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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페미니즘 만나기

[함.가.차 페미니즘 만나기] 해방과 사랑의 페미니즘

고래의노래 2019. 6. 25. 17:37

 이번 주에 읽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부모와 아이, 결혼과 동반자, 섹슈얼리티와 레즈비어니즘 그리고 영성까지,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에 대한 이슈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가족 안에서는 다양한 관계 양상들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남성이 휘두르는 가정폭력에만 집중하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다른 권력관계를 놓쳐버렸습니다. 성인 여성이 아동에게 행하는 폭력문제에 이론적으로 개입하지 못했지요. 양육자가 아이라는 약자에게 가하는 위력은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괜찮다는 가부장적 사고에 기반합니다. 여성 양육자는 권력관계에서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아이에게 반복하며 가부장제의 주요 전파자가 되어 버립니다.

 

 가정에서의 동반자 관계는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맞물려 때로 성차별과 가부장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성들을 직장에서 가정으로 내모는 것은 '부모없이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어떤 여성들은 모성이 주는 특별한 자부심을 남성에게 내주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성들이 육아를 자신의 삶으로 들이기 힘든 자본주의 일터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성들에게 모성 이외에 자부심을 느낄 다른 기회가 없는 사회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즘 운동이 활기를 띄자 가부장적 의료계가 모유수유를 긍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지적되었을 때는 모유수유에 집착했던 제 과거가 떠오르면서 그 때의 욕구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성적인 욕구는 어떨까요. 여성에게 성은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의 영역입니다. 피임과 임신중단에 대한 권한이 나에게 없는 상태에서 성적 쾌락은 '임신 형벌'과 연결됩니다. 매력적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명확한 틀 안에서 성적 매력은 남성의 기준에 의해 판단되지요.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이렇게 궁극적으로 권력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이 스스로를 성적인 가치와 힘을 지닌 존재로 바라볼 때 진정 성적으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레즈비언에게서 페미니즘이 얻은 교훈은 여성은 행복을 위해 남성에게 기댈 필요가 없고 스스로 자기인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갈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그 욕구대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말이지요.모든 형태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이러한 의지는 내면으로의 영적 탐사로 이어졌습니다. 페미니즘 영성은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신념 체계에 새로운 대안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에 저항하며 이를 흔듭니다. 그 과정에서 가부장제에 연결되어 있던 가족과 공동체도 같이 흔들리게 되지요. 초기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구체적으로 저항하기 보다 사랑으로 보여지는 관계 자체를 문제시하면서 페미니즘은 사랑보다 증오를 발판으로 한다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등과 존중에 기반한 관계로 가족과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과정입니다. 페미니즘은 지배와 복종의 권력문화를 종식시키고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자고 외칩니다. 차별과 억압의 근간인 성차별주의와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되어 '모두'가 자유롭게 바로 서는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페미니즘 정치는 상호간 행복의 비전을 제시하는 유일한 사회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주제는 삶과 너무 맞닿아있어서 흥미로운 한 편 버겁기도 했습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책 제목이 모두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뜻한다는 걸 이제 알겠다 하셨어요. 그러자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모두를 위한다'는 것은 우리가 배려해야할 대상이 전체라는 뜻인데 과연 나에게 이런 포용력이 있는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페미니즘 지향성은 명확한데 아직 거기까지 닿아있지 않은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건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전형적으로 성역할이 구분된 미디어의 로맨스에 마음을 홀딱 빼앗길 때면 내 욕구가 진정 나의 것인지 사회로부터 학습된 것인지 헷갈렸지요. 스스로 '충분히'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아 위축되었습니다.

 

 

 위 그림은 '못말리는 우리 엄마'라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속 엄마는 다리에 털이 부숭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쁘지도 않고 겨드랑이에 땀이 나면 지독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노래를 부를 땐 접시깨지는 소리가 나고 춤을 출 땐 정말 웃기지요.하지만 엄마는 내가 힘들고 지치면 다정히 위로해주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고 시위에 참여하며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압니다. 전 이 그림책을 보고 '이 엄마는 페미니스트가 분명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에는 페미니즘이나 여자, 남자라는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미디어가 쏟아내는 아름다움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잘 못해도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합니다. 약자를 위해 행동하고 가족 안에서는 사랑이 넘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매우 사랑하지요.

 

 우리는 예민했습니다. 아이들 놀이 속 용어를 중립적인 용어로 바꿔주고 아이가 성별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판단할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게끔 돌려주었습니다. 예민함은 오류와 모순을 눈치챌 만큼의 지성이고 부정의한 제약을 거부하는 감각입니다. 그것은 상대를 찌르는 날선 뽀족함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의 예민함은 과한 자기검열로 여겨질만큼 우리 자신에게 향할 때가 많은 것 같았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적으로 대상화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모두가 온전함으로 바로설 수 있는 상호존중의 페미니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페미니스트는 '못 말리는 우리 엄마'처럼 내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존중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택하는 것은 '사랑을 택하는 것'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이제까지 페미니즘이 문제를 지적하는데 집중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대안은 하나의 방법일 수 없고 우리가 선 그곳에서 페미니즘이 각자의 삶에 건네는 방식을 찾아가야 합니다. 스스로를 해방시켜줄 새로운 젠더 역할을 계속 모색해가야 하지요. 문제를 알아채는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나만의 길을 찾는 '모호함'을 견디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서 이야기하고 만남을 기록합니다. 페미니즘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기록하면서 페미니즘과 우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기에 우리의 삶으로 들여와 생각해보기에는 조금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이제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으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까지는 1부(~128p)까지 읽고 만납니다. 한국에서 우리가 페미니즘을 삶으로 들일 때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세심하게 살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책을 읽고 이야기하며 알아가 보겠습니다. 예민함을 바탕으로 사랑으로 향하는 길을 찾으며 말이지요.

 

* <함께, 가만히, 차근차근 페미니즘 만나기>는 6주간 두권의 책을 읽고 사회 이슈로 떠오른 가치관인 페미니즘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필터로 적용시켜보는 페미니즘 기본 모임입니다. 현재 진행중이며 아래 신청 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forms.gle/MbCc9mN9SNRy8Rp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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