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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6기 마무리 에세이 : 진심의 걸음들로 '되었어야 할 나'를 향해...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6기 2021 가을

6기 마무리 에세이 : 진심의 걸음들로 '되었어야 할 나'를 향해...

고래의노래 2021. 12. 31. 11:14

 여섯번째 [내 안의 여신찾기] 모임을 마쳤다. 몸과 마음의 역사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이제까지 어떤 관계 안에 머물러왔는지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렸다. 여신모임을 6기까지 진행하며 6번 같은 책을 읽고 모임벗들과 이야기나누었다. 마치 나 자신과 긴 여행을 한 것만 같다. 처음 여신모임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갈 줄 예상하지 못했고, 횟수가 거듭되면서는 딱 10기까지만 해보자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의 반을 건너온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 방향이 선명해지다


 6기 모임에서 나는 특별한 변화를 경험했다. 이제까지 여신모임을 진행하면서 해왔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책내용과 모임내용을 갈무리하는 후기를 거의 쓰지 않았고 기록집도 만들지 않았다. 후기를 쓰더라도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문체로 적었다. 후기를 쓰며 모임 속에서 일어난 깨달음들을 정리해나가는 것이 나에게 큰 기쁨이었는데 이번에는 컴퓨터 앞에서 끙끙거리며 몇글자 타닥거리다 지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모임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글로 쓰며 선명하게 인지하는 시기가 한차례 지나고 있음을 느꼈다. 대신 모임 사이의 시간동안 내 안에 깊게 머물렀다. 이것은 의식적인 시도가 아니었고 다만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움직임이었다. 

 이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임신출산 주제에 대한 모임 이후였다. 생명을 품고 세상에 초대하는, 여성의 생식력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여신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이자, 내 삶의 커다란 동력인 막둥이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나는 모임 안에서 풀어놓았다. 매년 이 주제를 통과할 즈음이 막둥이 기일이라, 나는 제례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모임에서 막둥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전 모임들과 다를 것 없는 6번째 이야기나눔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객관적으로 후기를 적을 수 없었다. 마음의 중심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내적 모순에 계속 머물렀다.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막둥이를 만나고 보냈던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글을 써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당시 갈갈이 찢어졌던 자아의 조각들은 여전히 부유하고 있으며 이제 그 조각들을 쓸어모아 잇는 여정의 다른 챕터로 들어섰다는 걸 말이다.

 지금까지는 모임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객관적으로 차곡차곡 정리해나가며, 마치 형사처럼 자아분열의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상황 속 인과관계를 설정해보는데 집중했던 것 같다. 이제 쓰러져 있는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야할 시간이었다. 찢긴 내면의 틈으로 피흘리고 있는 당사자에게 나는 진술권도 주지 않았었다. '감히..네가...'라는 엄포로 막혀버린 그 이야기는 여전히 내가 준비되길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도저히 언어화할 수 없는 그 만남과 헤어짐을 글로 드러낼 수 있을 때 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깨달을 때, 나는 이 여정을 끝내고 나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 길은 모호해지다


 이렇게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명확히 드러났지만 오히려 그 길은 안개에 쌓인 듯 뿌옇기만 하다. 여신모임을 하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우리 속의 여신들' 저자들이 말하는대로 내 것이 아닌 채 내면화했던 사고체계와 주변의 기준, 시선을 자각하고 내면의 인도자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여신모임 초기에는 나를 겹겹히 옥죄고 있던 그 틀을 부숴버리는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그 껍질만 벗어내면 내면에 숨어있던 말간 '진짜 내'가 드러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점점 '원래부터의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원형들이 생애주기와 주변관계 심지어 호르몬에 따라 그 영향력을 달리하며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나는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온전히 나로 있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의 나에 집중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임 후반 즈음에 개인적으로 원가족과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사건을 겪었다. 다시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고 내 안의 진심을 발견하려고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힘겹게 머물렀다. 내가 나를 존중하려면 지금의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계속 고민했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이 이뤄지길 바라는지 찾아내야 했다. 품어주고 돌봐야할 것과 한걸음 내딛어야 할 부분을 잘 구분하기 위해 내 '감정과 더불어' 기다렸다. 격하게 날 흔드는 감정을 쉽게 다른 이들의 위로로 달래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는 건 힘겨운 일이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툭하면 눈물이 났다. 그래도 결국 그 시간을 견디며 마음의 진심 한 조각을 찾아 조심스럽게 밖으로 드러내었다.

 반복해서 찾아온 과제를 의식적으로 통과한 이 경험을 통해 마음의 부대낌을 참고 견디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을 용기있게 말하는 것, 그것이 내 감정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신뢰하는 거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나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정답없는 모호함을 견디면서도 굽이치는 감정의 매 순간에 깨어있어야 하다니! 그것은 힘이 솟고 유쾌한 게 아니라 옳다고 믿기에 겨우 감당하는 고통이었다.

 

:: 그렇기에 눈 앞의 발걸음만 따라서


 마지막 모임에서는 첫 모임 때 나 자신을 설명했던 은유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매번 내 은유동물은 고래였는데 이번에야 처음으로 고래는 언제 쉬는걸까...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크게 품고 크게 살고 평온하게 관계맺는, 내가 닮고싶은 온갖 것들을 고래에 투사했었는데 이번에는 고래로부터 지금의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쓸모의 역학에 중독되어 스스로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진짜 내 문제와 이제서야 마주한 느낌이었다.

 

진심의 걸음들이 모이고 쌓이면 '되었어야 할 내'가 별처럼 드러나리라.


 모임의 진행 형식에 가장 메이지 않았던 6기에서 나는 스스로를 조금 더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풀어내고 싶은 매듭이 선명해졌지만 그 길에 정답은 없으며 나만의 답을 찾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만 명확하다. 그 뿌연 안개 속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내 발걸음만을 따라 삶의 순간들을 진심으로 살아낼 수 밖에. 그래서 내가 원하는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면서도 그것에 집착하지 말자 생각했다.

 여신들의 섬인 제주도에서 여성들의 이야기 공간, 달빛오두막을 운영하는 꿈을 꾼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머물며 충전할 수 있는 곳, 여성들이 자기만의 서사를 가진 개인으로 스스로를 발견하고 응원받을 수 있는 공간을 꾸리고 싶다. 이렇게 어떠한 곳에 어떤 이름의 공간인지 구체적으로 그리면서도 동시에 어떠한 미래가 아니라 '어떠한 나'인지가 더 핵심이라는 생각에 머문다. 관계맺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런 공간같은 존재이길, 개별 서사 안에서 반짝이는 사람들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눈맑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또 바란다. 그러한 나의 바람과 의지를 넘어,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 속에 또한 머물 수 있길. 그렇게 진심의 걸음들이 모이고 쌓인 미래에 드러난 내가 '되었어야 할 나'이길... 

 이번에 내가 뽑은 핵심가치는 '축복'이었다. 1기부터 5기까지 에너지분출 - 영향을 미침 - 통합 - 깨어남 - 활력에 이어 축복에 닿았다. 삶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세워가는 힘든 여정 속의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기쁨과 평온에 닿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나에 닿기 위한 그 애씀은 마땅히 축복받아야 하리라.

 


* [내 안의 여신찾기] 모임은 3개월동안 두 권의 책을 읽고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면서 내면의 힘을 발견해가는 여성들의 내면 여행 모임입니다. 매년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며 7기는 2022년 9월에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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