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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지나온 나선 위에 주인공으로 다시 서서...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5기 2020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지나온 나선 위에 주인공으로 다시 서서...

고래의노래 2020. 12. 14. 15:54

 독립적인 처녀여신들, 상처받기 쉬운 관계지향적 여신들을 지나 마지막 여신 그룹 '창조하는 여신'에 당도했습니다. 관능적인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으로만 알고 있던 아프로디테를 저자는 창조하는 여신으로 재해석합니다. 아프로디테는 여러 관계를 넘나들었지만 결코 희생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관계에 수용적이면서도 자기자신의 욕구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탄생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집중되있으면서 수용적인 '아프로디테 의식'은 창조성의 근원적 힘입니다.

 

 우리는 아프로디테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던 때를 떠올려보면서 창조성이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았어요. 몸이 성적인 자극에 눈을 뜨는 사춘기부터 한창 이성관계에 집중하던 20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프로디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몸으로 관능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탱고과 스윙같은 춤에 매혹되어 배웠던 경험도 있었지요. 춤에 빠졌던 경험은 모임벗들에게 공통된 것이어서 매우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아프로디테 원형은 나의 기본적인 기질, 부모님의 반응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 상대방에게 순간적으로 몰입하여 자주 오해를 사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쉽게 빠져들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기도 했어요. 그런가하면 상대에 따라 태도를 바꾸어 내가 원하는 관계로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성적 욕구와 표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몸으로 얻는 희열에 대해 죄의식을 갖기도 했지요.

 

선택이라는 창조의 순간들...

 육체적 감각 이외에도 아프로디테는 교감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가 의도하는 바에 집중하는 상태에서 서로 새로운 깨달음이나 고양된 힘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보니 우리의 모임이야말로 아프로디테 의식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에 대해 깊게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성장과 변화에 대한 응원 속에서 조금은 쓰릴 수 있는 나 자신과의 대면을 견딜 힘을 낼 수 있었지요.

 

 그런 돌아보기 속에서 창조에너지가 우리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에 내가 무언가에 몰두했던 모습은 아이가 생기면서 변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집중하게 되었죠. 그건 내 안의 창조에너지가 상황에 맞추어 초점을 달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그 창조에너지의 초점이 나에게 되돌아오는 시간이 오겠지요.

 

 그러한 깨달음은 창조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창조한다는 것의 가장 큰 의미는 삶을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며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바라보니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삶의 창조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난 날의 태도와 선택에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일하는 걸 즐기지 못했고 일을 창조성과 연결하기보다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최근 가장 강렬하게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선택이 관계지향적 여신의 영향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는 걸 이제야 자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랬기에 통과할 수 있었던 삶의 지점들이 있었다는 것도 이제 알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안타까웠던 선택의 순간들도 모두 나의 최선이었습니다. 주변 상황과 관계,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나의 에너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죠. 주인공이든 희생자든 그 선택의 성격과 관계없이 분명한 점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으며 삶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모든 경험은 나의 자산이며 지나온 날들 위에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인생은 우리에게 되풀이하여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우리가 의식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면 우리가 극복할 필요가 있는 것들과 맞닥뜨릴 기회를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내용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선형으로 진행되는 삶을 돌고 돌아 우리는 비슷한 질문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가족이 내 최고의 가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가족을 선택한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다르지요. 내가 원하던 직업이 아니라고 여겨왔는데 일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내 욕구를 향한 일방향의 의지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내 욕구를 잠시 보류하는 것이라도 그건 주인공으로서의 적극적인 선택일 수 있지요.

 

Abstraction White Rose_1927_Georgia O'Keeffe


 위 그림은 조지아 오키프의 <Abstraction white rose : 백장미 추상>입니다. 휘몰아치는 검고 흰 소용돌이 태풍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흰색 장미지요. 책에도 나오듯이 오키프는 아이를 낳고 싶은 욕구와 작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주변 상황과 인물들과의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섞여 갈등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오키프가 자신의 그림들이 화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창조성을 그 방향으로 뻗어가기 시작하며 아이에 대한 욕구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요. 고뇌 끝에 오키프가 자신의 선택으로 엄마의 가능성을 포기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금의 나를 성실하게 대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내 안에 올라오는 매혹적인 욕구들이 어떤 목소리인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을 통해 덜어낸 생각과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우리를 챗바퀴가 아니라 삶의 나선을 따라 나아가게 합니다. 그 나선을 멀리서 바라보면 오키프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띄고 있지 않을까요.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고 상황이 어떻다는 것도 알았지요.

나는 이 특성들을 나 자신으로 확신했으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자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기반으로 가슴으로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우리는 11주동안 함께 책을 읽고 나에 대해 집중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 안에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여신들이 힘이 자각되는 듯 했어요. 우리는 페르세포네+아프로디테이기도 했고, 아테네+아프로디테이기도 했으며, 데메테르+아르테미스이거나 헤라+아테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신이 바로 나인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중독된 욕구와 원형의 충동 사이에서 내면의 순수한 목소리에 한번에 연결되길 바라는 완벽주의도 자각하게 되었어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두 책에서 모두 내면의 영정 성장과정을 알콜중독 재활모임에 비유합니다.우선 지금의 난감한 상황을 인정하고,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을 받아들인 후에 자아보다 강한 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언가 나타나서 구해줄 것'이라는 옛이야기 속의 전형적인 줄거리가 상징하는 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아이러니하게 보입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줄 꺼'라는 기대를 포기하며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와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도 나오니까요.

 

 내 한계를 인정하고 더 큰 힘에 연결되길 기원하는 것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다림이며 지금의 나를 붙잡고 '더불어 기다리는' 것입니다. 삶의 주인공으로 살지만 취약한 내 상태를 인정하고, 내 의지만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에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나에게 온 답은 내 의식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여정을 멀리서 바라봤을 때 나에게 필요한 과제겠지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 또한 주인공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권의 책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내가 바라는 미래와 모두 마주하며 우리가 보내야할 것과 환영할 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아요.


* [내 안의 여신찾기] 모임은 3개월동안 두 권의 책을 읽고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면서 내면의 힘을 발견해가는 여성들의 내면 여행 모임입니다. 매년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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