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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새여자 북클럽] '아니 에르노의 말' 후기와 열번째 책 공지 본문
11월 21일 새여자 북클럽 아홉번째 모임에서는 '아니 에르노의 말'을 읽고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사회학자인 로즈마리 라그라브와 함께 참여한 한 좌담회의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편집한 것으로, 그 좌담회의 제목은 '페미니스트 계급 탈주자들의 경험과 글쓰기'였습니다. 계급 이동 경험을 문학적 글쓰기와 사회학적 연구 안에서 풀어낸 두 여성이 '나 자신의 민속학자'로서 자신을 삶을 해부한 경험을 털어놓는데요,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나면서 자전적 글쓰기에 대해 여러 면에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비슷한듯 다른 사회학자와 작가의 자기서사 해부
라그라브와 에르노는 모두 어린 시절을 노르망디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역문화가 두 사람에게 준 영향은 달랐습니다. 에르노는 그 지역 출신으로 자신의 문화정체성이던 노르망디 사투리와 사고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것임을 학창시절에 거듭 확인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문화와 멀어지게 됩니다. 라그라브는 가족의 경제적 몰락으로 노르망디로 오게되는데, 가족 안에서는 파리의 고급문화와 예절을 유지하며 지역문화와 구분된 가족의 문화 안에서 살아가죠. 그래서 둘 다 어른이 되며 계급이동을 겪었으면서도 에르노는 분열을 느끼고("나는 둘로 잘렸다.") 라그라브는 안정감을 느낍니다.("나는 둘로 잘렸다는 느낌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어요.") 또한 같은 가톨릭 신앙의 영향을 받았지만, 라그라브는 이를 연민과 환대의 실천으로 발전시켰고 에르노는 억압에 대한 해방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렇게 비슷한 듯 다른 조건을 거치며, 그들은 삶의 과제를 풀어낼 방법으로 각자 문학과 사회학을 선택합니다. 각각의 방식은 나를 서술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에 대해 극명히 다른 태도로 이어졌지요. 라그라브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교수로 자신과 가족의 계층이동 과정에 대해 각종 통계와 자료 조사를 통해 분석하는 글을 씁니다. 사회학자로서 연구 대상과의 거리감이 없는 이런 작업은 예외적인 것이었죠. 그래서 이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해 쓴다는 데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합니다.
:: 나를 쓴다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추동
"'나'를 쓰기 시작했는데 저급한 나르시시즘에 빠질 수 있다는, 혹은 보통의 자기 이야기로 표류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치기 힘들었죠...난 언제든 튀어나오는 나를 보존서류 다발 속에 꽁꽁 묶어두었어요. "
라그라브에게 그 글은 자서전이 아니라 자전적 조사였고, 그래서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증명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에르노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글이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흔들림없이 써내려가죠.
"나는 단 한 번도 가까운 사람들이나 누군가의 반응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단숨에든 서서히든 나를 사로잡은것, 어서 써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텍스트의 힘, 글쓰기 자체의 장악력 때문이에요. 텍스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텍스트가 내 안에서 만들어내는 발견들, 드러내는 진실들이 힘을 발휘하는 거죠."
와,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요. 글이 드러내는 진실의 힘이 무엇이기에 내 글이 현실의 누군가를 왜곡하고 상처줄 수도 있다는 두려움조차 덮어버리는 걸까요. '이 글을 쓰고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토해내는 것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추동일까요. 라그라브는 계급이동을 도와준 '동맹자들'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마음에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에르노는 '종족의 복수를 위해 글을 쓰겠다'던 스물살 때의 어설픈 다짐이 결국은 '사유되지 않은 것을 향해 달려들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에르노는 글쓰기에 대한 어마어마한 에너지에 반해 글 자체에 대해선 나약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사실 지금도 난 내가 쓰는 글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 확신이 없거든요."
"가난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있는거죠."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을 나와 분리된 존재, 다른 사람으로 느끼거든요."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읽혀질지 아닐지 불안을 지닌 채 그래도 써야하는 마음이라니. 이쯤되자 '사로잡혀서, 쓰지 않을 수 없게' 밀어붙여진 에르노의 욕망은 어쩌면 개인적인 것이라기 보다 인류 정신의 통로로 주어진 사명으로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 자전적 글을 읽으며 독자는 어떻게 그 서사에 참여하는가
이 즈음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여러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작년 초에 새여자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루시 바턴> 시리즈와 올 여름에 새여자들이 함께 읽고 강화도로 저자를 만나러 갔었던 <나와 나의 엄마> 또한 '계급이동'과 '자전적 회고'라는 면에서 뜨렷한 교집합 책이었구나 싶더라구요. 읽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루시 바턴이 겪은 분열과 주변인물들의 반응이 그의 계급탈주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부모님을 회고하는 글이지만 작가가 쥐고 있는 관점에 따라 우리가 받은 영향이 다르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네요.
"사실상 지배당하고 있는 삶의 양태를 칭송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전에 나 역시 함께 했던 행동과 태도에 대해서 관대한 시선이나 빈정거림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무척 힘들었죠. 그 좁은 길, 내가 양쪽 어디로든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올라서 있던 그 선을...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라고..."
글쓰기의 추동은 에르노 본인이 조절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온 에너지를 들여 '줄타기'를 합니다. 감정을 바라보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와 거리를 두는 그의 글쓰기를 에르노는 스스로 '자서전-사화학-전기'라고 명명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관점덕분에 독자들은 에르노의 책을 '자신의 길을 비춰보라고 내민 거울'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에르노의 글들을 읽으며 삶의 여러 장면들이 새롭게 해석되었고, 스스로를 한 개인을 넘어 사회적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여러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아비투스)들은 서로 어떻게 교차되어 나를 형성하고 그래서 난 어떤 교집합과 어떤 분열 가운데 서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지요.
:: 한 사람의 용기가 주변으로 전파되는 마법
"우리는 많은 것을, 때로는 아주 오래된 것들을 뒤죽박죽 느끼면서 살아가고,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을 만나게 되죠."
이 책에서는 '계급탈주자', '계급종단자'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인간은 성장하며 한번쯤은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아비투스)의 이동을 겪습니다. 그 이동이 일면 성공적 상승으로 보이더라도 변화에는 언제나 복잡한 감정들이 발생하게 되지요. 아시아인, 여성, 대안학교 학부모, 임신중지 경험자, 가톨릭 신앙인, 수도권 생활자 등 내 존재를 교차하는 계급성들은 때로 서로 충돌하고 배반합니다. 그 분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가치들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분투해왔다는 것을 에르노의 책들을 읽으며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내가 설명되고, 나를 말해주는' 위로와 연결감의 힘이었습니다.
"이미 당신의 책들을 읽을 때 마음의 동요를 겪었는데, 지금은 확신을 얻었답니다. 내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고, 내 기억을 파헤쳐서 어떤 경우에든 용기를 내서 써야 한다고 말이예요."
이 책은 두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대담 내용이지만, 자신에 대해 쓰기를 여전히 두려워하는 라그라브가 에르노의 자기투쟁 에너지에 이끌려 용기를 갖게 되는 과정의 서술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 속에서 어떤 마법이 생겨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 덕분에 우리도 이 책을 읽으며 자전적 글쓰기에 대해 주저하는 라그라브에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면서 아니 에르노와 대화하는 듯 했습니다.
라그라브와 에르노는 모두 80세가 넘었습니다. 대담의 마지막에 둘은 '늙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주제에 대해 둘의 관점이 다른 게 재미있는데 그러면서도 한가지에는 마음이 겹쳐집니다. 젊었을 때 자발적 임신중단을 위해 싸웠듯이, 이제 자발적 노화중단을 위해 싸워야하겠다고 말이지요. 삶에서 주어지는 과제를 글로 써내는 에르노가 이번에는 노화와 죽음에 대해 쓰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올라왔습니다. 게다가 아니 에르노는 '마흔 다섯에서 예순 살 사이에 가장 충만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구요. 중년 여성으로서의 시간에 미리 축복을 받은 것만 같았어요. 앞서 길을 내며 거울이 되어주는 '언니들'이 있어서 너무나 든든하네요.
"내게는 나를 위해 싸워줄 서술자가 있었다."
에르노에게서 받은 작은 용기에 힘입어 우리는 지금 내가 자리한 곳의 어느 지점에서 분투하고 어느 지점을 봉합해야하는지 '나를 쓰면서'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전적 글쓰기의 실천적 방법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에르노가 강조한 '거리두기'를 통한 자전적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또 한 명의 자기서사 달인인 비비언 고닉의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아요!
- 일시 : 12월 5일(목) 오전 9시~11시
- 장소 : 참방 (경기도 의왕시 옥박골동길 14)
- 책 : '상황과 이야기' / 비비언 고닉
여성서사 모임 기획단 '[ __ ]하는 새 여자' 북클럽에서는 여성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관점의 변화를 선물하는 책들을 읽습니다. 별도의 신청 없이 편하게 들러주세요. 격주마다 열리며 참가비는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셨어도 환영합니다.
🕊 '[ __ ]하는 새 여자'는
빈칸, [ __ ]이라는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새(bird)처럼 자유롭게
시간과 언어의 틈새(between)를 잇고
새롭게(new) 거듭나는 여자들의 이야기 시간을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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