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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순간의 점들이 만드는 나만의 길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5기 2020 가을

[내 안의 여신찾기] 순간의 점들이 만드는 나만의 길

고래의노래 2020. 11. 30. 17:23

 아홉번째 모임에서부터 우리는 두번째 책,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가 몸의 메세지를 통해 내면의 인도자에게 다가가는 이야기였다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는 마음 속 원형이라는 에너지를 통한 자기발견을 이야기합니다. 

 칼 융은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 있는 본능적 행동유형 에너지를 원형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저자는 이 원형 개념에 여성주의적 통찰력을 더하여 여성들 내면의 힘을 그리스 여신들을 통해 구체화하여 설명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주요 여신들을 처녀 여신, 상처받기 쉬운 여신, 창조하는 여신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이 중 처녀여신(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들은 자신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집중하는 힘을 지닌 여신들입니다. 이 여신들이 보여주는 진취적이고 논리적인 태도와 독립성은 이제까지 '남성성'의 영역으로 여겨져왔고 융 심리학에서도 이를 여성에게 내재된 남성성, 아니무스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가치에 몰입하고 나아가는 힘은 이미 '여성적인 능력'이며 여성들 안에 내재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아르테미스는 자연친화적이고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자매애를 중요시하는 반면 자신의 믿음을 흑백논리로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상처입힙니다. 아테나는 권력지향적이고 그렇기에 현재의 권력인 남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부장제와 현체제를 옹호합니다. 논리적으로 분석적인 그녀는 비판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그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헤스티아는 집안 살림을 의미있게 여기며 집을 따뜻한 공간으로 창조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인간관계나 업적, 권력에 초연하고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관계 속에서 자기 주장을 확실히 펼치지 못합니다. 이렇듯 세 여신 모두 스스로에게 충실하지만 집중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태도는 각기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처녀여신 원형이 활성화되어 있을까요? 모임벗들 중 많은 분들이 아르테미스를 꼽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녀의 구분과 차별적 태도에 분개했었고, 동등하게 대우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른들에게 매우 순종적인 아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과 억울함에 답답해했었지요. 원형의 에너지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진취적인 태도와 독립성에 대해 긍정해주지 않는 부모 아래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며 비판적인 감정을 키워갔습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연약한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삶을 바꿔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것에 슬퍼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거부감을 갖기도 했었죠. 약한 존재가 강자에게 당하는 모습에 특히나 분노하였고 여성들끼리의 연대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계속 그것을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다른 유형에 대한 감정과도 연결되었어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창조하는 헤스티아 여성의 자질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주변 상황과 별개로 혼자서도 충만한 헤스디아의 모습에서는 강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고 혼자만의 만족감 안에 머무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변 상황과 생애주기, 부모님과의 관계 등에 따라서 내면의 원형들은 강하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특정한 원형 에너지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요. 사회활동을 고려하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면의 경제적 감각과 논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나와는 전혀 다른 원형이라고 여겼던 아테네 여신 원형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아테네 여신의 힘이 내 안에 있고 이를 활성화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장애없는 세계' 이성자

 위 그림은 이성자 화백의 '장애없는 세계'라는 작품입니다. 남자의 바람을 눈감아주는 것이 여성의 미덕이었던 시절, 이성자 화백은 남편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을 결정하고 어린 세 아이를 한국에 남겨둔 채 파리로 떠납니다. 그리고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여성에게 가장 안전했던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을 버리고 독립을 선택한 거죠. 분연한 선택이었지만 마음 속에 걸림돌들이 언제나 덜거덕거렸을 것입니다. 그는 그 돌들을 만지작거리며 캔버스 위에 점들을 찍었고 그림에 자신을 녹여냅니다. 그렇게 여성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다룬 연작들은 프랑스 화단의 인정을 받았고, 15년만에 한국으로 금의환향해서 다 큰 아이들과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몇 년 뒤 이 그림을 그립니다. 이 때의 점들은 그리움과 절박함을 담은 듯한 초기의 점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마음의 돌들이 녹아내리고 내가 원하는 바에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새로운 챕터 앞에서 선 설레는 점들처럼 느껴졌어요. 이혼과 프랑스 이주, 그림 공부라는 선택의 순간에 그리고 고향과 아이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며 나에게 집중했던 순간에 이성자 화백의 내면에서는 처녀 여신 원형들의 에너지가 강하게 작용해 도움을 주었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의 점들은 그 에너지의 흔적이겠지요.  


 여신 원형들은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어 존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여신 원형은 물론이고 융이 남성성, 여성성으로 구분한 내면의 힘 또한 마찬가지지요. 어짜피 모두 우리 안에 있는 거라면 남성성이라 구분된 힘을 여성성의 힘으로 되돌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단어가 가지는 힘이자 한계는 무언가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구별해내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불편한 감정들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 나서야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언어의 한계는 선명해진 구분선 밖으로의 상상을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에 '남성성'이라는 이름이 부여되면 여성으로서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지요. 그럴 때 그 힘을 여성성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렸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내면을 남성성, 여성성으로 구분하는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 여신들 자체가 고대의 위대한 여신이 가부장제 사회를 지나며 분화된 것이기에 그 시대의 여신들을 차용하는 것이 '다르게 생각'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구심도 들었어요.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함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구분과 분리를 넘어서 한 개인을 바라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점차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요. 위대한 여신으로부터 시작해 각 기능이 여러 신들로 분화되었고, 사람이 신이 되었다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옛이야기들이 변화되어 왔듯이 인류가 이제까지 이루어온 인식의 방향은 분화와 하강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더 쪼개질 수 없을 만큼 세분화된 후엔 어쩌면 다시 통합으로 나아갈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규정된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한편 그 모든 가능성 안에서 막막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우리는 스스로를 한계짓지 않으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변화하고 흔들리는 내가 앞으로 계속될거고 분명히 자각할 수 있는 건 순간의 나뿐입니다. 명확한 구분이 일어나야 완성이라고 학습된 상태에서 끝이 없는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은 감당하기 힘든 진실일 수 있지요. 
 그 막막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게 나를 잡아주는 내면의 인도자가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내가 진실할 수 있게 지탱해주고 지지해주는 하나의 힘 말이지요. 그것은 융이 '자기'라고 했고 누군가는 신이라고 하는 거대한 끌어당김의 에너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향하지 않을 때 그 힘은 불편한 감정으로, 몸의 증상으로 메세지를 보냅니다. 특히나 꿈에서는 그 메세지가 잘 느껴지는 듯 했어요. 모임에 오랫동안 참여하면서 우리는 나의 여성 정체성과 관련된 꿈들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 문화의 억압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나를 도와주는 여성의 힘을 느끼거나 여성으로서의 설렘을 다시 경험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순간의 점들이 모여 만들어지고 있는 점화라면, 지금 우리 삶의 캔버스에는 어떤 점들이 찍혀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까요? 내면의 진취적인 힘을 어떤 이름으로 구분하든 그것은 우리 안에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가능성이면서도 한편 나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나'라는 여정을 잘 빚어보고 싶습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로 대표되는 관계지향적 여신들을 만납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의 생애주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여신들일텐데요, 쉽게 드러나는 취약함 가운데 어떤 힘이 숨어있는지 함께 이야기나눠보아요. 

 

* [내 안의 여신찾기] 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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