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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월경, 자궁, 난소] 파괴와 창조 사이의 혼란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5기 2020 가을

[월경, 자궁, 난소] 파괴와 창조 사이의 혼란

고래의노래 2020. 10. 19. 01:08

 세번째 모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의 신체 기관들의 부분 부분에 집중하며 해당 기관과 연관된 경험과 건강상태들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이번 모임에서는 월경과 월경기관인 자궁, 난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자는 월경을 여성적인 힘의 원천으로 바라보고 이에 담긴 지혜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월경은 어떤 의미이고 경험일까요. 한 달에 한 번씩 일어나는 몸의 현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지 월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나누었어요. 모임벗들의 초경의 기억은 가볍고, 자연스러웠습니다. 특별한 축하나 의식이 있지 않았지만 '올 게 왔다'는 분위기에서 월경이 여성 삶의 일부라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친구나 자매가 주는 살뜰한 보살핌과 긍정적인 시선에 마음이 고양되기도 했습니다. 엄마와 나, 친구들와 나 사이에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월경 경험이 늘어나고 월경에 대한 외부의 시선과 태도가 덧대여지면서 우리만의 소중한 비밀은 다른 이들에게 부끄러운 비밀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월경혈이 옷에 묻어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 경험이 쌓였고 월경은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거리가 아니라는 걸 주변의 분위기로 익히게 되었죠. 월경은 배려받아야 할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하기에 극복해야할 개인적인 사정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이 불합리함을 자각하면서 월경 상태를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곤 했지만 혹시 내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기검열이 이어졌지요.

 월경통, 월경증후군, 심지어 월경혈이 밖으로 배출되는 증상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 몸이 지극히 건강하다면 몸의 불편함을 야기하는 이러한 증상들은 일어나지 않을꺼라고 하지요. 월경과 관련된 신체적 불편함들은 신체 밸런스가 깨진 건강부국 여성들만이 겪는 일이라는 연구도 있고요.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월경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지 우리는 조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어느 시점'에 '누구'의 자연스러움인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광고 속 월경혈이 빨개졌다. '라엘 생리대' 광고

 


 자연스럽고 건강한 월경상태라는 하나의 기준을 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내 월경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자연스러워질 필요는 있습니다. 월경이 나에게 일으키는 감정과 신체적 증상을 잘 들여다보고 그것이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살펴보는거죠. 그런 면에서 월경혈을 빨갛게 표현하고, 월경의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생리대 광고의 변화는 고무적으로 느껴집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임신가능여부때문에 월경주기에 신경쓰게 되면서 월경을 조금 예민하게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스스로의 몸에 너무도 무지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월경주기가 알려주는 순환의 의미가 애틋하고, 쉬어갈 때를 알려주는 그 리듬이 고마워서 이를 잘 들여다보고 있다는 모임벗의 고백에 여성으로서의 제 몸이 따뜻하게 긍정되는 듯 했어요. 주기적으로 취약해지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 내면의 인도자에 닿으려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월경현상이 일어나는 자궁과 난소는 차크라 2번과 관련있는 기관입니다. 대인관계와 창조성에 대한 부분이죠. 저자는 난소가 여성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쓰는 힘이며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면의 창조적 지혜를 돌보지 못할 경우 골반 내부 기관들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창조성과 내면의 욕구들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응원받고 지지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되고 억압받고 있다고 느끼면 표현되어야 할 에너지가 세상으로 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자궁과 난소의 건강을 위협하지요. 우리는 주변의 기대와 요구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봤는지 살펴보았어요.


"골반의 문제와 관련있는 전형적인 심리적 패턴은,

여성이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변화와 독립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얘는 키우기가 쉬워, 손이 안가. 너무 착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양육자의 기대를 내면화하고 거기에 충실히 부응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렇게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고 내 욕구를 무시하는 패턴이 반복되자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따르려 하면 어색함을 넘어 죄책감이 느껴지고는 했어요. 돌아보면 '착하다'라는 칭찬은 근본적인 선함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그 이면의 '유용함'에 대한 긍적적 평가였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20대에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기에 독립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넓혀놓은 큰 울타리 안의 모험들이었죠. 나의 여러 선택에 반대하시다가도 결국 "너를 떨어져 나가게 두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강한 연결욕구가 선택 자체에 대한 판단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30대 이후엔 부모님에게 오히려 의존적이고 독립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고 하셨어요.

 이렇듯 우리는 바깥의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스스로의 욕구와 힘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왔습니다. 의존하게 되는 과정은 단순히 억압의 형태만은 아닙니다. 칭찬을 통해 한 방향으로 내면을 길들이거나 이제는 필요없는 허용을 통해 권위를 다시 확인하게 하면서 이루어지기도 했어요. 건강한 분리를 통한 단단한 독립은 나를 존중하는 길에서는 필수일 것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몸의 증상들이 정말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지는 아직도 아리송합니다. 하지만 모임벗들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연관성이 조금씩 드러나보여서 신기하기도 해요. 분명한 것은 신체적, 감정적 아픔이 삶을 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이라고 미뤄놓은 과제들이 절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며 그 땐 나의 몸상태, 상황과 상관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지성으로는 창조성을 통제할 수 없다'라는 저자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고 느껴졌어요.

 창조성은 새롭게 만드는 힘이지만 그 전에 파괴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것이 파괴되어야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때문이죠. 파괴와 탄생 사이에 깊은 혼란이 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유독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나의 주제나 단어도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변주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원인과 결과가 꼭 하나로만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점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내면의 인도자와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은 거침없고 강인한 돌진이 아니라 스스로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게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진짜 나를 찾고싶다면서 오히려 내가 나의 성(性)을 배제해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당당하게 바로 서는 것은 하나의 모습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혼란은 변화를 향한 과정일 것입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부분에서 좌절을 겪지 않는다면 병은 생기지 않는다."는 저자의 한방향 조건식에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그 조건으로 생각해보는 시도에 기꺼이 마음을 열어봅니다. 파괴했다가 다시 새로워지는 순환을 여성들은 월경을 통해 이미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몸의 지혜를 내면으로 잘 가져가 보아요. 혼란 속에서 휘청거리면서도 쓰러지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게 함께 손잡고 나아가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 안의 여신찾기> 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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