롱과 성추행은 관계와 장소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가해자는 선생님, 선배, 친척이기도 했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이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공장소, 교실, 집처럼 장소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무서워서 움츠러들었고 때로는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주변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그 정도는 귀여워서, 예뻐서 한 행동'이었다거나 '알아서 그 사람은 피하라'는 것이었죠. 우리의 부당한 경험에도 침묵하는 세상은 심지어 내가 스스로 이런 일을 자초한 건 아닌지 검열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나 자신을 지키라는 1차적인 메세지이고 적당한 때에 화를 발산하는 지혜 또한 필요합니다. '못된 남자와 오아시스'이야기는 바로 그런 적절한 분노의 발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못된 성미때문에 주변에서 외면당한 한 남자가 자신의 성질을 고치기 위해서 사막에서 행인들에게 물을 퍼주는 수행을 시작합니다. 몇 년동안 화를 내지 않고 지내오다가 자신이 퍼주는 물을 보고 코웃음을 치는 행인에게 분노가 치밀어 그를 살해하죠. 그런데 그는 임금님을 시해하러가던 자라는 게 밝혀집니다. 그의 분노가 나라를 구했던 것입니다. 사소한 논쟁 중에 상대를 살해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빈번한 요즈음이기에 이 이야기가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삐뚫어진 자의식은 모든 쓴소리에 과도한 분노로 반응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일 때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의 메세지를 파악하고 건강하게 발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분노를 발산하고 스스로를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창조적인 행위이다."
저자는 분노가 오래되어 우리의 창조적 야성과의 연결을 막는다면 용서하고 평안을 되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용서입니다. 저자는 용서는 단번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완료되지 않는 필생의 작업일 수 도 있다고 말하지요. 중요한 건 용서를 시작하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상처주는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힘든 시간을 거쳐 상대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지만 이러한 '포기'를 용서라고 할 수 있는건지 헷갈렸어요. 이렇게 우리 내면이 보호되는 상태 이후에는 상대에 대한 순수한 동정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분노의 치유와 용서를 위해서 먼저 문제에서 잠시 분리되어 내면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대면하면서 망상을 털어내고 나를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애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요. 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비밀'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무덤을 뚫고 나온 금발 아가씨'는 비밀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가씨의 금발 머리카락이 무덤을 뚫고 계속 나와 금빛 갈대를 자라게 했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체포되도록 진실을 드러냈다는 이야기이죠. 저자는 비밀을 오래 두면 심리의 많은 부분이 마비되며 감정이나 행동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여성에게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비밀들이 많지요. 비밀은 영혼의 치유를 막습니다. 본능을 지키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몇번이라도 반복해서 비밀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머뭇거릴 우리에게 '상처는 압력을 흡수하는 능력 면에서 피부보다 강하다.'며 응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상처족'임을 자랑스럽게 밝히라고 소리치지요.
"새 길을 떠나는 이들은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경험한다."
'손없는 아가씨'는 이렇게 삶의 하강과 상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입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 힘들어하던 방앗간 주인은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악마와 거래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방앗간 집 딸은 손이 잘리게 되고 집을 떠나 거지로 살게 되지요. 어느 날 왕의 과수원에서 배를 따먹던 딸은 왕의 눈에 띄여 왕비가 됩니다. 왕이 전쟁 때문에 먼 길을 떠난 사이 왕비는 아이를 낳았는데 이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 악마가 끼어들지요. '왕비를 죽이라'는 악마의 메세지를 왕의 전갈로 오해한 왕의 어머니는 왕비를 아이와 함께 멀리 도망가게 합니다. 숲속의 한 객사에서 머물게된 왕비는 오랜 시간이 지나 왕와 재회하는데 왕비의 손은 그 사이에 다시 자라나 있었습니다.
손이 잘린 채 집을 떠나 왕비가 되었다가 아이와 함께 다시 쫓겨나고 그러면서 손을 찾게되는 이야기는 독일 말고도, 러시아, 일본, 우리나라에까지 세계 곳곳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손이 잘린 것', '2번의 방랑'과 '왕의 방황', ' 다시 나는 손'이 주요 화소로 등장합니다. 저자는 손이 잘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철저하게 혼자 힘으로 독립해나가야 하는 내면의 성장을 위한 배경이라는 것이지요. 결혼하여 낳은 아이는 새로운 자아의 탄생을 상징하지만 궁궐 안에서 왕비는 이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두 번째 시련이 다가오고 다시 멀리 떠나게 되지요. 이 책에서 소개한 독일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일본, 러시아, 우리나라 이야기에서는 물 속에 빠진 아이를 건지려고 팔을 뻗다가 손이 생깁니다.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손이 아니라 주체성을 수행하는 도구로서의 손이 다시 자라게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손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주요한 구별점 중 하나입니다. 두발걷기를 선택한 이래 인류는 정교한 손을 사용해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인류는 손을 사용해 삶을 혁신시키는 기계를 만들기도 하고 그림, 글, 악기연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사람을 위로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손은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나타내는 통로이며 우리의 취약함과 강인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아르헨티나에 있는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입니다. 기원전 55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진 손 그림이지요. 왼손을 동굴 벽에 대고 염료를 뿌려 찍은 것들이라고 하네요. 흔히 보아왔던, 동물과 사람, 태양과 별을 그린 고대의 동굴벽화들보다 이 손그림은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활짝 편 수많은 손들이 몇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마치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존재의 인증같은 느낌입니다.
"삶의 여정을 도표로 그려 사진의 자아가 죽은 지점을 십자가로 표시해보라."
저자는 삶/죽음/삶의 주기를 계속 강조합니다. 독립을 향한 여정에서 지하로의 하강은 필수이며 어두운 불확실성 속에서 삶의 주기성을 믿으며 인내하면 심리적 양분을 얻어 전인적 자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이로 인한 분노와 슬픔, 중독의 환상을 벗고 직관이라는 진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상처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 치욕감을 떨쳐버리고 다른 이들의 길잡이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행동이 딸과 손녀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임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해요.
삶의 여정에 십자가를 그리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도 여러 번 지하세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곤 했지요. 삶에는 여러가지 상처의 무늬가 있었고 아직도 아물지 않아 빨간 피가 드러난 상처들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픔도 있으며 용서는 과정이고 치유가 되어도 다시 쓰라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픔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아무리 제거해도 파편이 남으며 이것들이 우리를 계속 고통스럽게 할거라고도 말하지요. 즉 완전하고 완벽한 치유라는 건 없다는 것입니다. 치유 뒤에도 상처의 고통이 끝나지 않을꺼라니 맥빠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안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힘이 존재하며 인내와 끈기를 바탕으로 한 이 힘이 우리를 도울 거라고 위로하지요.
"길을 가다 문든 이상한 느낌이 들면 뒤를 돌아보라.
네 발로 서 있는 아름다운 야성의 그림자가 보일 것이다."
페미니즘과 의학, 종교, 심리를 연결하여 읽고 생각해보는 10주간의 '페미니즘 더하기' 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각자 이 여정이 어떻게 남았는지 소감을 나누었어요. 막연하던 페미니즘 이론들이 언어로 정돈되는 느낌이었으며 환상세계에 다녀온 듯 하다는 이야기, 삶의 지하세계를 통과하고 있는 듯한 요즈음 큰 위안과 용기가 되었다는 이야기, 보다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를 파괴하지 않고 온당하게 분노하는 것과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오갔습니다. 몸, 영성, 심리 세 분야의 책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목소리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내면의 직관을 믿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러기 위해서 질문을 계속하면서 '나를 믿지 못하게 하는 환경에 분노'하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내 안의 직관이라는 야성'이 나 스스로에게 외면당하지 않게 해야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기록하고 창조의 야성을 자각하면서 어둠을 인내하며 견디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삶이라는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를 위로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미래의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치유가 되는 이야기이기 위해서 어떠한 삶의 장면을 만들어야 할까요. 우리는 지혜롭고 열린 노년을 꿈꾸었습니다. 우리가 받았던 상처를 똑같이 되물림하는 꼰대가 되지 않길 바라고,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고 한껏 자유롭길 바랐습니다. 한번도 훼손되지 않은 아이의 야성을 바라보며 이 모습을 잘 지켜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처럼 아이들도 하강과 상실 속에서 진실을 깨닫고 성장을 이뤄나갈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혜로운 조력자이길, 그리고 우리도 주체로 서서 나의 인생을 용기있게 감당하는 멋진 여걸이 되길 바랍니다. 그 여정에서 함께 손잡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함께 분노하고 서로 응원하며 믿어주었던 그 야성의 손들을 하강의 순간마다 기억하겠습니다.
* [페미니즘 더하기] 10주간 3권의 책을 읽으며 의학, 종교, 심리분야를 페미니즘의 필터로 살펴보고 인간, 여성 그리고 우리자신을 이해해보는 책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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