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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살 수 있다는 위로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5기 2020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살 수 있다는 위로

고래의노래 2020. 12. 6. 17:07

 열번째 모임에서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를 누군가와의 관계로 인해 삶이 정의되는 관계지향적 여신원형으로 정의내립니다. 각각 아내, 엄마, 딸이라는 역할을 대변하며 여성의 생애주기를 반영하는 여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의해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희생되기도 쉬운, 강점과 약점이 극명한 여신들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는 관계의 탄생 속에서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은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 헤라를 넘어 배우자와 관계 맺기


 헤라는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의 아내로, 스스로 굉장한 힘을 가졌음에도 아내가 되어서야 자신이 완성되었다고 느끼는 원형입니다. 결혼에 대한 욕구가 올라오는 것은 헤라 여신 원형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결혼을 결심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헤라 원형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었는지 이야기해보았어요. 모임벗들 모두 흔히 결혼적령기로 여겨지는 시기에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고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배경이 되는 감정과 욕구는 너무나 다양했어요. 결혼 자체를 적당한 나이에 수행해야 하는 인생의 과제처럼 여기기도 했었고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내 삶을 서포트해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고, 집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상대방의 제안에 이끌려 결혼을 하기도 했지요. 
 결혼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연애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조건이 중요했던 벗이 있었던 반면 상대방의 능력과 상관없이 내가 좋으면 그만인 경우도 있었지요. 사귀는 것은 곧 결혼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연애를 시작하지 못했던 분이 있던 반면 많은 사귀었지만 매번 결혼을 생각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결혼 관계 없이 아이만 낳고 싶기도 했었지요. 안전함, 경제적 안정감, 충분한 애정과 집중 등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다들 달랐습니다. 어린시절에 채우지 못한 욕구를 배우자를 통해 보상받으려 하기도 했고 부모님의 가치관을 깊게 내면화해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는 걸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어요. 

 헤라가 결혼의 원형이라고 하지만, 결혼을 결심하고 유지하게 하는 단 하나의 힘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관습, 부모님과의 관계, 다른 여신 원형의 욕망 등 정말 다양한 힘들이 작용하여 삶의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게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힘들과 나와의 관계가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결혼은 서로에 대한 구속이라는 믿음이 강했고 바람은 배신이며 서로간의 파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헤라 원형이 결혼과 배우자를 대하는 방식에 가까웠었죠. 그렇게 날 것이었던 원형적 에너지는 나라는 삶의 필터를 거치며 힘이 약해지고 다양하게 변주되었습니다. 결혼이라는 형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고, 서로간의 분리를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제서야 배우자와의 관계 속에 감정적으로 원가족들을 분리하여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이라는 관계 형식에서 자유로워지자 오히려 배우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듯 했어요. 

 


:: 데메테르를 통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가기


 데메테르는 누군가를 보살피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여신원형입니다. 생애주기 상 지금의 우리가 가장 많이 영향을 받고 있는 원형이지요.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어린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기에 우리가 지금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은 양육자로서 엄마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데메테르 원형의 영향 아래서 빠지기 쉬운 함정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거절할 줄 몰라서 겪게 되는 번아웃과 이를 막고자 무의식적으로 하게되는 수동적인 공격은 '엄마와 아이' 관계에 대한 어느 책에서도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데메테르 여신 원형의 힘은 임신, 출산, 육아라는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었지만 때로는 기질 안에서 기본적으로 작용하거나 변화에 대한 갈망 속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보다 어린 아이들을 예뻐했고 가족들이 많이 모인 날에는 사촌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지요. 지치고 힘든 상황을 바꿀 힘을 내 안에서 찾지 못할 때 임신이라는 도피처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바깥에서 요구되는 온갖 책임과 요구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는 은둔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오직 임신을 통해서만 그것이 허락될 수 있다고 느꼈었지요. 우리는 임신을 원하는 마음이 원형의 영향인지, 외부로부터 내면화한 중독된 욕구인지, 내 두려움에 대한 회피인지 잘 구별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데메테르의 원형은 아이든, 업무든 자신이 만든 창조물과의 관계로부터 스스로의 창조성을 확인하려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메테르 원형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 같았어요.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 데메테르를 고용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 페르세포네 안에서 열린 가능성을 확장시키려면


 페르세포네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가장 수동적인 여신원형입니다. 주로 자신의 욕망이나 힘을 모르는 상태로 다른 이에게 의지하는 어린 시절에 페리세포네의 모습을 가지기 쉽지요. 남성이 투사하는 여성상을 내면화한 여성을 저자는 '아니마 여성'이라고 칭하는데, 20대 초반을 떠올려보면서 내가 전형적인 아니마 여성이었다는 걸 깨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깥의 기대를 쉽게 받아들이는 페르세포네의 취약함은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하데스로부터 지하세계로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이후 페르세포네는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여신이 됩니다. 인생의 상실과 좌절을 겪은 후에는 어둠과 빛, 현실과 무의식을 오가는 매개자로서의 능력을 얻게 되는 거죠. 경계를 넘나드는 페르세포네의 가능성은 틀을 깨는 시도와 모험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페르세포네 유형에 대한 저자의 조언 중 인상적이었던 건 성장을 위해서 즐겁지 않아도 열심히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마음을 정한 후 그것을 끌고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 이야기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섬세한 작업이어야 하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했습니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를 찾아가는 것은 단순히 표면적인 안락함을 향한 것이 아니고, 내게 필요한 것을 감당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 속에서 아우성치는 여러 소리들 중에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원형이 활성화될 때의 모습이 모두에게 다른 것처럼, 영적성장을 향해가는 길 또한 각자의 방법이 있습니다. 

 

 

::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것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불편했습니다. 책의 내용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느껴졌었어요. 하지만 이제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관점으로 나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각 원형의 아이들을 키우는 조언 부분에서는 내가 바랐던 부모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나에게로 가져와 관계로부터의 강박을 내려놓자고 생각하니 편안해졌어요. 예전에 읽으면서 책 구석에 적어놓았던 질문에 이제 내가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결정을 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태도를 아이들에게 뿐 아니라 이제 나 자신에게도 선물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책 속에서 여성의 에너지가 축소되어 이야기되는 것이 계속 걸린다고 하셨어요. 또 저자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이야기하는 헤라 원형 여성은 중산층 계급 이상의 여성에 한정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헤라의 결혼 만족도에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경제적인 안정이니 만큼 어쩔 수 없겠지만 빈곤 계층 여성들의 무의식에도 분명 존재할 헤라 여신 원형을 어떤 식으로 영적인 성장에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건지 궁금해졌어요. 또한 저자는 데메테르형 엄마의 모습을 딸이 유괴되기 전과 유괴된 후로 구분하면서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들어 성장을 방해하는 후자의 모습을 딸이 유괴된 후의 데메테르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구분을 만드는 것이 '유괴'사건이었다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지요. 요즘 시대에 많은 엄마들이 유괴 후의 데메테르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여성들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개인적인 충만함과 믿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저자가 주목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우리는 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있는 부분은 적극 수용하고 지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괄호쳐놓는 힘으로 저자와 마주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선물했던 시간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Viva La Vida_1954_Frida Kahlo


 위 그림은 프리다 칼로의 유작인 'Viva la vida'(삶이여 영원하라)입니다. 삶의 아픔을 작품으로 표현한 예술가들이 많지만 프로다 칼로는 그 중 단연 돋보이는 화가입니다. 그는 쇠파이프가 몸을 통과하는 끔찍한 사고 이후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고, 이후에는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에서 심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심신의 상처와 아픔을 그림을 그리며 견뎠지요. 칼, 가위, 피, 잘린 몸 등이 나오는, 한 눈에 보기에도 '나 상처받았어!'라는 외침이 들리는 작품들을 평생 그렸던 프리다는 숨을 거두기 8일 전에 이 그림을 그립니다.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수박이 빨간 속살을 드러낸 정물화입니다. 수박에는 그림의 제목인 'Viva la vida'가 쓰여져 있네요. 저는 이 그림을 보며 '칼로 가볍게 몇 번 찌르기'라는 그림이 오버랩되었어요. 칼에 찔린 나체의 프리다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고 옆에는 칼을 든 디에고가 웃고 있는 그림입니다. 두 그림 모두 칼로 찔려 빨강이 드러났지만 하나는 삶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다른 하나는 삶을 찬미합니다. 피는 과육이 되었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돌아보았을 때 그가 느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온전함'이었을까요?

 상처받은 여신이라는 그룹명부터가 애처로운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처' 자체가 아니라 상처를 딛고 도약하는 여신들의 회복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라는 한주기를 끝내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하고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고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계절적인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다양한 인간 경험이 유형을 지니고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아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처녀여신들이 성장을 위해 우리가 닿아야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인간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삶의 늪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은 오히려 우리를 이끌어주는 이 변화의 리듬, 삶의 패턴을 받아들이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의 태도입니다.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며 이 힘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이 생의 신비입니다. 상처받은 여신 원형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 아닐까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살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입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우리 속의 여신들'의 마지막 여신, 아프로디테를 만납니다. 집중과 수용, 삶의 리듬을 넘어, 창조하는 여신 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아요. 

 

 

* [내 안의 여신찾기] 모임은 3개월동안 두 권의 책을 읽고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면서 내면의 힘을 발견해가는 여성들의 내면 여행 모임입니다. 매년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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