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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x여성] 재투성이(신데렐라)와 함께 하는 3주차 본문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처음 만날 주인공은 재투성이(신데렐라)입니다. 재투성이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먼지 속 왕녀의 소망] [재투성이에게 금지된 곳] [슬픔을 지우는 해방의 춤]
재투성이는 스스로 무언가를 행하기보다는 '발견'되기를 소망한다. 자신이 어떻게 주변으로부터 취급되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그의 마음 속에는 스스로의 고귀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것을 발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우월하고 현명하고 이해심 많은 남자로부터 깊이 사랑받고 싶은 커다란 갈망'은 '배우자를 찾는 왕자의 무도회'라는,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파격적인 열린 가능성으로부터 기회를 얻게 된다.
그 기회를 붙잡는 과정에서 재투성이는 계모로부터 과제를 받고, 개암나무가 자란 어머니 무덤 앞에서 무도회에 필요한 옷와 구두를 얻는다. 애도와 눈물의 장소였던 무덤 앞은 소망을 채워주는 낙원으로 변한다. 저자는 하얀 새가 재투성이에게 건네준 드레스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의 상징이며, 이로 인해 재투성이가 갈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고 해석한다.
재투성이를 '착한 아이'로 머무르게 했던 어머니의 그늘이 변화를 위한 한걸음을 돕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새로웠다. 역시 '영원한 저주'라는 건 없는건가 보다. 그 힘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게 궁금해졌다. 이걸 알게 된다면 나를 억누르는 어떤 힘을, 나를 성장시키는 힘으로 바꾸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춤에 대한 저자의 해석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춤은 재투성이가 자기고 있는 온갖 모순적인 심리를 모두 채워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재투성이는 춤을 추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개별적으로 소개하거나 사교적 대화를 하지 않으면서) 드러낼 수 있었고, 춤의 예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성적인 육체 접촉을 경험할 수 있었다. 깊은 갈망과 거기에 비례해 심해지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재투성이의 존재적 무게를 춤이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춤은 재투성이의 불안과 갈망 사이에 이상적인 타협을 이뤄낸다.
도주와 접근이라는 엇갈리는 경향을 정해진 한계 내의 접촉으로 아우른다."
재투성이의 심리에 대한 해석을 읽으면서 내내내 마음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구마 상태'였는데, 춤이라는 타협점이 드러났다! 결국 '어느 정도의 적정한 선'을 스스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권위', '적극적인 수동성', '탄생을 위한 죽음' 이렇게 대비되는 개념의 조합 속에서 받았던 위안과 외로움이 떠올랐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희망인 동시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과제라는 막막함이었다.
저자도 이야기했듯이 독자들이 재투성이를 읽으며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재투성이의 수동적인 태도이다. 그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들끓는 열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밖으로 선언하지도 못하고 계모와 대적하지도 못한다. 그가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붙고 있는 것은 오로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재투성이의 가장 '위대한 행위'라고 평가하는데 이 부분을 읽었는데 매우 놀랐다. 행동하지 않고 꿈만 꾸는 것은 가장 비겁하고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적극적인 행동'에 대한 내 안의 상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꿈마저 포기하기 쉬운 어떤 상황에서는 희망을 갖는 것조차 용기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재투성이 서사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재투성이가 옷과 구두를 받아 무도회에 가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놓지 않았던 꿈'에 용기 한숟갈이 얹혀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사그라들지 않았던 커다란 갈망이 결국 어머니의 무덤을 용기를 주는 장소를 변모시킨 걸까? 아니면 '개암나무와 무덤의 조합'이 마법의 시작인걸까? 만약 후자라면 그 조합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대표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통합으로 볼 수도 있을까? 조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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