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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지혜-5] 대천사 미카엘 / 신비의 결혼식 / 처녀 소피아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동화의 지혜-5] 대천사 미카엘 / 신비의 결혼식 / 처녀 소피아

고래의노래 2021. 6. 16. 16:41

[동화의 옷을 입는 대천사 미카엘]
- 두 형제 / 철의 사나이 한스

“인간성을 유한한 힘들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땅 위에서 벌이는 정신을 위한 싸움들은 모두 미카엘의 초월적 행동의 모상이다...인식은 의지로 넘어가야 해방의 힘을 발휘한다. 즉 이기심과 죽음 같은 무상한 힘들로부터 인간 존재의 영원성을 구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영혼 스스로 자신이 신에게서 연원했으며 운명적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정신을 세상을 등진 머리의 지식, 또는 경견한 기분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처녀를 구하는 일은 없다. 정신은 검의 힘으로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핏속의 철의 힘을 정신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것은 정신의 권능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14세는 인간이 땅에서 완수해야 할 신의 사명에 대한 예감이 깨어나는 시기이다.”

14살 첫째의 변화를 바라보며 그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를 빚어내려는 모든 힘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힘에 매달려 나를 긍정하던 시기. 첫째는 아직 자유를 향한 격렬한 반항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신의 사명’에 대한 예감을 어떻게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여덟살 왕자는 철의 한스를 만나 그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14살에 그와 헤어져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어려울 땐 언제든 그를 불러낼 수 있다. 비록 헤어졌지만 ‘언제든 불러낼 수 있다’는 연결에 마음이 놓이고 든든해진다. 

“인간 본성 안에 있는 모든 철의 빛은 인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지만, 난폭하게도 만든다...이성주의 학교 교육의 시대에는 ‘철의 한스’를 궁성과 철창 뒤로 보내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황금 머리칼을 감추는 것, 즉 비천한 일을 해서 왕가의 혈통을 부정하는 것, 합당치 않은 금을 거절함으로써 타인에 대해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러한 엄격한 조건들을 충족한 뒤에야 가장 높은 우주의 힘들을 받고 미카엘의 의지의 힘들이 인간 영혼을 비출 수 있었다.”
“땅의 심연을 통과하며 강해져서 욕망을 말끔히 털어버린 자아 의지는 제일 강한 세계의 힘들을 불러올 수 있다...이 힘들은 철 속에 잠들어 있다...내면의 철은 모든 황금 욕망과 거리를 둔 지혜를 통해서만 정신화되어 드높은 도덕적 힘들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적기사로서 자신의 감정 본성을 정화하고 백기사로서 자신의 지식을 정신화했다면 자신이 가진 땅의 의지를 완전히 그리스도화함으로써만 그는 흑기사가 될 수 있다...철을 관장하는 자, 즉 성 미카엘 대천사는 자유를 부르짖는 우주적 의지력들을 매개하는 자의 현현이다.”

자아의지는 철의 힘을 불러오고 관장한다...이 책이 나에게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은유과 실제 의미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핏속의 유성우’라는 표현이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은유인지, 실제 혈액에 대한 이야기인지 헷갈린다. 아마도...둘 다를 말하는 것 같은데, 실제 유성우와 인간 육체의 피, 그리고 이것이 정신에 작용하는 힘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것이 ‘동화의 지혜’에 눈뜨지 못하고 땅의 욕망을 아직 정화시키지 못한 자의 한계인걸까?

대학교 때 유성우가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관측회를 떠났었다. 그 아름다운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었는데, 그 때 내 몸 속에 어떤 작용이 일어났던 걸까? 게다가 나는 실제로 빈혈이 있다. 철이 모자란 것이다. 이런 몸 상태라면 무언가에 의지의 힘을 낸다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일까? 실제로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이 딸린다. 
내가 경이로움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들과 화산이다. 밤하늘의 별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힘이고 화산이 아래로부터 위로 솟구치는 에너지라면 내가 이 둘에 끌리는 것이 나에게 이 힘들이 필요하다는 걸 무의식중에 알고 있어서인걸까? 질문만 마구마구 생겨난다...

 


[신비의 결혼식]
- 지빠귀부리 왕 / 별별털복숭이 / 재투성이 아셴푸텔 / 개암나무 가지

“내가 참 자아에서 출발해서 땅의 충동들에 빠진 육신의 욕구로 인해 허약해진 영혼의 삶을 점진적으로 정신화하면 내 안에서 좀 더 순수한 새 감정 세계들이 환하게 밝아올 것이다. 나는 그 감정 세계들을 투명하고 따사로운 햇살처럼 느낀다.”

이기적 의지로 이끄는 교만한 정신인 루시퍼의 힘(발가락 걷기)과 물질의 힘에 빠져 영혼을 경직시키는 아리만의 힘(발꿈치 걷기)으로 인해 허약해진 영혼은 세 단계의 각정과정을 통해 정신화된다. 
- 자신을 정신에 바칠 것을 맹세하고
- 정신과 연합해 신적 사고를 하며
- 자기의 사고를 초감각적 세계 기억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초감각적 의식이 깨어나는 것은 교만과 영혼 집착을 고조시키 위험이 있으므로 겸허하고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 

“단계적으로 해방되는 자기 정신의 개성을 의식할 수 있는 사람은 우주적 힘들로 직조된 자기의 원형이 참 자아에 숨어있음을 발견하고 자기 원형의 전개를 모색해볼 수 있다.”

칼융의 개성화, 자기실현 개념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동화에서 결혼식은 영혼과 정신의 합일을 상징하며 그 과정에서 영혼이 거쳐야할 과제들을 제시한다. 초감각 차원에서 정신과 접촉하는 것은 영혼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교만함에 빠지거나 아예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불가능한 하나가 가능해지면, 동시에 다른 불가능한 또 하나가 가능해진다.”

영혼의 노력이 가져오는 연쇄작용은 인류의 집단에너지장 개념과 연결지어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한계 하나를 넘기 시작하면 그 에너지 파장이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집단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말이다. 예를 들어 한 명이 9초대의 100미터 달리기를 해내자 그 이후에는 한계의 기준점이 달라지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뤄나간다. 100미터 9초 달리기는 인간의 신체 한계상 불가능하다던 인식이 깨어진 것이다. 
인류의 집단적 인식성장은 사회적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페미니즘, 인권,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것은 단순히 교육을 통한 시민의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인류 인식의 계단식 성장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코로나도 우리에게 그런 점핑의 단계를 선사하지 않을까. 자연, 동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시대를 지나 인류가 오르게 될 인식의 성장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빠져있던 루시퍼와 아리만의 힘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고 있는 듯!

 


[처녀 소피아]
- 충성스러운 요하네스 / 황금 새 / 수정 구슬

“ ‘우리의 나은 반쪽’을 우리는 해가 있는 하늘에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여성성’이 부분이다. 이 영원한 여성성은 태포부터 우리에게 있어온 것인데, 우리가 땅의 욕망에 연루되면서 망각한 부분이다. 이는 땅의 인류가 행한 우주적 이혼이다.”

‘영원한 여성성’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전에도 후기글에 쓴 적이 있지만, 여성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 ‘영원이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가네.’의 수수께끼같은 의미가 무엇인지 찾고있기도 했다. 
여기에서 쓴 ‘여성성’이라는 단어는 앞서 저자가 이야기한 인간의 수동적, 수용적 측면보다도 영적 지혜의 부분에 집중한 것 같은데, 이것이 여성성으로 명명되어야 하는 것에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다. 현 인류가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 물질적인 소위 ‘남성성’에 편중되어 있기에 받아들이고 연결되는 정신적인 지혜와의 재결합이 필요한거라고 일단 이해해보고 있다. 저자가 뒤에서 이야기한대로 ‘언어’가 주는 한계 속에서 뜻을 찾고 전달하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라고 느껴진다. 

“초감각 영역들에 숨어있는 너의 원형을 보고 싶다면, 먼저 네가 정식적 세계의 내용을 네 의식으로 데리고 오기에 적합하도록 내적으로 튼실한 살아있는 표상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 표상을 만들려고 애쓴게 종교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영지주의와 마니교가 이 신비를 간파하고 전수했던 종파로 이야기된 것에는 알쏭달쏭한 심정이다.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한 종파들인 건 맞지만 너무 그 쪽으로 기울어진 부분도 없지않았던 것 같아서다. 그래도 저자가 이 종파들이 강조한 정신과 물질의 이분화, 물질을 타락한 악의 측면으로 본 것까지 긍정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물질세계를 통과해야 닿을 수 있는 여정 자체에는 긍정한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한 때 자아를 통해 인간을 인식과 자유로 이끌었던 정신의 힘들은 독립한 자 앞에서 존립 근거를 대야 한다. 더 높은 지혜의 수호자도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자신의 비밀들을 인간의 판단력 시험에 맡기려면 금속이 된 땅의 의식으로 내려가야 한다...산 정신의 계시를 죽은 사고의 형식들을 통해 겨우 전달된다.”

요즈음 너무 절절하게 느끼는 부분이라 저자의 명확하고 아름다운 은유적 표현이 반가웠다. 초감각적 세계의 정신에 대한 경험을 말로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너무나 많은 오해르 불러일으킨다. 가르치는 건 불가능하고 그저 깨달은 바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행동일 것 같다. 
미래에는 언어가 아니라 텔레파시로 전해지는 의미의 교환을 꿈꿔본다. 그룹꿈투사가인 제레미 테일러는 꿈이 인류의 진화작업장일 수도 있다고 말하며 텔레파시를 그 한 가능성으로 이야기한다. 공상과학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미래 인류와 외계인들이 하는 것처럼 말없이도 소통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그런데 언어의 한계 안에서라도 영혼, 정신, 초감각 세계, 자아, 지혜 등 책에 계속 등장하는 용어를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자유에 다다라 옛날식 이끎을 거부하는 사람은 반대 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 제물은 지혜를 다시 깨울 수 있는 행동을 가장 내적인 자유로부터 실행하게 한다...눈뜬 인간 정신과 인류를 이끄는 지혜 사이에 자유와 희생에 기초한 관계가 생겨날 수 있다.”

자유에 기초한 희생, 이러한 적극적 희생은 내가 나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통해 이뤄가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내가 내 서사의 주인공 영웅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작년 한 해동안 ‘페미니즘의 원형을 찾아서’라는 개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진화로 바라본 몸과 역사의 흐름, 심리적 에너지를 중심으로 여성의 내적 성장을 이끄는 힘을 살펴보았다. 연구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경계없는 하나의 통합이었던 에너지가 구분과 경계짓기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개별적 힘으로 분화되기 시작했으며 일치 → 분화와 구분 → 틀과 억압 → 해방과 자유로 이어지는 영적 성장은 이제 연결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연구 내용이 [동화의 지혜] 책 내용과 맞닿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반갑고 기쁘다. 

 추상적인 개념들 속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지만, 결국 책을 덮고 내가 돌아가야 하는 것은 삶의 현실세계이다. 동화라는 옛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나를 인식하고 미래를 꿈꿔본다. 참 본질을 향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가능성 안에서도 한계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꿈꾸면서도 현재에 충실하며, 운명을 믿으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는 것, 그렇게 순간순간의 적정선을 찾아서 결국 삶이 챗바퀴가 아니라 나선으로 나아가게 선택하는 것, 그것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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