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동화의 지혜-4] 인간의 조력자 동물 / 마법과 구원 / 어둠의 힘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동화의 지혜-4] 인간의 조력자 동물 / 마법과 구원 / 어둠의 힘

고래의노래 2021. 6. 16. 16:40

[인간의 조력자, 동물]
- 꿀벌 여왕 / 불쌍한 방앗간 젊은이와 고양이 / 황금 새/ 세 가지 언어

"우리가 할 일은 인간에게 속하지 않는 고차적인 지성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
"초감각적 삶을 오롯이 추출하려면 먼저 현상세계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한다...세계가 마법에서 탈피하는 것은 인간 영혼이 자신을 골똘히 응시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담긴 지혜에서 출발해야한다."

옛이야기에는 과제를 풀기위해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나는 이걸 동물들로 상징되는 분별력이나 시야확장 등의 능력을 의미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걸 '세계에 담긴 지혜'라고 여기는건 매우 다른 접근같다.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지혜에 귀기울이는 것. 방향이 매우 다르다. 

"자기 내면의 노력이 의식의 영혼에 의해 규정되도록 하는 사람만이 세상의 미래의 힘들과 연결된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의식적으로 책임지는 도덕적인 길, 즉 초감각 차원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도덕에 대해서도 여러 갈래의 설명이 있다. 성악설, 성선설... 근데 이 책에선 도덕을 이기주의적 충동을 의지로 억제하거나 본래적으로 선한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미래의 힘들과 연결되어' '의식적으로 책임지는' 도덕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그게 초감각 차원으로 향하는 거라고! 아아...알듯말듯..

"동화와 신화에서 머리를 베는 장면은 항상 특정한 힘의 사심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힘이 정신으로 고양되려면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벌어지는 모든 사태에 대한 공감 능력을 내면에서 깨우기 시작한 사람은 인류 발전에서 나타나는 곤경과 요구들도 인식할 것이다. 그는 ‘연민을 통해 아는 자’가 될 것이다.”

진심이란 건 무엇일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따라가니 결국 다른 이들에게도 가 닿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언제나 궁금했다. 내 욕구와 내 진심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내 안의 목소리를 따르라는 조언들은 넘쳐나지만, 그 목소리가 진짜 내 목소리인지 분별해내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 같다. 오랜 고민 끝에 누군가에 의해 도구화되지 않은 나의 진짜 욕구(진짜 마음, 진심)을 찾아낸다면 그건 자연스럽게 나도 위하고 우리도 위하는 것일꺼라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지역적으로 아시아인이지만, 내가 부처님보다 예수님에 조금 더 끌리는 이유는 예수님의 ‘연결성’ 때문이다. 부처의 깨달음은 무론 사방에 영향을 주었지만,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이 재야의 수도승이라면 예수님은 마을 안의 혁명가 느낌이다. 

사심, 공감능력, 연민...이라는 단어를 쫓다보니 생각이 이리저리 흐른다. 아직도 나에게는 큰 숙제이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지는 마음까지는 안가면서 닿아야 할 그 곳에 잘 이르고 싶다. 

 


[마법과 구원]
- 개구리 왕자 / 괴물새 그라이프 / 노래하며 날아오르는 종달새 / 오린데와 요링겔

“꿈의 거미줄에 걸려 있는 감춰진 자아를 꺠우려면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정신에 드높은 복이 되는 자유 체험은 초감각적 의식이 마법을 벗어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땅의 인간이 지닌 온갖 충동과 소망을 잠재워 마음의 깊은 고요를 얻어야만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다.”
“마음의 평온, 즉 운명과의 화해는 참 깨달음이 영혼에 주어져야 비로소 영혼 안에 자리 잡게 된다.”
“모든 우울과 운명에 대한 거부를 극복해 낸 힘이 인간 심장에 서 자유롭게 되기 시작하면, 기뻐하며 에테르로 올라가는 새의 형상이 나타난다.”
“의식 영혼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모험과 희생을 뜻한다 해도 그 길을 갈 각오가 되어 있다.”

읽기만해도 경건해지는 문장들이었다.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각오는 어느 정도인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힘쓰는 의지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 잘 살펴야겠다. 혹여 땅의 충동을 위해 의지를 불태우고 있진 않은지...

"영혼 깊이에서 일어나는 신비 중 가장 심오한 것은 에로스의 정신화이다. 즉, 루시퍼의 위력이 성령의 빛으로 단계적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프시케와 에로스를 여성의 영적 성장 여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보는 시각들이 있는데, 나는 이에 깊이 동의하고 있다. 잃어버린 남편을 찾아나서는 비슷한 전개의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이 신비롭고 이 이야기들을 여성의 내적 성장의 맥락에서 풀어가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의미있는 일들이다. [노래하며 날아오르는 종달새] 에서 아내가 남편을 다시 찾는 과정 또한 앞으로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특히 독수리를 타고 돌아오는데 중간에 나무를 만들어 쉬게하는건 지하세계에서 색시를 구하는 우리나라 이야기 중 비슷한 것이 있어 놀랍고 재미있었다. 비록 '동화의 지혜' 저자는 비슷한 모티브의 나열과 분석만이 갖는 한계를 미리 지적하긴 했지만 중복 모티브를 찾을 때 받는 '감각적 희열'이 정신세계로 연결되는 에로스 역할을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만이 우울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기독교 선교의 '작업 멘트'로 자주 이용되는 말이다. ㅎ 그런데 내가 믿는 나의 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단계가 정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누군가는 '그리스도'라고 하고, 누군가는 '커다란 참 나'라고 하고 융은 '자기원형'이라고 하는 거 아닐까. 그 힘의 원천이 내부건 외부이건 간에, 내가 인식의 차원을 뛰어넘어야 닿을 수 있는 그 힘에 연걸된다면 '구원'이 일어날 것이다. 

"교묘해진 감각성을 정신의 영역들에 가지고 올라온 것에.지나지 않은 신비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신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저급한 충동의 힘들은 정화된 영혼의 힘의 광채에 의해 극복되어야 한다."

성애적 환상과 찬가들을 감각적 ecstasy 와 영성적 자기초월이 갖는 유사성으로 그냥 이해하고 말았었는데...어렵다. 좀 더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어둠의 힘]
- 손없는 소녀 / 유리 관 / 늑대와 일곰 마리 새끼 염소 / 빨간 모자

[어둠의 힘] 장은 이제까지의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한 것 같았다.
‘손이 없는 소녀’는 정신이라는 손의 용법을 잃은 영혼을 상징하고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유리관은 에테르적 힘들이 죽음같은 잠에 빠지고, 영혼이 지성으로 인해 경직된 상태를 나타낸다. 신화가 민족의 미래에 대한 예언적 암시라면, 동화는 개개인에게서 일어나는 영혼의 눈뜸에 대한 암시이다. 영혼은 죽은 이성의 사고, 이기적 감정, 눈먼 의지의 힘인 ‘아리만의 힘’(옛이야기에서 늑대로 표현)에 의해 정신에서 멀어졌다가 정신의 정화작용을 통해 다시 ‘영원성으로 해방’된다. 

“성배의 성은 육신이 잠드는 동안 정신이 깨어나는 경험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성배의 성’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한데, 잠을 자면서 정신을 깨운 상태를 나타낸다. 이건 상징을 넘어선 진짜 현실적 체험이다. 잠을 잘 때 정신이 무의식으로 넘어가지 않게 붙잡는 것이라니!

"잠들 때 우리의 상상적 삶이 어느 결에 흩어지지 않게 하려면 내면의 중력을 획득한 상태여야 한다...사고하는 힘을 농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면상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사고하는 힘을 깨어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고조된 의식의 힘을 통해서만 어둠의 작용을 머리에서 다시 몰아낼 수 있다. 그러면 매일 아침 몸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정신이 깨어난다.”

아...상상력의 힘을 키우면 이런 단계가 오는 걸까. 근데 읽기만 해도 피곤해진다. ㅠ.ㅜ 잠잘 때도 깨어있어야 하다니, 물론 육체의 피로가 풀리는 것과는 다른 영역이고, 오히려 ‘낮에 쓴 힘이 충전되는 식물적 과정’이라고 한다. 옛이야기를 통해 그 과정에 닿을 수 있기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