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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가.차 페미니즘 만나기> '우리'를 바로 세우는 페미니즘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페미니즘 만나기

<함.가.차 페미니즘 만나기> '우리'를 바로 세우는 페미니즘

고래의노래 2019. 6. 18. 14:08

 이번 주에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7장에서 12장까지 읽었습니다. 페미니즘을 계급, 인종, 글로벌, 남성성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보면서 페미니즘의 과제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박탈되었던 교육권, 투표권,참정권에 대한 투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기본권들을 얻게 되었고 페미니즘의 의제는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갑니다. 그 중 주요했던 것 중 일 할 권리와 페미니즘의 전지구적 확산, 폭력 등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의제들이 다양해졌지만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했던 고학력 백인여성은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운동을 끌고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기지요.

 

 개혁주의 페미니즘은 가정에 속박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도 직업을 가지라고 주장하면서 가사일을 다른 계급의 여성들에게 넘기는 문제에는 무심했습니다. 여성에게 일자리는 곧 해방이라는 공식은 일부의 여성들만 해방시켰을 뿐 계급 간의 차이는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일해야만 하루를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에게는 전업주부의 자리가 오히려 해방일 수 있지요. 그래서 저자는 일이 아닌 '경제적 자립'을 해방의 수단으로 보고 일도 '어떠한 일'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은 국가, 지역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서구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유를 위해 선구자적 업적을 만들어온 것은 확실하지만 투쟁의 경험이 다른 나라의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 수 있는 권위로 작용해서는 안됩니다. 저자는 특히 미국 페미니스트들의 이런 제국주의적 환상을 지적합니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성차별주의는 서구에서는 섭식장애로, 다른 곳에서는 여성 할례로 작동하고 있을 뿐 더 '야만적인' 차별을 구분하는 건 서로를 경계짓고 계급화할 뿐입니다.

 

 미국에서 언제나 뜨거운 이슈인 인종차별 문제는 페미니즘 안에서도 제기되었습니다. 이 문제제기는 젠더에 맞춰진 초점을 흐린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페미니즘 안에서 인종 문제를 바라보면서 여성이 모든 층위에 존재하는 근원적 차이라는 사실에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폭력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한 개혁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을 유일한 피해자로 못박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 의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권위자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죠.

 

 페미니즘은 남성들이 박탈당한 권리에 대해서도 지적합니다. 남성들이 가부장제가 부여한 성차별주의적 남성성을 의식없이 내면화한다면 지배할 대상이 없이는 존재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게 자기충족적인 정체성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삶을 온전하게 긍정하기 힘들지요. 남성들도 가부장제 아래서 일부가 상실된 채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은 미디어에서도 점차 반영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질레트 면도기의 광고입니다. 약자에 대한 폭력, 성희롱에 맞서고 감정을 표현하는 '더 나은 남자'가 되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https://youtu.be/koPmuEyP3a0

 

 저자는 페미니즘이 누군가를 소외시킨 역사를 살펴보면서 진정 싸워야할 대상은 제국주의, 군국주의, 과도한 자본주의, 가부장제라고 말합니다. 자기존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누군가를 대상화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고 누구의 욕구도 억압하지 않고 모두가 스스로 바로 서는 세상. 페미니즘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입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저자의 이런 외침은 새로운 시각으로 나의 위치를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전업주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는데, 틀어보면 그건 전업주부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결정이기도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나에겐 당연하던 배경이 누군가에게는 어렵게 투쟁해서 얻어야 하는 목표라는 사실은 '나'에 집중하던 페미니즘에서 '우리'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이 깨달음을 페미니즘이 나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에서 확장되어 새로운 안경을 받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 안경으로 이제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해요.

 

 페미니즘을 누군가가 점유할 수 없도록,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저자는 계속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그러면서 비판을 받아들이고 의견을 나눠 이론과 실천을 재고해 온 것이 페미니즘의 강점이자 힘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혁명적 페미니즘은 해결책보다는 문제를 규정하는 데 익숙했고 대안과 방안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페미니즘이 내 삶을 관통하는 언어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끼지만 내 삶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마도 이러한 실천적 모호함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이제까지 목격한 페미니즘이 누군가를 대상화한 공격적 모습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정체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체성을 바로 세워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흔들리는 건 기울어진 마음이 바로서는 흔들림이겠지요.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서구의 페미니즘 경험에 비추면서도 한국의맥락과 상황에 맞는 의제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 각자의 삶 안에 들여와야 하죠. 그러한 과제를 안고 다음 주에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끝까지 읽고 만납니다. 부모역할, 결혼과 성, 영성 등 우리가 관심있어할 주제들이 이어지네요. 함께 흔들린다면 아름다운 물결이 일겠지요? 다음 주에도 손잡은 그 마음을 든든하게 믿고 읽고 이야기해보아요. ^^

 

* <함께, 가만히, 차근차근 페미니즘 만나기>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 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페미니즘 기본모임니다. 6주간 두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고 사회 이슈로 떠오른 가치관인 페미니즘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필터로 적용시켜봅니다. 현재 진행중이며 아래 신청 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forms.gle/MbCc9mN9SNRy8Rpt6

 

[페미니즘 만나기] 모임 참여 신청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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