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일상학자] 12월 모임후기 : 지금 그대로의 나를 만나기 위한 연구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공부 프로젝트, 일상학자

[일상학자] 12월 모임후기 : 지금 그대로의 나를 만나기 위한 연구

고래의노래 2021. 1. 3. 19:41

12월 월례모임에서는 발표를 준비하는 모임벗들이 최종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임벗들 한 명 한 명 순서대로 함께 집중하며 이야기해보았는데요, 각자의 이야기 속에 중심 키워드들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그 키워드들이 결국 다 이어지면서, 각 모임벗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작업으로서의 연구


연구보고서에는 나의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일상학자 연구 기간 내내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이었지요. 결국 나로 수렴되는 연구의 주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거요.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고민 뒤에 더 큰 배경이 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영님께서는 나를 드러내는 활동을 한 게 처음이라고 하셨어요. 이전까지는 내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한편으로는 내가 이야기하더라도 그게 진짜 내가 맞는지 두려우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나를 드러낸다는 건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믿음은 "이게 나였구나!" 라는 깨달음이거나, "이제까지 거부했던 나를 받아들였"거나, "모르겠다는 모호함까지도 과정으로 끌어안은 용기"까지를 모두 포함한 상태이겠지요.
지영님의 연구에서는 내가 몰랐던 나와 만나는 과정이 아이들과의 관계와 맞물려 전개됩니다. '상처있는 엄마가 아이랑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글로 연결되어도 너무나 훌륭하겠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내면아이 육아' 책이나 모임, 기대해봐도 되겠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기


지은님의 보고서에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책읽기를 통한 자기 분석>이라는 보고서 제목이 연구 내용을 다 담고 있지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자기분석보다도 자기수용의 과정으로 보이고, 그 과정 안에 책과 영화, 일상학자에서의 상호작용 등 많이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밝고 명랑'해야만 하는' 내가 아니라 어둡고 우울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도움도구로 책읽기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어요. 연구과정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셨는데, 각 시간단위에서 중요한 키워드들을 뽑아주면 그 과정이 더 잘 연결되겠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저는 특히 보고서의 내용 중 "나는 책읽기를 통한 자기분석을 ....라 부른다."라는 문장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주체로 당당히 서서 내 언어로 선언하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완벽함이 아닌 지금의 모습을 사랑하기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연구주제로서 맞는건가?'라는 고민이 있었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이렇게 정보를 모아놓는게 무슨 의미지?'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기성장의 고백이나 치밀한 정보분석도 아닌, 색깔없는 연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경희님은 속상해하셨어요. 모임벗들께서는 부족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고 여성 예술가 주제로 올 한 해 진행했던 책모임과 프로젝트에서 느낀 바를 적어보거나, 이 주제를 잡은 이유로 조금 들어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옛날 여성 예술가들, 현재 여성 예술가들, 지금의 경희님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이고 그게 아마 주제로부터 경희님이 얻고자 했던 위로이지 않을까하는 이야기였죠. 실제로 연구 문단의 소제목들에서 그렇게 닿고 싶었던 힘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경희님이 해주신 놀라운 이야기는 나중에 여성 예술가들과 가상의 인터뷰를 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제목도 정해져있었죠, <예술하는 언니들>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흥분하면서 짧게라도 언니 한 명 불러내서 인터뷰하자고 했어요.(지영님 추천제목 : 유딧언니 ,세상이 왜 이래) ㅎㅎ 일상학자 연구보고서가 <예술하는 언니들>이라는 본편을 위한 연구계획서의 역할을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잘하고 싶은데, 일상은 우리를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게 분산시킵니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은 일상에 연구의 자리를 내줄 여유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죠.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없었다는 게 사무치게 아쉽습니다. 현재 활동하는 여성 예술가들이 하는 고민도 마찬가지였어요. 최근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 만난 한 여성예술가분은 예전에는 몰입하며 한번에 쫙 밀고 진행하는 작업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아이가 낮잠자는 짜투리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했는데, 그렇게해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알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최대한 충실했을 때 나오는 결과를 사랑하는 것, 이게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우리

도망가고 싶지만 머무는 용기


혜연님은 최종보고서를 시작하지 못하셨고, 글로 어떻게 써야할지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글쓰는 것이 작년 한 해 부쩍 힘들어졌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된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엄마 역할의 비중이 커지면서 연구에 시간을 쓰는데 부담을 느끼신데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글로 명확히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는 듯 했어요. 이렇게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는 모임에서도 마음 안에서 올라오는 자기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압박과 부담을 느낀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통과하면 얻는 게 있다는 걸 아니까 머물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다고 말씀하셨어요. 화상 모임에도 '도망가고 싶은데 왔다'고 하셨죠. 모임지기로서 저는 혜연님의 이런 마음이 일상학자 모임을 받쳐주는 또 다른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속할 수 있으니까 있을께요'가 아니라 그 '약속을 넘어선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기에, 일상학자 안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를 개인이 아니라 모임이라는 단위 안으로도 가져가서 풀어주고 계시다고 느꼈어요. 고정된 틀을 넘어서서 완벽하지 않아도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과제 말이죠.
모임벗들께서는 글의 논리적 전개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일단 백지를 놓고 지금의 내 심정부터 쓰는 걸 제안해주셨습니다. 글이 안써진다는 내용부터 시작해보라는 거였죠. 혜연님은 이 상태가 바뀔 마음의 전환시점을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점이 당겨지는데 백지 위의 끄적임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진심이 전하는 힘


"이렇게 할 바에야 그냥 그만둔다고 할까?" 많은 모임벗들께서 연구 과정 중에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지?'라는 자기검열의 질문도 계속 떠올랐구요. 지혜님께서는 '없던 걸 새로 만들어냈으므로 의미가 없어보이는 건 당연하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바깥의 기준을 벗어나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연구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면서 우리는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비교할 기준이 없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죠.  

나에 집중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은 겉으로는 무척 다르게 보입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는 무용한 개인주의로 여겨지기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고민을 공유서에 적은 적이 있었어요. '진심이라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글이었죠. 그 글에서 저는 여러 과제를 통과하고 나를 세워낸 후에야 다른 이들과의 사랑이 가능해지는 신화 속 영웅의 여정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었습니다. 바깥으로부터 재단된 나를 걷어내고 진짜 나를 만나 찾아낸 '내 진짜 욕구'가 '진심'이고, 그렇게 발견한 진심이라면 자연스럽게 나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의미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날 모임에서 벗들의 최종보고서와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 과정을 현실로 보는 듯 했습니다. 1년간 나와 함께하며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끌어안는 과정, 완벽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용기를 갖는 과정, 그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중심으로 날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진심을 향한 여정이었죠. 내 진심에 집중하자 다른 이에게도 가 닿았습니다. 다른 이를 보고서를 읽으며 내 안의 내면아이가 궁금해지고, 책으로 나를 한번 바라보고 싶어졌어요. 여성 예술가의 삶에서 지금의 나를 보듬는 위로를 얻기도 했습니다.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미지?' '정보의 모음이 어떤 의미지?'이 둘 질문이 맞닿는 곳에 결국 우리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너무나 연구하고픈 주제가 있어서 이 연구를 밀고나갈 힘을 얻고자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제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제 연구를 1년간 이어왔다는 것보다도 일상학자라는 모임의 틀을 유지한 것입니다. 최종보고서를 통해 갈무리되는 모임벗들의 1년간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너무 마지막 후기같은 글이 되버렸네요. 이제 최종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발표 이후의 우리가 무척 기대됩니다. 마지막까지 내 안의 빛나는 진심을 붙잡고 함께 가보아요!!

덧붙이는 글..

아, 제 보고서 이야기를 안 했네요. 처음의 주제(제목)가 끝까지 유지된 유일한 사람이었죠. ;;; 뚝심있는 걸 수도 있고, 유연하지 못할 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를 이어가며 주제와 나의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연구보고서 속에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넣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었지요. 여성 정체성을 긍정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연예인 투사과정에서 발견했다는 점을 이 묵직한 주제의 연구보고서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이었습니다. 연구 주제과 함께 엮기에는 무게감의 차이가 너무 극명해보였거든요. 그래도 연구주제와 밀접하게 맞닿는 이야기이기에 부록으로라도 넣는 것이 의미있겠다는 의견들을 주셨네요. '서태지민' 번외편을 더 기대하시는 모임벗들을 위해 한번 글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지금처럼 무거운 글 끝에 가볍게 터치하는 느낌으로! ㅎㅎ

*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