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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여신모임 3기 : 4> 수치심을 버리고 다시 ‘처녀’로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 네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성적인 경험' 안에서 우리가 몸을 통해 상대방 또는 나 자신과 마주했을 때 어떠한 감정을 느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으로 인해 우리가 우리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되돌아보았지요.
성적인 경험 안에서 우리가 겪은 것들
좋아하는 사람과 스킨십으로 애정을 나누는 것은 분명 따뜻한 일이지만 그것이 '나의 행위'로 준비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습니다. 부모님의 시선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 행위가 과연 '그래도 되는 일인지' 끊임없이 검열했죠. 때론 그 행위로 인해 나쁜 일이 생긴거라며 죄책감을 현실과 연결해서 더 위축되곤 했습니다. 성적인 행위는 '우리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고 그 행위 속의 우리가 멀게 느껴지곤 했지요. 또한 일상의 스킨십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라는 프레임에 옭아매어져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가 상대와의 관계가 어려워질까봐 주춤거리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추행으로 여겨질 수 있는 상대의 행동을 호감의 표시로 이해하고 그것이 관계의 개선을 가져올꺼라 기대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의 성적인 경험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도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불쾌한 신체접촉, 기분나쁜 시선, 언어적 희롱들이었고 그 상황에서 우리는 말그대로 '얼어'버리곤 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보호하지 못했지요. 우리는 흔히 부정적인 성적 경험을 이야기하며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하곤 하지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대상화되는 것이 무서웠던' 건 아닐까요? 누군가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그것은 '존재에 대한 폭력'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의 감정이 무시된 그러한 '성적 대상화'에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 시선 자체가 상대를 인격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그래서 존중없는 행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저자는 책의 초반에 사랑의 에너지인 차크라 4번과 창의적 에너지인 차크라 2번을 동시에 사용할 때 많은 여성들이 에너지 왜곡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랑의 표현과 행위가 동등한 주고받음이 아니라 어느 한 쪽에 종속된 구조로 나아가게 되면 에너지가 틀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내가 누군가나 무엇에 이용당하거나 끌려다니고 있다면 '강간원형'의 영향 아래 있는 거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과의 스킨십에서조차 죄책감을 느끼고, 접촉에서 불쾌함을 느껴도 우리의 감정을 억눌렀으며, 당당한 그들의 성추행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는 했습니다. 그건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성적 대상화했거나 내가 스스로를 단죄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모두가 엄마였기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성교육으로 넘어갔었지요. 우리가 경험한 감정들을 겪지 않게 하려면 또는 억울한 판단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가 영원히 보호막을 쳐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두렵지만 아이들이 어떠한 일을 겪든 그들이 소중하고 반짝이는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걸 잊지 않게 하는 거겠지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의 나나를 불러내기
위 사진은 프랑스의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미의 세 여신'입니다. 니키 드 생팔은 어렸을 적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21세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가부장적 문화에서 억압받았습니다. 10대에 모델일을 시작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는데 임신과 출산이 이어지면서 몸매가 망가질꺼라는 걱정에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들로 인해 생긴 남성 혐오와 분노,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을 치유하기 위해 니키는 예술활동을 시작합니다.
위의 조각은 니키가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던 초기 활동을 지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세워나가는 시기에 작업했던 '나나' 연작들 중 하나입니다. '나나'는 불어로 평범한 여자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요. 풍만한 몸매에 알록달록 화려한 원색으로 장식된 나나들은 보기만 해도 생명력이 넘쳐흐릅니다. 위 사진 속 춤추는 세 '나나'들도 온전한 기쁨 속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네요. 통통한 몸의 라인을 당당히 드러내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에서 해방감마저 느껴집니다.
수치심을 던지고 처녀로 돌아가기
우리는 가슴이 크면 희롱당했고 가슴이 작으면 조롱당했죠. 마치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침대보다 크면 몸을 잘라내고 작으면 사정없이 늘였다는)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우고 우리의 몸을 재단하고 등급을 매겼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몸은 누가 자극받기 전에 감춰야하고 숨겨야하는 시한폭탄같았습니다. 몸을 드러내는 것은 범죄를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배웠으니까요.
저자는 우리가 섹스와 상관없이 성적인 에너지를 창조에너지로서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건 아마 우리의 몸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는 순간 가능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말로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할지 여러 고민이 많지만, 결국 우리가 '나나'처럼 우리 몸과 함께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삶으로 보여주는 것만큼 강력한 교육은 없으니 말이죠.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바로 그 인생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보아요.
저자는 '어떤 남성에게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완전하고 충실한 여성'을 '처녀'로 새롭게 정의내립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수치심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고 자신을 교육시키는 방법'뿐이라고 하지요. 그렇게 상처받고 웅크린 날들을 보듬으며 우린 점점 진정한 처녀성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장벽을 넘고 솔직하게 드러내어 말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따뜻한 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모성애(~366p)까지 읽고 만납니다. 아이들과의 이야기가 더 깊이 나오겠네요. 그 전에 우리 안의 나나와 함께 춤을 춰볼까요? ^^
* <내 안의 여신찾기> 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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