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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더하기] 우릴 지켜주는 본능적 '쎈 언니'가 있다!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페미니즘 더하기

[페미니즘 더하기] 우릴 지켜주는 본능적 '쎈 언니'가 있다!

고래의노래 2019. 10. 29. 15:35

 [페미니즘 더하기]모임은 이제 4주동안 마지막 '더하기'를 시작합니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에 페미니즘을 더해 여성의 심리,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보려고 해요.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매우 재미있지만 읽기 쉽지 않습니다. 추천사에서 김승희 시인이 쓴 것처럼 이 책은 정신혁명을 일으키는 책이 아니라 '혈액혁명'을 일으키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의 페미니즘 책들이 기존 논리구조를 해체시키며 생각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머리를 쓰게하는' 책들이었다면, 이 책은 '심장으로 돌진하며' 여성들을 뒤흔듭니다. 게다가 마치 옛이야기를 하는 듯한 저자의 펄떡이는 생생한 문장들은 이 진동들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하지요.

 이 책에서는 칼 융의 '원형' 개념으로 옛이야기를 분석합니다. 원형은 융이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 있는 정신유산으로 정의한 개념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무의식을 통해 발현되는 심리, 행동유형으로, 먼 옛날부터 전해오는 옛이야기와 신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요.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이 발견되는 것을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 원형의 존재에 대한 근거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성들의 내면에 원형으로 자리하고 있으나 미처 의식하고 못하고 있는 힘을 '여걸'(wild woman)로 이름짓습니다. 그 힘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요. 여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힘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 힘은 본연의 건전한 한계를 지켜나가며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합니다. 그것은 사회규범을 포기하고 날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명한 지혜 속에서 직관의 예민함을 활용하며 스스로를 위해 말하고 본연의 주기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죠. 
 그렇게 여성들이 잃어버린 야성을 붙잡아 뒤흔들기 위해 저자는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이야기에는 우리 내면을 흔들어깨울 원형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읽은 부분에서는 '늑대 뼈를 모으는 라 로바', ' 에스겔의 바퀴환상을 본 네 랍비', ' 푸른 수염', '바바야가와 바살리사' 이야기를 통해 여성이 잃어버린 '직관이라는 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직관을 방치하면 어느 날 잠재의식이 거리의 하수구 뚜껑처럼 열리면서
우리를 낚아채고 걸레처럼 내동댕이칠 것이다."

 '푸른 수염'이야기에서 세자매 중 막내는 의심스러운 마음을 무시하고 푸른수염의 거짓 친절에 속아 결혼합니다. 푸른수염이 집을 비운 사이 막내는 사용하지 말라던 열쇠를 사용해 전 부인들의 해골과 피가 가득한 방을 열어보게 됩니다. 푸른수염이 돌아와 막내가 약속을 어긴 것을 알고 죽이려 할 때 오빠들이 나타나 푸른수염을 처치합니다.
 저자는 푸른수염을 여성의 내면을 억압하는 '본능의 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여성의 잠재력을 함부로 깎아내리고 파괴하는 존재이지요. 직관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막내가 이를 다시 되찾는 방법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쓰지 말라던 열쇠에 대한 궁금증) 가지고 오빠들(여성 내면의 아니무스)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은 흉측해보이는 진실도 미화하고 모두에게 상냥해야 한다고 교육받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을 버티면 좋은 일이 일어날 꺼라며 현실에 안주하게 하지요. 여성에게 삶의 지혜로 강요되는 것들이 여성 본연의 지혜에는 눈감게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우리를 잠시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외면의 흉측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지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또한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모두에게 친절한 것은 보상받았고 약속을 깨는 것은 때때로 저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야기마다 전하는 가치들이 이렇게 상반된다면 이야기를 해석하고 나의 삶과 연결하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심이 되는 것은 결국 '직관을 의심하지 말고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는 흉측함을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직관과 연결된 선택'이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을 하기에 앞서 이것이 어떤 욕구에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합니다. 막내는 의심스럽지만 푸름수염과 결혼합니다. 의심이라는 내면의 직관을 무시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친절한 어머니라는 빛나는 표상을 버리고 여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

직관에 대한 강조는 '바바야가와 바살리사'이야기에서도 이어집니다. 바살리사는 엄마를 일찍 여의고 못된 계모와 새 언니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계모와 새 언니들은 어떻게든 바살리사를 없애려했고 부엌의 불씨가 꺼졌다며 숲 속의 마녀로 알려진 바바야가에게 불씨를 얻어오라고 보내지요. 바살리사는 바바야가가 내주는 여러 과제를 엄마가 유산으로 남겨준 인형의 도움으로 통과합니다. 그리고 바바야가가 준 빛나는 해골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계모와 새 언니들을 처벌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든 엄마가 죽고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매우 대표적인 옛이야기 화소입니다. 저자는 엄마의 죽음을 친절한 보호로부터 떨어져 나가 심리적 성숙을 향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안전한 울타리는 생애 초기에 매우 필요하지만 독립된 주체로의 살기 위해서는 울타리를 벗어나 삶의 과제들을 통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바살리사에게 주어지는 과제들 또한 많은 옛이야기들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거름에서 양귀비씨를 골라내고 썩은 밀과 성한 밀을 가려내는 과제는 판단을 흐리게 하는 현실의 모든 유혹과 규범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는 분별력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이 모든 과제를 도와주는 '엄마의 인형'입니다. 저자는 이 인형을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직관력이라고 해석해요.

"엄마가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은 자신의 직관에 대한 믿음이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딸아이가 와서 표지의 여자가 누구인지 물었어요. 저는 모든 여자 속에 있는 나쁜 마음을 물리치고 내쫓는 늑대여신이라고 말해주면서 놀리는 이야기, 상처받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말들과 싸우는 여신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무척 좋아하며 자기 늑대여신이라고 둘째가 위 그림을 그렸어요.

 우리는 이야기하면서 계속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옛이야기가 말하는 것처럼 나의 직관을 믿으면서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 아이가 독립할 때가 되었을 때 손을 잘 놓아주는 것에 대해서, 아이에게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저자가 이야기하는 야성을 삶에서 느꼈던 경험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도 그건 모두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이로운 경험과 본능적으로 아이를 끌어당겨 젖을 먹였던 순간, 아이와의 갑작스런 이별로 가슴 속에 불덩이가 꿈틀거리는 듯 했던 일이 야성과 연결되었던 시간으로 기억되었지요.

"우리가 야성의 에너지를 모으려하면 여걸은 천적이 세워놓은 울타리나 장애물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달려온다. 여걸은 상황과 장소를 불문하고 우리를 도우러오는 살아있는 힘이다."

 옛이야기에는 물론 오랜 역사를 통과하며 덧입혀지고 변화된 내용들도 있습니다. 가부장제 문화와 기독교 문화,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전통 등이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저자도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영향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덧입혀진 살들 안쪽으로는 변하지 않는 뼈대가 존재합니다. 옛이야기를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이나 뼈대에 대한 가치마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늑대 뼈를 모이고 영혼의 노래로 되살리는 라 로바처럼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취할지, 그리고 그 때는 언제가 되어야 할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엄마이고 엄마를 울타리 삼아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여걸을 따라 야성을 되찾는 것은 무턱대고 내 마음의 욕구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면 나의 욕구를 잠시 미뤄두고 '적극적인 기다림'을 선택할 수 있지요. 여걸이 '우리를 도우러 오는 힘'이라면 그 기다림이 그저 희생이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직관과의 연결을 삶 안에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여걸과 친해져보려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2부(~p224)까지 읽고 만납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문장들 속에서 우리의 여결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함께 들어 보아요.

* [페미니즘 더하기] 10주간 3권의 책을 읽으며 의학, 종교, 심리분야를 페미니즘의 필터로 살펴보고 인간, 여성 그리고 우리자신을 이해해보는 책모임입니다. 부분 참여나 특정책만 참여도 가능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https://forms.gle/amZTHYAQgozmWz2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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