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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동화의 지혜-7] 다른 민족의 동화 세계 / 읽기를 마치며 본문
[다른 민족의 동화 세계]
- 러시아 동화 / 스위스 그라우뷘덴 동화
‘다른 민족의 동화세계’부분은 지역의 동화를 민족영혼, 민족의 과제와 연결하여 설명하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보편적인 내용으로 흐른다. 지역적 특징과 민족의 역사와 맞물려 지역의 동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무 궁금한데 기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특히나 ‘손 없는 소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있는 이야기인데다가 내용이 너무나도 비슷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손없는 소녀’의 지역 버전들의 이야기 차이와 그 차이가 갖는 의미들이 무언지 꼭 살펴봐야겠다 .
“깨어서 순식간에 미끄러져 지나가는 체험들을 놓치지 않고 그 동화적 광채를 일상의식으로 구출해오는 것이 땅의 개성에게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이야기꾼은 자신의 미흡한 정신적 성숙을 절감한다...하지만 이야기꾼이 곁들이는 유머는 건강한 자기인식의 징표다. 참된 자기인식만 있으면 지혜의 제자가 가닿게 되는 저 깊은 겸양과 선민의식은 유머에서 짝을 이룬다.”
옛이야기의 막바지에 갑자기 등장하는 이야기꾼의 ‘타령’이 무슨 의미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이야기꾼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고 듣는 이들에게 ‘현타’가 오게하는데, 책에 나온 설명을 읽으니 평범한 사람들과 동화의 정신세계를 이어주는 이야기꾼들의 이런 역할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야기꾼들의 ‘푸념섞인 수다’ 부분은 듣는 사람들이 정신의 지혜를 천천히 땅의 현실로 가져올 수 있도록해주는 완충제같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은총은 오히려 공포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야기꾼의 자기인식 태도는 ‘자격’에 대해 고민하는 나에게 너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나 자신이 완전하게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모임지기로서 여러 책모임을 꾸리는 것에 대해 언제나 고민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격’이 아니라 ‘진실한 자기인식’이며 스스로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히 알고 말하고 행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모두에게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두를 줄 아는 지혜만이 민족 영혼을 경직에서 풀어 민족 영혼에게 정신적 자유의 체험을 매개해 줄 것이다....인식의 빛은 영혼의 저변을 지배하는 정체모를 모든 것에 해방의 힘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 자체는 감각에 의해 흐려진 상태다.”
“영혼은 땅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는 법은 배워야 한다...초감각적 빛의 광채가 스민 영혼은 순종을 통한 땅과의 단단한 연결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위로부터 오는 영감은 땅의 원초적 힘을 자양분 삼을 수 밖에 없으며 그러기 때문에 일상에 충실할 떄만 쟁취할 수 있다.”
인식의 빛은 영혼을 해방으로 이끄는 힘이지만 감각에 의해 이미 흐려져 정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것은 일상에 충실하면서 땅의 삶에 순종하는 것이다. 물질주의와 이성주의 세계로서의 ‘땅’이 아니라 내가 육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뜻하는 ‘땅’ 말이다. 정신과 땅의 매개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 여기에 태어난 나의 현실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마땅할 것이다. 곰곰히 깊게 내 안으로 가져가서 땅에 단단히 서고 싶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소명을 잘 펼치고 싶다.
- 남프랑스 동화 / 북유럽 동화 / 아프리카 동화
“상상력은 인식을 통해 내적 삶의 비밀에 틈입하게 하는 통로다.”
“영혼은 땅의 삶이 시작되면 먼저 하늘의 눈을 잃어야 그 대가로 땅의 눈이라는 육신의 감각기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냉큼 금빛이나 은빛 말을 잡는 자는 기껏해야 몽상가 정도 된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 정신 사기꾼이 될 위험이 있다. 아무리 빈약한 생각일지라도 그 고요한 사고의 힘들을 끝까지 고수하는 사람은 영혼의 혼돈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가 ‘다른 나라 동화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기대한 것처럼 ‘차이’에서 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표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메세지에 대한 것 같다.
- 인간은 유한한 존재가 아니다.
- 영원히 이어지는 정신의 불멸성을 깨닫고 이것을 내면에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여정이다.
- 그것은 정신과 땅의 매개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이다.
-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땅의 삶을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감각과 물질에 빠져 눈이 멀어서는 안되며, 정신의 고귀함에 취해 일상의 소박함을 경시해서도 안된다.
- 세계의 모든 동화들은 이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나 ‘정신사기꾼’이라는 단어가 경고처럼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초라해보여도 내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사고를 붙잡고, 동화의 메세지가 전한 인간의 운명을 믿으며 성실하게 나아가자고 다짐해본다.
- 켈트족의 지혜 유산
켈트, 앵글로 색슨, 게르만 종족 구분으로 문화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찾아보니 켈트는 영국에 머물던 원주민족, 게르만은 유럽대륙민족, 앵글로색슨족은 영국으로 이주한 게르만족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민족간의 침략, 이동, 교류가 활발했을 것 같은데 역사시간마다 듣던 단일민족이라는 게 정말 사실일까? 어떤 사실을 바탕으로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쓰였는지 혹시 거기에 정치적 의도는 없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장차 형제들 간의 위대한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언급하는 이야기꾼은 별로 없다. 세 줄기 흐름의 최종적 합치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다...동, 서, 가운데로 땅을 돌아다니는 세계 방랑자들이 서로 형제임을 다시 알아보게 될까? 이는 인류사의 문제다."
의미심장한 구절이었다. 모든 배척과 차별은 상대방이 나와 다른 철저한 남이라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는 못하는 부분은 남에게 투사하며 구분하려든다. 나를 똑바로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형제임을 인식하고 화해한다면) 인류는 다른 차원으로 나아갈 것이다.
"곤경을 맞은 세계가 잃어버린 원초 지혜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 때가 되면, 사람들 사이에 까마득한 옛날의 위대한 인물이 다시 출현하리라고 켈트 영혼은 믿는다."
'켈트족의 세계시민주의', '세계시민적 지향'에 대한 부분에서 나는 움찔했다. 게다가 위대한 인물, 구원자에 대한 예언까지 나오자 불안해졌다. 세계시민주의는 전 인류가 형제라는 인식이지만, 잘못 해석하면 우리의 이념과 복음으로 모두를 이롭게 하겠다는 독단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왔다. 십자군 전쟁과 유대인 학살...피온은 진짜 인물이 아닐 수도 있고, 켈트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땅의 한계'에 갇혀 예언의 지혜가 말하는 바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스모스>라는 책에서 칼 세이건은 과학이 발전해오며 인간이 취했던 위대한 선택들을 이야기한다. 모두 기존의 믿음을 깨고 나아갔던 선택들이었다. 그리고 우주의 모든 것들은 별먼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폭발과 그 원자들의 반복적인 융합반응으로) 그렇게 본다면 결국 모두 하나로 이어진 것이니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인류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주 탐구를 통해서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고 국가를 벗어나 지구 전체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화의 지혜' 저자가 말하는, '이성의 시대를 제대로 통과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신과의 연결'이라는 건 아마도 칼 세이건이 말하는 방향성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추천의 글]
- 21세기를 사는 아이와 어른에게 동화란?_수잔 페로우
"동화는 인간 영혼이 걸어가는 나그네 길을 다채로운 그림으로 담아낸 태피스트리다. 동화는 원형과 정신적 실재에 대한 이야기이며 현실적 진리와는 다른 형태의 진리를 전해준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선이 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동화의 근본적인 상이며 세상 모든 아이는 이에 관해 듣고 또 들어야 한다."
칼 융의 책들을 읽으며 인류의 집단 무의식의 표현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와 꿈, 옛이야기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진화적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의식과 신체, 그리고 내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자 동화의 표면적 표현 너머의 의미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줄 때 인류의 지혜를 전해준다는 태도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요정과 천사에 대한 믿음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할 때도 아이의 믿음과 '이중 의식'하에서의 내 믿음이 다른 차원이지만 같은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는 편안함이 생겼다. 그래서 쭈뼛거리지 않으면서 '엄마도 요정을 믿어.'라고 이야기한다.
동화가 제시하는 인류 의식 성장의 흐름이 한 인간의 삶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며, 둘째와 첫째 그리고 내가 그 단계들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제까지 각자의 의식상태에 대해 따로따로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우리 셋을 연결지어 바라본 적은 없었는데, 이것을 한 흐름 안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게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아래 이미지는 한 달 전 속초로 여행을 갔을 때 청초호가 보이는 카페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 셋이 그린 그림이다. 돌아와서 이 그림들을 다시 보니, 영락없이 우리 각자의 의식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듯 했다. 실루엣파, 디테일파, 생명부여파의 그림들! 단일 의식 상태의 둘째는 건물에도 얼굴을 그려넣었다. 이중의식 상태로 진입한 첫째는 보이는대로 자세하게 그리는 데 몰두했고, 통합의식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나는 전체적인 실루엣만 그려넣었다.
나는 가족 안에서 인간 성장의 흐름을 고스란히 함께 하고 있다. 아이들을 통해 삶을 두 번 산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난 지금 내 시기의 과제를 수행하기에 너무 완벽한 복습환경에 있는 셈인거다. 일상이 나에게 삶의 지혜를 주고 있다.
"현실의 엄연한 한 면, 즉 어둡고 수상쩍은 측면을 가린 채 키운 아이들은 환상적 성향의 인간으로 자란다. 온전한 삶의 현실을 감당할 건강한 능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삶의 모순이야말로 아이들이 가공해야 할 재료다."
삶의 모순이 우리가 가공해야 할 재료라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이다. 모순을 견디는 것이 어려워서 어딘가에서 정답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받게되는 것은 나만의 답을 써야하는 빈 시험지다. 인간은 언제나 양극단 사이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가야하며 그 선택들이 모여 삶이 된다. 그 선택의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분명한 자기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동화는 결국 우리에게 '땅의 삶을 잘 통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고차원적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머리에 스팀이 올라오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내 마음에 남은 메세지는 결국 그것이다. 인간이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에 대해 표상적으로나마 알면 땅의 삶에 너무 집착하지도 너무 소홀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이거야말로 신비로운 삶의 모순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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