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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함.가.차. 페미니즘 만나기] 잃어버린 진짜 목소리를 찾아서 본문
'페미니즘의 도전' 3부에서는 페미니즘의 핵심 이슈인 성매매와 군사주의를 들여다봅니다. 이 두 주제는 성차별과 억압의 뿌리인 '성별 구분'과 밀접하게 닿아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페미니즘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기에 매우 적확한 주제이기도 했지요.
페미니즘과 성매매 - 새로운 관계맺기의 필요성
페미니즘과 성매매는 하나의 목표를 보고 가는 일심동체 동반자일꺼라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성매매금지법 이후 단속이 강화되고 집창촌들이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동상이몽'의 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지요. 성판매 여성들이 영업을 계속하게 해달라며 거리 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어두운 수렁에서 나오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여겼던 일이 성판매 여성 당사자에게는 대안없이 돈벌이를 앗아가면서 삶을 흔드는 뿌리뽑기와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억압하는 상황에 놓인 딜레마에서 여성주의자들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성매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우리 안의 보수적인 확고함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성판매 여성들의 선택에 대해서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성매매라는 환경의 영향이 내 주변에까지 미치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성판매는 삐뚫어진 구조 안에서만 작동하는 '사연많은 선택'이라는 믿음을 지울 수가 없었지요. 내가 지금 이곳에서 저쪽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오만한 월권행위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확고함 주변으로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성은 과연 사고팔 수 없는 것인가? 돈을 받고 내 어떤 부분에 대한 선택을 내어준다고 했을 때 회사에 고용되 일하는 것과 성매매는 같은 입장이지 않을까? 성판매를 자신들의 선택이라고 하는 여성들은 아직 '의식화되지 못한 희생자'들일까?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존중받을 수 있는걸까? 불법화하면 음지에서 방법을 바꿔가며 계속되고, 합법화하면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생기며 범죄가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성매매는 근절될 수 없는 인류 욕망의 뿌리인걸까? 경험자의 이야기만이 귄위를 갖는 것인가? 그렇다면 당사자가 주도하지 않는 논리는 그저 바라봐야 하는건가? 이렇게 의문들을 토해내고 보니 깊은 한숨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즘에서는 성판매 여성을 무기력한 피해자로 바라보았고 성판매 여성들은 경제적 문제가 닥치자 그러한 시선을 거부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가부장제 사회의 성판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의 피해자화 모두 성판매 여성을 침묵하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페미니즘 진영과 성판매 여성들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성을 사는 남성들의 경험이 기벼운 농담거리와 남성성의 증거인양 이야기되고 퍼져나갈 때 그리고 페미니즘 진영에서 성매매에 대해 정의의 잣대를 내세우고 제도와 법을 만들어내라고 위로 향해 소리치고 있었을 때,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판매는 개인의 선택, 섹슈얼리티 성별권력, 자본주의 계급구조 등 여러가지가 혼합된 경험입니다. 그것이 선택의 경험인지 구조의 경험인지에 대한 논쟁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계급차이가 성판매 여성의 선택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명쾌하게 결론내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을 넘어 당사자들이 자신의 욕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들 중 하나'로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사유와 경험을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대로 드러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군사주의와 남성성 - 바로서기가 필요한 정체성들
누군가를 범주화하면 이렇게 개인의 목소리는 묵살되고 범주화의 기준이 된 사람들만이 주체가 됩니다. 군사주의는 범주화를 근간으로 성별이분법에 의존하는 현상입니다. 군대를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됩니다. 남성은 힘을 행사하며 보호하는 주체이고 여성은 보호를 받는 대상이면서 그 노고를 감사해하고 인정하고 보상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도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남성성은 지배하는 자가 가진 정체성이며 여성성은 정복당하는 자, 약한 자의 정체성입니다. 이러한 성별 역할 구분과 성적 정체성의 구분은 군대 안에서 폭력과 성을 '힘의 행위'로 정의내리게 만드는 맥락입니다.
군대는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이야기될 때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억울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페미니즘 공격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성평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남성쪽에서 내미는 카드는 크게 군가산점제과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제만 나오면 우리가 말문이 막혔던 이유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2년여의 청춘'에 은근한 부채의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명쾌한 논리를 이끌어냅니다.
"군가산점제는 의무가 면제된 사람들에게 면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격이다. 여성과 장애인은 2등 시민이어서 의무가 없다. 이는 병역의 의무에서 면제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셈이다. 군가산점제 논란은 군에 가지 않을 수 있는 남성과 가야하는 남성의 대립이 군대가는 남성과 못가는 여성의 갈등으로 이동한 것이다."
"군사주의 자체가 적과 피보호자 요소에 의존하는 이상 여성이 군대에 참여한다고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여성이 군대에 가는 이스라엘이라 북한에서도 군대 내에서 여성의 역할은 철저히 성별화된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모두 이 부분에 까맣게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야말로 '통째로 삼키고 싶은 문장'이었어요. 우리가 느꼈던 부채의식이 군대의 여성 대상화를 내면화했던 결과라는 깨달음은 놀라웠습니다. 반복해서 읽으며 꼭꼭 씹어 외우자고 다짐했지요.
군대가 의무이므로 국가는 어떻게든 이것을 남성에게 의미있는 삶의 경험으로 연결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는 남성성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군대는 타인에 의존하면서 억압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는 남성성이 여성에 의존하면서 억압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하여 군대는 남성성 정체성과 뜨겁게 연결되고 한국남성의 성인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남성도 계급적 억압을 경험하면서도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계급적 타자성'이라는 낮은 자존감이 '남성성'이라는 권력의 경험으로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군제도에 동원되는 남성들이 지배계급 남성과의 연대와 동일시 열망을 극복하고 여성과 연대하여 군사주의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를 함께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진실된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위 이미지는 최근 인어공주 디즈니 실사판에 캐스팅된 할리 베일리를 모델로 가상으로 만든 인어공주 포스터입니다. 인어공주 역에 흑인이 캐스팅된 것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요. 자신의 틀을 깨고 나아가려는 디즈니의 행보가 이어진 것인데요, 이에 그렇게 '과도한 전복'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전 작품과의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선넘은 의식화라는 것이지요. 그런 '의식적인 선택'은 당연히 '자연스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질감'을 좀 더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험을 하면 서로 이야기나눌 수 있고 그게 바로 출발점이 될 수 있지요. 이 캐스팅 논란에 대응한 롭 마샬 감독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인어공주의 주제는 '목소리를 찾는 여성'이라며 할리 베일리에 이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6주간 읽은 두 권의 페미니즘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의 도전'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범주화의 위험'을 인식하고 현재 누가 '목소리'를 가졌고 누가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지 살펴볼 것, 그리고 '근본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자각해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삶으로 스며들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욕구를 파악하고 말해야 하는 것은 여성이나 소외된 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남성들도 그들이 소리치고 있는 경험이 '삐뚫어져 있지 않은지', '내 진짜 경험이 맞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성판매 여성들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남성은 성판매 여성을 통제하며 권력을 실현하려 하고 높은 지위 남성은 통제당하는 상황을 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울어진 내면의 불균형에 대한 보상을 소비형태로 쉽게 해결하려는 모습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노동'(노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아조절과 감정노동은 여성만 담당하고 있습니다. 남성이 남성성을 성찰하면서 '감정'의 영역을 남성성 안으로 긍정적으로 포함시켜야 남성 내면에서는 물론이고 관계에 있어서의 불균형도 삐걱거리며 자리를 다시 잡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성을 이렇게 새로운 인식체계로 초대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흑인 인어공주같은 '부자연스러움'을 자주 경험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6주동안 두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의 기본 개념을 알아보고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우리 스스로와 주변을 바라보았습니다. 강렬한 인상만으로 다가왔던 페미니즘이 차츰 우리 안에서 언어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어요. 페미니즘과 함께 한 6주간의 만남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남겼습니다. 페미니즘이 나를 설명해주는 나의 언어에서 나아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확장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읽고 말하고 써야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강렬해졌습니다. 내 안의 보수성을 만나고 그것을 깨면서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어디에나 만날 수 있는 페미니즘을 내가 못 봤던 것이라는 걸 알았고 그것을 발견하게 된 게 기뻤습니다. 그리고 나를 안전하게 열 수 있는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취약해지는 걸 감수하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진실된 욕구와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책들을 읽으며 행복이 아닌 진실을 향한 고단한 여정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주해야했던 긴장을 견딜 수 있었던 던 모임벗들 덕분이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올라옵니다. 누군가를 틀에 넣고 판단했던 것은 순간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곤란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주화하지 않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 선택과 말과 행동이 어떤 경험의 여정을 통과한 것인지 '가만히 차근차근' 살펴보려는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여자는 되고 남자는 왜 안되?' '남자는 되고 여자는 왜 안되?'라는 질문을 '같음'이 아니라 '공정함'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민하게' 탐구하려 합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해보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볼께요. 당신이 누구인지 들려주실래요?"
* <함께, 가만히, 차근차근 페미니즘 만나기>는 6주간 두권의 책을 읽고 사회 이슈로 떠오른 가 치관인 페미니즘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필터로 적용시켜보는 페미니즘 기본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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