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존재를 향한 태도> 나의 속도와 깊이로 진실된 삶을 향해서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를 향한 태도> 나의 속도와 깊이로 진실된 삶을 향해서

고래의노래 2019. 4. 26. 13:51

<존재를 향한 태도> 마지막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7~8장을 읽고 존재모임을 마무리하면서 3권의 책이 우리에게 건넸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고 우리 안에 드는 생각, 질문들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저자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경험하고 말할 수 있는 장소, 즉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고요하고 고독한 공간과 자기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낯선 사람들과의 안전한 작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나의 안전한 공간'은 어디인지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비슷한 육아방식에 공감하는 엄마들이 모여 만든 모임, 냇물 공간들의 책모임 등이 이야기되었어요.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글을 다듬고 단어를 고르는 과정이 나와 만나는 시간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교류와 소통의 장으로서 온라인 공간은 매우 핫한 이슈입니다. 저자는 온라인 공간이 가진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지점도 이야기합니다. SNS에서의 약한 연대가 사회변화를 위한 힘으로 성장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지만, 정보의 빠른 확산과 공간을 뛰어넘는 연결,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쉽다는 장점을 인정하지요. 그러나 그런 장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연결을 공고히 해서 인식의 확장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단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모임벗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나를 완전히 드러내기에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내 성향과 취향이 한번 공개되게 되면 그것이 확산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정확한 정보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불안이 있었지요. 하지만 사적인 글쓰기가 아닌 공적인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많이 이야기된 단어는 '나 자신'과 함께 '폭력'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저자는 폭력은 영적인 형태에서 물리적인 형태까지 다양하다고 하면서 모든 폭력은 연민의 실패, 공감과 존중 결여에 바탕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폭력이 어떻게 정의내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상대방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억압하는 모든 행동과 언어, 권위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폭력의 반대가 민주주의로 이어진다는 발견을 하기도 했습니다.

 

  폭력의 대상에는 타인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됩니다. 마음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자기자신에게서 분리되어 사는 것은 나의 주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을 스스로에게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좋은 의도가 넘쳐서 모든 사람을 돕고자 애쓰다가 건강을 살피지 않는 것 또한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내적 폭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단 모든 것은 나 스스로를 영적으로, 신체적으로 제대로 돌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저자는 내 마음의 요구와 삶과의 간극, 그 비통함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그러한 비통함을 드러내어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에서 함께 힘을 모으면 이 긴장을 끌어안을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 용기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만남과 이야기가 공적인 장으로 나아가야만 집단적인 나르시시즘에 갇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비판자들까지 끌어모아 모든 에너지가 우리 모두의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에 고개에 끄덕여지면서도 우리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굳이 연결되어야 할까? 그냥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며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배제와 인정의 차이는 무엇인지, 도저히 닿지 않을 것만 같은 평행선을 굳이 끌어당기는 수고를 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지요. 그 때 한 모임벗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평행선이 사실은 서로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건강한 긴장의 상태이고 그 긴장이 유지되지 않는 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억압한 상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행선이라는 긴장 자체가 배려와 존중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긴장을 품는 것'이 어떠한 가치인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밖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반대편의 누군가가 '함께 긴장을 견뎌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선명히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모임을 갈무리하며 모임이 나에게 남긴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한 모임벗께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잘 표현한 것 같다며 위의 그림책을 가져와서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저녁, 한 아파트에서 맨 아래층 할아버지는 먹을 것이 당근 몇개 밖에 없자 함께 먹을 무언가를 찾아서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위층 아저씨도 냉장고에 치즈 몇 조각 뿐이었고 둘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봅니다. 위층에는 피망과 쪽파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각자 하나씩 밖에 없던 재료들이 차곡차곡 모여 맨 위층에 올라갔을 때는 다양한 재료들이 모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재료들로 어떤 요리를 해먹을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러다가 파이를 만들어먹기로 결정하고 맛있게 요리하지요. 그런데 바깥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다른 아파트에서도 모두 함께 만나 요리를 하고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색깔로만 빛나던 사람들이 알록달록 다채롭게 섞여든 모습이 정말 예쁩니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이 아름다운 헤피엔딩 너머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 할아버지의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보자 여전히 말라 비틀어진 당근 세개가 눈 앞에 있을 뿐이죠. 허탈하게 어딘가로 향하는 할아버지에게 위 층 아저씨가 인사를 건넵니다. "할아버지, 같이 저녁드실래요?"

 

 우리가 품은 완전한 연결과 소통, 배려와 존중의 공동체는 그야말로 꿈이며 허상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가 이제까지 증명해왔듯이 무언가 이루면서 너와 내가 하나되었다는 짜릿한 희열은 순간의 경험이며 또 다시 갈등의 긴장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의 다른 한쪽은 또 이렇게 증명합니다. 그 긴장을 끌어안으며 지금 선 그 곳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누군가에 의해서 세상이 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이죠.


 우리는 11주간 3권의 책을 읽으며 '존재를 향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방향을 잡아보았습니다. <이상한 정상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가 허용한 가족의 기준이 무엇이고, 배타적 가족주의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소외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으며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좁은지, 그리고 그 안전망에서 배제되면 건강과 생존이라는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알아갈 수 있었어요. 슬프고 답답하고 분노가 치솟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사회는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담론의 장이 확산되고 있고 부당해고되었던 노동자들이 오랜 투쟁끝에 복직하는 소식들이 이어졌지요. 소외와 평등, 존중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3권의 책을 읽으며 인간을 존엄하게 대한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내 삶으로 끌어들여 지금 내 삶과의 간극을 직시하고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했습니다.

 

 존재모임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모임에 거는 기대에 대해 크게 2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나 자신을 보다 잘 알고 싶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나의 가치관 사이의 간극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법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죠. 전혀 다른 욕구처럼 보이던 두 가지는 사실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비통한 자들의 정치학'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행성에서 보낸 잠깐동안 최선을 다해 나 자신으로서 가족, 친구, 공동체와 세계 앞에 현존할 수 있었음을 알며 죽는 것보다 더 깊은 영혼의 위로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함께 읽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세상과 우리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풀리지 않은 여러 질문들이 마음 속에 엉켜있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질문까지도 품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각자의 속도와 깊이로 비통함이라는 긴장을 끌어안는 진실된 삶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11주간 현실을 직시하고 나와 세상의 간극을 품어내는 용기로 함께 해주시고 우리가 안전하게 우리 자신일 수 있었던 울타리가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위로'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촘촘하게 이어질 삶 속의 긴장마다 모임벗들과의 만남을 기억하겠습니다. ^^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 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