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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일상학자] 아홉번째 공유서 : 진심이라는 무거운 가치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공부 프로젝트, 일상학자

[일상학자] 아홉번째 공유서 : 진심이라는 무거운 가치

고래의노래 2020. 9. 10. 18:04

 진심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

 일상학자의 지난 모임과 요즈음 사회상황, 일을 하며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여들었다.

 권위와 인정, 그리고 연결은 스펙트럼처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받아야 스스로가 괜찮게 느껴지는 서열평가 시스템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나에게 주변의 인정, 특히나 권위자의 인정은 강력한 한 방이다. 여성인 나에게 그 권위자는 가부장제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 틀에게 벗어나 나에게 스스로 권위를 주고자 할 때 나는 왜 자꾸 바깥으로의 연결에 집중하는 걸까. 내가 여러가지 여성들의 모임을 기획하고 만드는 것을 보면서 한 친구가 나에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이러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그건 이유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모든 행위는 결국 나에게 수렴되는 것이고 나의 충족감에서 시작된 일이 다른 이에게 가 닿을 수는 있지만 처음 그건 그 시작의 목적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을 했었다. 그 때는 매우 알쏭달쏭하던 그 말이 지금 다시 나에게 되돌아 오고 있다.
 융은 "나의 책은 내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책을 쓰고, 내가 기록집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나 자신의 힘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연결과 연대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걸까.

 

 <여성, 삶을 글로 쓰다>라는 모임을 4주간 진행했었다. 여성의 생애주기를 4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 집중하는 여성작가의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를 글로 쓴다'는 마음의 힘을 발견해보는 모임이었다. 그 중 유년기에 대한 책으로 함께 읽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노년기의 책이었던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의 울림이 컸다.

 

“목소리를 키우라는 건 크게 말하라는 뜻이 아니예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소리내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라는 뜻이죠.…

주저한다는 건 소망을 물리치려는 시도예요. 하지만 여러분이 그 소망을 붙들어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면,

그땐 속삭여 말해도 관객이 반드시 여러분 말을 듣게 돼 있어요” _ 폴란드 배우, 조피아 칼리스카

 

의료계 파업과 도서정가제, 그 안의 진심이란?

 나의 간절함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사람들을 움직인다. 이번 의료계 파업 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는 방식은 매번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채 삐걱거렸다.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손동작 캠페인을 비꼰 것이나 공공의대의 문제점을 알려주겠다며 홍보한 4지 선다형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만의 성인 엘리트주의에 빠져 얼마나 소통에는 무지한지만 알려줄 뿐이었다. 애써 의료계의 주장이라는 것을 꾸역꾸역 찾아서 들여다보았지만 확실하게 고개가 끄덕여질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은 절박했고 자신에게 그 행동은 진정성이 있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나에게는 진실이지만 진심은 아닐 수도 있는걸까. 나만 이롭게 하기 위한 절실함은 진심의 영역이 아닌건가.

 

 의료계 파업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이번 도서정가제 이슈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현재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책방 생존에 있어서 도서정가제가 필수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폐지 운동을 하는 쪽의 입장도 알아봐야겠다 싶어 찾아보았다. 그들은 도서정가제 자체보다는 동네책방과 인터넷 서점, 대형서점에 도매상이 공급률의 차이를 두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며 출판된지 오래된 책들은 오히려 가격정책에 유연함을 주어야 팔릴 수 있어서 파는 쪽에도 사는 쪽에도 이득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 책방 안에서도 이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모아봐야겠다 싶어 주간회의 때 이야기나누어 보았는데, 한 분의 책방지기가 도서정가제 폐지 쪽 입장이었다. 동네책방들이 SNS에 도서정가제 폐지반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포스팅을 하고 있고, 우리 책방도 이런 액션을 취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나마 책방지기들 모두의 동의를 구하는 게 맞겠다 싶어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두 입장 모두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데는 맥을 같이 했다. 그런데 그 방법에 있어서 한 쪽은 자본주의 자유경쟁이 오히려 다양한 시도가 나올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쪽은 자본주의의 폭거를 막는 제도적 지원만이 이를 보장할 수 있다는 거였다. 책방을 운영하는 우리 안에서도 이렇게 의견 통일이 안된다니 좌절감이 들었다. 결국 바깥에서 보기에 동네책방의 도서정가제 수호운동이 '나 좀 살려줘!'라는 이기주의로만 보인다면 의료계 파업이랑 다르지 않다는 걸까? 진심이 멀리까지 울려퍼진다는 건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걸까. 진심이란 건 뭘까.

 

책을 읽고 정리하고 공부한 부산스러움의 현장,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온 이런 공부가 진심겠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 오랫동안 글쓰기 모임에서 활동해 왔던 69세 저자가 처음으로 펴낸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그가 얼마나 타고난 이야기꾼인지 여러 에피소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나 '수험생도 없는데 왜 밤마다 오랫동안 불이 켜져 있는지' 가볍게 물어보는 지인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마음이 참 먹먹해졌다. 노년까지 가져가고픈 내 진심, 내 가치는 무얼까 모임벗들과 함께 생각해보게 됐다.

 

다른 이를 향한 진심과 나를 향한 진심

 <달빛오두막> 이번 달 모임은 코로나 상황 상 온라인으로 처음 진행되었다.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가 지정도서였는데, 이 책을 읽고 머릿 속에 생각이 휘몰아쳐서 많은 모임벗들과 이야기나누고 싶었다. 영원한 숙제처럼 미뤄왔던 분석심리학의 여성성, 남성성 개념을 정면으로 대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성정체성과 화해의 과정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에 '여성성'의 원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필수적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계속 여성성이라는 단어에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그 단어가 사회적으로 오염된 채 억압의 단어로 우리에게 사용되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여성적'이라고 이야기되는 특질들이 이 책에서는 '여성성'의 원형으로 이야기되는데, 가부장제를 주장하는 책은 물론 아니다. 일단 '이미 그렇게 기능하는 것'과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당위'는 다르다는 걸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라고 중간 결론을 내렸는데 여러 번 읽으며 좀 더 잘 이해해보고 싶다. '페미니즘의 원형을 찾아서'라는 연구에도 매우 큰 영향을 줄만한 책이었다.

 

 나에게 이렇게 큰 의미를 준 책이어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나누고 싶었는데, 유독 이번에는 모임신청자가 적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내 지인들에게 홍보를 해가며 간신히 모임을 열 수 있었다. 모임을 열 때마다 고민이다. 홍보에 어디까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걸까. SNS를 보다보면 나처럼 개인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모임들이 참 많다. 그 많은 모임들 중 선택되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홍보에 더 힘써야 하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마음을 쏟으면 그러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걸까? 나는 좋지만 남들에게는 그닥 의미가 없는 거라면 내가 계속 모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맞을까...다른 형식이 필요한 걸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기에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지금의 이 일들을 앞에 두고 난 '진심'이라는 덫에 걸려버렸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대방의 온전한 고유함을 느끼고, 그 때문에 자신과의 분리감을 동시에 느낀다.

고통스럽지만 이 상황에서 거리감과 분리 그리고 관계유지의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최선책은 모든 것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고요함이 필요하다." _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때로 진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닐 때 빛나기도 하고, 오롯히 나에게 집중할 때 솟아나기도 한다. 경계를 알고 분리된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것과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을 바라는 마음은 서로 충돌한다. 연결과 융합 속에서는 나를 잃는 경험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신화 속 영웅들처럼 억압 속에 여러 과제를 통과하고 나를 세워낸 후에야 다른 이들과의 사랑이 가능해지는 거겠지. 그렇다면 결국 이야기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로 돌아간다. 사회가, 내가 살아온 습이, 나를 도구화하려는 누군가가 심어놓은 욕구를 걷어내면 보이는 진짜 내 욕구. 그것이 진심, '진짜 마음'이라면 자연스럽게 나도 위하고 우리도 위하는 그러한 욕구가 되는 거 아닐까. 자기실현이라는 길이 그렇듯.

 어떠한 가치를 쫓으며 그것은 삶으로 가져올 구체적인 행동방법에는 아리송할 땐 일단 그저 끙끙거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진심을 담아 하루하루란 어떤 걸까 고민하며 가보자.


* 10월 3일에 신화학자 고혜경 교수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옛이야기 속 여성성의 재발견' 온라인 강연이 있어요. 서초구에서 지원을 받아 무료로 진행되니 관심있으신 일상학자분들 신청해주세요. ^^ (홍보로 마무리...)

forms.gle/FxiXCson5ec3yUjw7

 

[옛이야기 속 여성성의 재발견] 온라인 강연

여성성이라는 단어는 가부장제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염되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미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 편향된 감정은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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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1~2번 만나 각자의 공부 과정을 공유하고 검토하며 그 결과를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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