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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새여자 북클럽] 빚을 빛으로... '소년이 온다' 모임 후기 본문
12월 19일 새여자 북클럽 열한번째 모임에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도청에서 시민들의 시신을 분류하고 유가족에게 인계하는 일을 하던 선주, 은숙, 진수 그리고 동호를 중심으로 그 5월의 경험이 그들과 그들 주변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합니다.
"순간 때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처참한 시신들의 모습와 고문으로 하얗게 드러나는 뼈, 인격모독의 폭행과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 끔찍한 고문기억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집니다. 죽음과 고통의 공포 속에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내 몸이 지워지기를' 바라던 진수의 고백이 아프게 마음을 찌릅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제게 머문 잔상은 잔혹함이 아니라 숭고함이었습니다. 시취가 풍기는 건물 밖에서 나누는 카스테라와 요구르트, 둘이서 나눠 먹어야했던 한 그릇의 쉰 콩나물국, 나의 죽음을 바라되 너는 살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내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한강 작가는 군인들이 오기로 예고된 밤 도청 옆 YMCA 건물에 머물다 살해된 한 야학교사의 일기에 쓰여진 이 문장을 읽고 '소년이 온다' 글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깨달았다고 하죠. 저자의 그 깨달음이 진수의 입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바뀔 때마다 서술인칭과 문체가 달라지는데, 어느 때는 나의 독백이었다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대화체가 되기도 하고, 중심인물을 너로 호칭했다가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북클럽에서 읽은 책들에서 자기서사의 기법으로 강조했던 '거리두기'를 한강 작가는 서술형식의 변주들을 통해서 구현하는 듯 했어요. 그래서 독자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을 받으며 잔혹함 가까이에서도 숭고한 빛을 느끼고 그 빛으로 나아가길 소망하게 되나 봅니다.
작년 광주여행을 갔을 때 금남로 주변 건물에 여전히 선명한 탄흔을 볼 수 있었습니다. 5시 18분이면 금남로 시계탑에선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어요. 오월길 방문자센터에서 만나뵌 518 현장 목격자 어르신은 그 날의 공포를 말씀하시며 그 난리통에 서로를 살리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말씀하셨습니다. 폭도가 아니라 공동체였다고, 그래서 광주시민들은 518을 사람이 중심이 되는 민중항쟁으로 부르길 원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거짓말같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나라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책의 저자인 한강 작가는 스웨덴에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사람들은 44년 전처럼 거리로 나왔지만 이번엔 폭력도 살인도 핏자국도 없었습니다. 총 대신 응원봉이 들린 손에는 주먹밥 대신 선결제한 커피와 김밥이 쥐어졌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역사의 교차성과 동시성에 한강작가가 수상기념 강연 때 한 질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졌네요.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의 에필로그가 나옵니다. 여느 소설과 다르게 이 작품을 쓰여진 과정이 꽤 소상히 적혀있습니다. 518 민중항쟁이 있기 불과 몇달 전 한강작가의 가족은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합니다. 그렇게 518의 현장을 비켜갔던 작가는 그 역사에 대해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이사온 가족이 겪었던 그 날의 일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며 성글게 비어있는 부분들을 소설 안에서 채워갑니다.
'난 빚을 졌다'는 부채감은 인간을 바로 세우고 인간됨의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인류가 역사를 통해 거듭한 의식의 진화 속에 내가 있고, 내가 누리던 민주주의는 마련되어있던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이라는 거대한 연결감이 우리를 이끕니다. 내가 나의 힘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인간을 인간되게 했습니다.
6월부터 12월까지 '[ __ ]하는 새 여자' 북클럽에서는 총 11권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6월 11일(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이반 일리치
▶6월 25일(화) '우리의 더 나은 반쪽' / 샤론 모알렘
▶7월 9일(화)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존 버거
▶8월 29일(목) '침묵에서 말하기로' / 캐럴 길리건
▶9월 12일(목) '세월' / 아니 에르노
▶9월 26일(목) '여자아이 기억' / 아니 에르노
▶10월 10일(목)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10월 31일(목) '바깥일기' / 아니 에르노
▶11월 21일(목) '아니 에르노의 말' / 아니 에르노 & 로즈마리 라그라브
▶12월 5일(목) '상황과 이야기' / 비비언 고닉
▶12월 19일(목) '소년이 온다' / 한강
시대와 사회가 나에게 주입한 가치를 넘어서고자 했던 저자들의 글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11권의 책읽기를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나는 나 하나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거였네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선물한 저자들과 따로 또 같이 함께 책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과거와 현재, 우리를 이끌 미래가 모여 나를 이룬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소년의 온다'의 마지막 장에 나온 문장을 나눕니다. 빚으로 존재하니 빛으로 나아가길 꿈꾸며...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여성서사 모임 기획단 '[ __ ]하는 새 여자' 북클럽에서는 여성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관점의 변화를 선물하는 책들을 읽습니다. 2025년에도 멋진 책들과 함께 만나요!
🕊 '[ __ ]하는 새 여자'는
빈칸, [ __ ]이라는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새(bird)처럼 자유롭게
시간과 언어의 틈새(between)를 잇고
새롭게(new) 거듭나는 여자들의 이야기 시간을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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