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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더하기] 속세와 야성을 넘나드는 '정신'이라는 신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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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더하기] 속세와 야성을 넘나드는 '정신'이라는 신발

고래의노래 2019. 11. 13. 15:10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3부는 여성이 야성과의 연결을 상실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인 '중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이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재밌으면서도 뒷통수가 얼얼한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빨간 신' 이야기는 돈많은 노부인의 딸로 입양된 고아소녀가 빨간 신에 집착한 나머지 저주를 받고 발을 잃게 되는 이야기죠. 아이들 동화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강렬한 장면들이 있어서 우리 마음 속에 매혹적인 떨림으로 남아있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빨간 신 이야기에서 보통 그냥 지나치는 부분을 주요한 포인트로 집어냅니다. 소녀가 노부인에게 입양되기 전에 자신이 만든 빨간 신을 신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죠. 가난했던 시절에 소녀는 여러 헝겊들을 모아 자신만의 빨간 신을 만들었었고 이를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그 신발을 더럽고 초라하게 여긴 노부인은 그걸 태워버리지요. 교회에 신고 갈 신발을 사기 위해 구두가게에 갔을 때 소녀가 빨간 신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건 자신이 만들었던 빨간 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소녀가 직접 만들었던 빨간 신은 스스로 설계한 삶과 열정을 상징하며 다른 빨간 신에 집착하게 되는 건 그 야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중독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영혼이 기아상태에 빠지면 다른 이에게 사랑을 갈구하거나 자신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기분 전환거리에 빠져들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생생하고 열정직인 본연의 삶을 파괴하고 시든 노파의 마차에 올라타면
머지 않아 바스러지고 나약해질 것이며, 늙은 완벽주의자의 페르소나와 야망을 갖게 될 것이다."

 저자는 또 한번 통념을 깨는 해석을 제시합니다. 소녀를 가난에서 끌어내준 귀한 은인이라고 여겼던 노부인을 소녀의 야성적 가치를 말살하고 집단의 틀에 우겨넣은 상징으로 해석하지요. 그러면서 여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 나름의 생각을 개척하고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화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활력까지 저해하는 지나친 훈련은 경계해야 한다고 하면서요.

 우리는 나만의 헝겊으로 하나씩 기워만든 빨간신이 무엇인지,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왔는지, 다른 사람의 구두에 매혹당해 생각없이 황금마차에 탄 적은 없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저주를 내린 군인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직된 순종이 가져오는 '내면의 불구'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야성의 영혼을 잃게 만드는 이러한 중독은 여러 부분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곳에도 '중독'될 수 있지요.

 '물개여인' 이야기는 그러한 중독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외롭게 살아가는 한 남자가 물개가죽을 벗어놓은 채 춤추는 한 무리의 여인들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에 매혹되어 남자는 물개가죽 중 하나를 훔치고 가죽을 찾지 못해 물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여인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지요. 7년 이라는 시간을 조건으로 제시하면서요. 세월이 흘러 둘 사이에 오룩이라는 아들이 태어나고 평온한 삶을 보내지만 물개여인의 살결은 점점 건조해지고 쩍쩍 갈라졌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 되어 여인은 남자에게 약속대로 가죽으로 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하죠. 그런데 우연히 가죽을 다시 찾게 되어 여인은 가죽을 입고 물로 돌아갑니다. 그 때 아들을 데리고 물 밑으로 가서 가족에게 인사시키지만 땅 위의 아이라며 다시 올려보내지요. 그리고 아들에게 항상 함께 할 거라고 약속합니다. 그 이후로도 오룩은 엄마물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해지며 드러머이자 가수, 이야기기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자기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옷을 빼앗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어요. 그리고 그 여성과 남성이 옷을 뺏기는 쪽과 훔치는 쪽으로 구분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은 페미니즘 시각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벗은 몸을 훔쳐보다 빼앗은 옷으로 협박하여 결혼을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폭력적인 남성상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그 관계를 깨지 못하게 아이를 이용하는 것도 모성을 비겁하게 이용한 것으로 보여지구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재구성한 시도도 많았습니다. 원형심리학적으로 '선녀와 나무꾼'을 결혼과 여성의 영혼적 성장이 함께 하지 못하는 슬픔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는 건 어떤 원형적 의미일까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자신의 상태에 따라 감정이입을 했습니다. 물개엄마를 물로 돌려보내야했던 아들이 너무 마음 아프기도 했고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피부가 바싹마르는 물개여인이 너무 슬프기도 했지요. 감정이입하는 대상은 달랐지만 결국 이 마음이 나를 따뜻하게 하는 온기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이 이야기 구조가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때로 영혼을 상실하고 고통스러워하다 그 둘을 잇는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었구요.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매우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저자는 가죽을 훔치는 어부를 여성의 자아로 해석합니다. 현실적인 세계관으로 시간을 구분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힘이죠. 누구나 사회화과정을 거치며 영혼이 자아를 따르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그 시기를 지나 우리는 영혼의 부름을 느끼게 되고 자아와 영혼의 사이에서 정신을 잉태하게 되지요. 이야기 속 아들은 속세와 야성을 넘나들며 다스리는 정신을 상징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가끔씩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계속 머물러선 안되고 활력을 얻어 일상으로 돌아와야한다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지나친 야심이나 불필요한 희생, 자아에 대한 집착 등으로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 물개여인은 자유의 춤에 열중하다가 가죽이라는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위험하고 파괴적이지 않고 건강해보이는 것이라도 노력와 시간, 에너지가 지나치다면 중독이며 영혼을 잃을 수있게 만든다고 이야기해요. 저자가 이제까지 영혼과 야성을 긍적적으로 이야기하며 집중했던 것은 그것을 잃어버린 현대 여성들에게 영혼의 고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며 그 곳에서 계속 머무는 것을 강조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위 그림은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붉은 모델'이라는 그림입니다. 마그리트는 현실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양극의 이미지를 결합한 그림으로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그림에서는 신발과 발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러 이야기에서 신발은 자신의 가능성 또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나타냅니다. 전족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상징하고 꽃신은 밝은 미래를 상상하게 하죠.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할 때 신는 신발, 산책갈 때 신는 신발, 격식있는 자리에 갈 때 신는 신발이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발을 보면 우리가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확인할 수도 있지요. 신발 뒷굽이 한쪽만 닿기도 하고, 항상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없이 홀로 놓여진 신발이 말해주는 주인의 이야기들이 때로 쓸쓸하고 뭉클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저자는 발을 기동성과 자유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감싼 우리의 현실인 신발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그 신발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걸까요?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격려해주는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흐릿하게 오염된 물 속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찾는 '라 로로나' 이야기와 우리가 잘 아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여성들이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힘인 아니무스를 건강하게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줍니다. 융은 여성 안의 남성성을 아니무스, 남성 안의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정의내리고 자아가 결국 이 둘의 건강한 결합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취적인 행동력인 남성성과 감성적이고 포용적인 여성성이라는 정의가 이제까지의 사회적 구분과 전형적으로 이어지기에 많은 여성분석가들의 반발을 샀지요. 저자도 이러한 구분에 반대하며 아니무스는 오히려 친숙한 여성적인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창의력을 밖으로 표현해내는데 '남성적'인 힘이라는 정의가 오히려 힘이 될 수도 있다고도 말하죠. 우리 안의 있는 남성성에 대한 상이 더 구체적이라면 이것이 내 안에 있다 여기며 의지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니무스의 힘이 약해지면 무언가를 시작해도 끝맺지 못하고 창의성의 샘을 현실로 처올리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저자는 이럴 때 나를 격려해주는 이들과 함께 하며 도움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합니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저자는 바로 이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작은 불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환경에서 성냥팔이 소녀는 환각에 의지하여 사그라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격려도 받지 못하면 여성은 헛된 환상에 빠지게 되는데 이러한 망상을 물리고 진정한 온기를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환상 속 할머니는 진짜 온기로 소녀를 인도하지 않고 환상의 천국으로 데려가버렸다는 것이죠.

"오늘 날 여성의 문제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심리적 지도자 없이 혼자 성숙의 고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야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집착이라는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서 내 안의 창의성을 삶으로 펼치기 위해 나를 격려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저자의 메세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내면의 펄떡거리는 야성을 우리는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 내의 내 서열때문에 그리고 때로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끊임없이 억압되었죠. 세상은 우리를 '제대로' 가르치려고 펄떡이는 야성의 고삐를 움켜잡으려 했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저항하며 다치기도 했습니다. 내가 만든 빨간 신이 너무나 소중하다가도 다른 이의 번쩍이는 구두를 바라보면 다시 초라한 기분이 들곤 했어요. 생각없이 황금마차에 올라탔던 것을 자각하고 깊은 후회의 울음을 삼킨 밤들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한편 영혼을 두고 탔던 황금마차의 경험이 영혼과 자아의 결합을 가져오기도 했지요. 영혼의 고향은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영원히 머물 수 없으며 우리는 자아와 영혼을 넘나드는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겪었던 혹은 통과하고 있는 고난은 그 방법을 창조해내기 위한 진통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자의 이야기처럼 현대 사회에 우리는 정신적 멘토를 잃은 채 방황합니다. 옛날 부족사회에서는 부족의 어른들이그 역할을 담당했지요. 젊은이들은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어른들의 삶에서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삶을 더 자세히 알고 있지요. 게다가 종교는 정신적 기도자라기보다 정신의 억압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경험만큼의 깨달음을 허락하며 그래서 인생선배의 단순한 조언은 허무할 수 있습니다. 결국 깨달을 때가 되어야 우리는 그 곳에 닿을 것이며 순간의 기쁨과 슬픔, 고난을 삶으로 통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힘을 내기 위해 서로를 응원해줄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성장해나가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응원하고 혼란스러움을 나눕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때론 가장 큰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함께 읽고 이야기나눈 이 모임의 시간이 우리에게 그러한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책의 이야기에 뜨겁게 마음이 울리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경험들을 나누며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다시금 알아채었죠. 순간에 산다는 것은 단순하게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순간의 좋은 점에 집중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알아챔에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순간 어디 있나?' 라는 물음이 우리가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게 합니다. 그러면서 마그리트의 신발처럼 현실과 야성을 넘나드는 정신이라는 신발이 서서히 우리에게 스며들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뜨겁게 들었다 놓으며 혼란스럽게 하다가도 다정하게 마음을 알아주고 응원해주던 이 책이 각자에게 어떤 여운을 남기는지 함께 이야기해보아요.

* [페미니즘 더하기] 10주간 3권의 책을 읽으며 의학, 종교, 심리분야를 페미니즘의 필터로 살펴보고 인간, 여성 그리고 우리자신을 이해해보는 책모임입니다. 부분 참여나 특정책만 참여도 가능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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