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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애도서사] : <아주 편안한 죽음> 후기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과 책 그리고...

[엄마와 딸의 애도서사] : <아주 편안한 죽음> 후기

고래의노래 2025. 6. 4. 18:16

엄마와 딸의 애도서사 책읽기 모임 두번째 책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었습니다. 앞의 문장에서 '두번째 책은'과 '시몬 드 보부아르' 사이에 이 책에 대해 설명하는 짧은 구절들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시몬 드 보부아르'만 남겨둡니다. 그만큼 이 책은 보부아르이기에 가능한 인식의 기록입니다. 

낙상 골절로 입원했던 엄마는 알고보니 암이었습니다. 이후 치유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생명 연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치료들이 이어집니다. 딸들은 의료진에게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고 호소하지만 의사들은 '해야하는 일을 할' 뿐이었죠. 고통뿐인 삶이 왜 이어져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이전 회차에서 함께 읽었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의 주제랑 이어지지만,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답게 삶과 죽음의 긴장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건져올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어가는 엄마'라는 '신화적 충격'이 주는 자극이었습니다.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내 존재의 통로였고, 그래서 세상의 기본값으로 존재했던 엄마가 사라진다는 건 세계관의 굴절을 일으키는 사건입니다. 게다가 엄마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죽음에 대한 받아들임 사이에서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데, 내 인식의 변화와 엄마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보부아르는 엄마라는 인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죠.

"우리는 아주 사소한 즐길 거리에도 관심을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감동했다 일흔 여덟 살의 나이에 삶이 안겨 주는 경이로움에 새롭게 눈을 뜬 듯한 모습이었다."

"병으로 인해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편견과 오만의 껍질이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나는 그녀가 마침내 자신과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부아르는 스스로를 잊고 살아야만 했던 엄마의 삶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에 대한 반영으로 딸들에게 집착하고 가부장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모습에 분노합니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 속에서 엄마와 딸은 도통 대화거리를 찾아낼 수 없는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리죠. 
그런데 죽어가는 엄마와 함께 지내며 '엄마에 대한 오랜 애정'이 되살아납니다. 삶에 대한 의지로 자기자신을 우선시하게 된 엄마가 관례적으로 했던 말이나 행동으로 진짜 마음을 감추는 대신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겁니다. 

"엄마는 그동안 자기 안에 있는 진실되고 매력적인 모습을 가려왔던 진부한 생각을 던져 버렸다. 그 결과 나는 엄마가 품고 있던 나를 향한 사랑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질투심으로 인해 자주 왜곡되어 왔고 서투름으로 인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이 지닌 따스함을."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던 엄마와 그런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딸이 죽음 앞에서 진실하게 마주합니다. 보부아르와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우리와 닮아있어서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어요. 표현과 감정이 달라서 매번 수수께끼 푸는 것 같이 어려웠던 엄마와의 대화도 떠오르고, 빈 수레처럼 덜거덕거리던 만남 후에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랑은 참 교집합이 없다고 한숨쉬었던 순간들도 생각났습니다. 
엄마라는 관계성 안에서 우리가 보았던 모습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접히고 눌려 스스로 나일 수 없었던 엄마의 단면이라면, 서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어떻게 가능한걸까요. 그건 정말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 앞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 어려운 진실인 걸까요? 

"엄마가...돌아가시는 과정에서 당시 우리 관계를 지배하고 있던 일상적 양상이 무너졌고, 그러면서 예전의 관계가 다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엄마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했을 때, 슬프기는 했지만 그렇게 된 걸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느꼈던 슬픔이 내 마음 속에서 되살아났다."

결국 우리는 '근원적인 사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힘들어하나 봅니다. 그건 나의 근원과 화해하고픈 욕구이기도 하겠지요.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존재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래서 이 세상에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고 말이죠. 그러면서도 보부아르는 엄마가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건 나와 엄마가 솔직히 마주하며 근원적 사랑의 관계로 다시 연결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현상으로부터 관념을 건져올리고, 이를 삶으로 옮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기집중적이면서도 솔직하게 '엄마의 삶 전체를' 자신의 언어로 '구현'해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책을 통해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징한 글에 빠져들었답니다. '무섭도록 똑똑한(이 책에서도 엄마가 보부아르에게 "나는 네가 무섭단다."라고 말해요. ^^) 실천하는 지성'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의 책이 마구 궁금해졌어요. 엄마라는 역할 속에 내가 심은 기대로부터 엄마를 해방시키는 이야기을 읽으며 고정된 이미지의 껍질에 균열이 가는 느낌이 어떤건지 생생히 경험한 셈이지요~ 곧 시몬 드 보부아르 책모임을 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글이 준 여운을 간직한 채, 이제 세번째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세번째 책은 엄마의 죽음이후 엄마라는 한 여자를 마주한 딸의 이야기, <한 여자>입니다. 
엄마의 죽음이 가져온 물리적 단절은 오히려 엄마로 상징되는 과거로 나를 다시 데리고 갑니다. 우리 안에서 엄마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온 부분은 무엇이고, 여전히 남아 살아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 

계급구조 속에서 등 돌리지만 서로를 버릴 수 없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감정을 바라보되 스스로와 거리를 두는 아니 에르노의 치열한 글을 통해 만나보아요. ​ 

- 일시 : 6월 10일 화요일 오전 10시 ~ 11시 반 
- 장소 : 책방 새와 우물 (경기도 의왕시 양지편1로 4-6 1층) 
- 모임비 : 1만 5천원 
- 신청 : https://forms.gle/EW5oxeBrjT3JLiX36​ 

* 6월 13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아니 에르노의 애도서사를 연구하신 강초롱 교수님을 모시고 '엄마 상징으로부터의 독립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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