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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일상학자 모임후기] 나를 키운 건 언니들이다! 본문
'내 연구가 이 분들의 눈과 귀와 시간을 붙잡아둘 만큼 가치가 있나?'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드디어 고혜경 교수님, 이부영 교수님, 웬다 트레바탄 교수님에게 내 연구보고서를 보냈다. 내 연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저자 3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서 연구를 시작하며 삼았던 목표를 다 실행했다.
'연구 내용을 블로그에 공개하고 냇물에서 발표한다. 각 주제의 주요 저자들에게도 이메일로 전달한다. 연구에 대해 가능한 여러 곳에서 피드백을 받고 이를 내년 연구계획에 반영한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 연구계획서에 이렇게 썼었다. 연구의 결과물을 내는 것 뿐 아니라 이를 널리 알리는 것. 이것이 이 연구의 최종 마무리였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업로드하고, 오늘 최종적으로 저자분들께 메일을 보냈다. 결국 마지막까지 이어졌던 셈이다. "내가 뭐라고..."와의 싸움.
:: 시작은 달랐었다.
재작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박혜수 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듯이 멍했다. 박혜수 작가는 작품 주제 안에서 자료조사를 하고 정신분석학자와의 협업으로 설문지를 만들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사회학자, 문화인류학자, 경제학자 등과 함께 관객참여형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고서과 연구과정, 연구결과를 미술관에 '전시'한 것이다
질문하고 고민하고 나만의 답을 얻는다. 그리고 그 답에서 또다시 질문이 올라오고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내가 진행했던 모임들을 죽 나열해서 살펴보니 내가 '질문-고민-답-다시 질문'의 나선에서 계속 모임을 기획하고 이어왔다는 걸 알게되었다. 답은 정거장이다. 그건 '지금의 내'가 도출해낸 '이 순간'의 결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기회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서 [일상학자]를 기획하게 되었다.
근데 모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질문이 생겼다. 왜 나는 이야기하고 싶을까? 과시욕? 거만함이나 인정욕구일까 고민했다. 근데 보고서가 예술작품이 된 박혜수 작가의 전시를 보니 그건 어쩌면 '예술가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충동, 세상에 작은 파동을 전하고픈 마음, '너를 바꾸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나는 이래 넌?'이라는 심정. 그렇게 연구가 강연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된다'는 마음이라면 학자도 예술가가 되는거 아닐까. 일상학자 첫 모임에서 나는 박혜수 작가의 전시 사진을 공유하면서 이 생각을 나누었다. '나는 이래요. 당신은요?'이 마음으로 일상학자 연구를 하자고.
그래서 일상학자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모임이 권위와의 싸움이 될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구'라는 단어를, '학자'라는 정체성을 어느 학교에도 속하지 않은 우리에게 적용한다는 것이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나에게 일상학자는 힘을 빼는 작업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이건 내 이야기일 뿐 연구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는 모임벗들의 고민을 들을 때에도 이게 나에게로 이어지는 고민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었다. 나는 마치 제 3자처럼 모임벗들에게 조언하고 설득하려 했다. 내가 계획하고 상상했던 일상학자 모임의 모습과 점점 달라질 때 마음이 불편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 말할 수 있는 힘을 내기 위하여
"언어란 스스로 망상이 아닌 주체가 되는 과정, 그리고 애초 '사회구조'가 그를 직조해낸 방식의 매듭을
풀어헤치는 과정과 관련된 언어일 수 밖에 없어요."
(알고싶지 않은 것들 _ 데버라 러비)
여성들이 밖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시도할 때, 그건 결국 나를 통과하는 과정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이제 알겠다. '다른 이에게 말하는 권위'를 내 안으로 들이려면 덕지덕지 발라진 바깥의 기준들을 털어내고 씻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들이 이어진다.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는 연구를 하며 결국 나 자신과 만나게 되었다. 모든 연구가 '나'에게로 이어졌다. 일상학자의 연구는 바깥의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나에게 밀착된 연구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바깥의 기준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없거나 오히려 앞서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것을 모임벗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일년동안 일상학자를 하면서 '여성성'이라는 틀 안에서 연구주제 뿐 아니라 나 자신 또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갔다. 공유서 안에서 내 일상과 일의 많은 부분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여성성의 원형이라는 주제와 내 삶이 긴밀히 연결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연구대상으로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관찰대상'이 된다는 것은 애정어린 집중이었다. 1년동안 나와 우리를 이끈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학자를 시작하고 이어갈 수 있었던 에너지...그게 페미니즘의 원형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든 성장시키고 싶어했다!
:: 언니들은 옳았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하고 나는 말할 겁니다."
(자기만의 방_버지니아 울프)
언니들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나를 바깥으로 드러내려면 내가 바로 서 있어야했다. 일상학자는 단순한 연구 모임이 아니라, 바깥으로 내 목소리를 내기위해 나를 살피는 과정이었다. 연구를 하고 모임벗들에게서 영향을 받으며 나는 다시금 나를 세워갔다. 내 안의 힘을 다시 나에게 되돌리면서.
덧붙임) 후기를 하루 묵혀서 다시 들여다보는 동안 웬다 트레바탄 교수님에게서 답메일이 왔다! 나의 연구에 본인 책이 도움을 주었다니 너무 기쁘다며, 페미니즘과 진화의학이 서로 상충된다는 의견이 미국에서도 있지만 본인은 진화역사를 아는 것이 오히려 페니미즘과 모든 연령의 여성들에게 힘이 될(empowering)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래처럼 나를 empowering해주셨다.
"I admire what you are doing,
both in your group work and your own intellectual development.
Continue thinking, exploring."
큰 언니가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주는 느낌이다. 언제나 그랬든 역사 속의 언니들이, 책 속의 저자 언니들이, 그리고 모임 안에서 나와 함께하는 모임벗 언니들이(멋지면 언니인거다!) 나를 이끌어준다. 그 언니들에게 기대어 용기있게 또 나아가보자.
*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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