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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가.차. 페미니즘 만나기]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페미니즘 만나기

[함.가.차. 페미니즘 만나기]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고래의노래 2019. 7. 9. 13:56

 '페미니즘의 도전' 2부를 함께 읽었습니다. 1부에서 페미니즘을 넓은 시야 안에서 살펴보았다면 2부에서는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깊게 바라봅니다. 저자는 가정폭력, 성폭력, 인권, 나이듦에 대한 담론의 변화를 주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풀어야 할 과제 또한 제시합니다.

 

 10여년 전에 쓰여진 책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글을 읽는데, 한국 남편이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가정폭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제까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보다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뤄져왔습니다. 근대 이래 공과 사가 구분되었고 이러한 구분으로부터 프라이버시같은 개인권리도 강화되어 왔지만 여성의 삶에서는 공사가 구별되어 있지않지요. 여성의 삶 자체가 가정에 메여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는 '공적인' 인권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피해는 피해자화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여성들도 쉽게 빠지는 늪입니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는 것은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유일한 방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성'에 관해서 피해의식은 남성의 전유물입니다.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존재가 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됩니다. 죄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니라 유혹한 자라는 이러한 인식은 죄책감을 고스란히 여성에게 투사한 결과입니다. 그러면서 섹스는 여성에게 자원이자 억압의 기제가 됩니다. 남성에게서 성을 매개로 어떤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여겨지고, 남성이 만든 성욕구의 틀에 맞춰 대상화되지요. 이러한 상황은 섹스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부장적 순결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성적인 주체로 스스로를 바라봐야한다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주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폭력 반대운동을 하며 이러한 주장이 딜레마를 일으킵니다. 모두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주장과 피해자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사회화되었다는 주장을 동시에 해야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여성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한다'는 젠더구분은 모든 여성을 동질화하고 범주화하는 가부장제 인식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같은 성폭력이라도 여성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피해를 느끼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 인식의 근거를 여성이 아닌 개인의 몸에서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범주화는 '임신가능한 부녀'만 여성이라 여기고 성폭력 성립의 기준으로 삼는 판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남성이 소유한 또는 미래 어떤 남성이 소유할 '여성의 임신능력'에 대한 침해죄의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권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르게 바라보면 전혀 다른 담론들이 이어집니다. 흔히 성폭력 고소로 인한 폭로에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며 명예훼손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가해자의 인권은 수사과정에서 용의자로서 고문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이지, 피해자를 상태로 주장될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포르노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도 '표현의 자유는 지배규범에 대한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요. 포르노는 저항의 담론 안에서 이뤄진 것이라기 보다 비뚤어진 권력 관계에 편승해 돈을 벌려는 목적이므로 '자유'의 권리에서 제외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권은 개념의 확대가 아니라 새로운 물음 안에서 계속 논의될 과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 할례나 죽은 남편을 따라 자살하는 것이 인습으로 정착되어 있는 사회에 페미니즘과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하는 것이 온당한지, 남성 장애인이 성욕을 기본권으로 주장하며 성매매 여성들에게 매춘을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질문해요. 그러면서 인권은 피억압집단의 개입을 기다리는 '과정적 개념'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문제가 되지 않던 억압이 억압받는 자에 의해 문제시되기 시작할 때, 그 때가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연령주의를 우리의 삶을 규율하고 있는 근본적인 사회모순으로 주장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노인으로 정체화하지 않으며 노인이 되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됩니다. 어떤 이에게 나이듦은 권력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식으로 노인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나이듦이 성별, 계급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이 하는 일로 정체화되지만, 여성은 몸으로 정체성이 부여됩니다. 여성노인은 이러한 기제 안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라 무엇을 소망할 수 있고 무엇을 이루어야하는지 촘촘히 정리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매트릭스'라는 영화의 너무도 유명한 한 장면이지요. 모피어스에게 네오가 각성의 알약을 건네받는 장면입니다. 파란 약을 먹으면 편안하게 어제와 같은 삶을 살게되고 빨간 약을 먹으면 불편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되지요. 네오는 빨간약을 선택합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인식체계의 변화라는 게 어떤건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대에 열광했던 진보지식인들의 글 속에 들어있던 여성혐오가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글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쓴 글이었다는 걸 알게된 후 다시는 예전처럼 그 글을 읽으며 기뻐할 수 없었지요.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성역할 구분에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하시는 부모님의 성차별 발언에 이제 대화를 해봐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집안일과 단순히 먹고 입히는 육아를 넘어 아이의 교육까지 '가정'에 맡겨지고, 그리고 결국은 그 역할이 '엄마'에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페미니즘은 '매트릭스'의 알약에 비유됩니다. 이제까지와 다른 전혀 새로운 진실을 알게되고, 알게 된 이상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요. 그건은 그야말로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입니다. 저자도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것, 이것은 삶이 너무 피곤해지는 일이다. 페미니즘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의미있게 해주고 지지해준다."

 

 우리는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이들에게는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 행사됩니다. 저자는 30대에 들어서면서 삶의 가능성이 제한되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나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성문제에 관심이 없는 남성들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요.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타인의 억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없이 이루어진 여성운동은 삐뚫어진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남성과 같은 권리'만을 주장하며 오히려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의 이중고를 안게 되었습니다.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습니다. 저자는 이를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이 공적영역으로 진출하듯 남성도 사적영역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정의는 같아짐이 아니라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차적인 역할분담과 서로 돌봄 안에서만이 모두에게 모든 가능성이 열릴 수 있겠지요. 페미니즘 운동은 이렇게 모두가 함께 해야 완성될 수 있는 운동인데 '억압의 경험이 없는 남성'들을 어떻게 이 인식체계로 초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결국 서로를 각자의 경험으로 초대하고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희망이 있을까요? 다음 주에 3부를 읽으며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이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 아!하고 터져나오는 깨달음의 희열을 나눌 수 있는데 감사하고, 혼자서는 읽지 못했을 어려운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 감사하고, 나를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뜨거운 여름날 태양만큼 우리 마음에도 뜨거운 빛이 차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마무리하며 다음 주에 반갑게 뵙겠습니다.


* <함께, 가만히, 차근차근 페미니즘 만나기>는 6주간 두권의 책을 읽고 사회 이슈로 떠오른 가 치관인 페미니즘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필터로 적용시켜보는 페미니즘 기본 모임입니다. 현재 진 행중이며 아래 신청 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forms.gle/MbCc9mN9SNRy8Rp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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