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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달빛오두막 - 9월 후기]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본문
달빛오두막 세번째 모임이 9월 5일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였습니다.서양의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를 지나 이제 신화에 도착했네요.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 심장으로 돌진하는 책이고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가 머리를 향한 책이라면, 이 책은 내면의 깊은 부분을 건드립니다. 야성의 늑대여인에 대해 어렴풋이 눈치챘다가 여성의 힘과 여성성을 구분하라는 이야기에서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던 우리는 이 책에서 내면의 여성성이라는 개념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존재하며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리고 삶의 최종목표는 온전한 내가 되는 자기실현이며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가능하고 했지요. 그리고 아니마, 아니무스의 최대 역할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재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프시테 신화를 통해 여성들이 내면의 성장을 위해 어떠한 과제를 거치며 무엇을 주의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프시케는 어떤 왕국의 아름다운 공주였습니다. 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칭송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사서 죽음과 결혼해야 한다는 신탁을 받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가 실수로 자신의 사랑의 화살에 찔려 프시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자신의 낙원으로 데려가 밤에만 나타나는 신랑 노릇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절대 보려 해서는 안된다고 프시케에게 주의를 주어요. 하지만 언니들이 심어준 의혹으로 프시케는 밤에 등불을 들고 에로스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이후 에로스는 프시케를 떠나게 되고 프시케는 에로스를 다시 찾아나서며 아프로디테의 4가지 과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여성성'이라는 단어에 걸려 넘어지다
저자는 프시케와 아프로디테, 에로스는 물론, 프시케의 여정단계가 갖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 분석심리학 이론에 근거하여 해석해갑니다. 아프로디테가 고대의 여성성을 상징하며 프시케는 새로운 여성성의 탄생을 나타내고 에로스가 여성의 삶에 있어서의 남성 또는 여성 내면의 아니무스를 상징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여성성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여성성과 비슷한 '여성적', '여성으로서'라는 맥락 안에서 틀지워진 경험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를 앞선 감정 없이 바로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저자가 여성성의 특질로 이야기한 것은 우리가 그 안에 갇히기 싫어 분투하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희생', '고요함', '남성의 가치를 비춰줌', '기쁨을 퍼트림' 등 페미니즘이 오랜 역사동안 여성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자 했던 가치들이 여성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설명되었습니다. 결혼의례가 오래 전부터 장례, 납치와 의미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나 여성과 남성에게 결혼이 다른 의미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감정이 일으키는 판단을 넘어서는 진짜 뜻과 닿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사실 모든 신부는 결혼식날 죽게 된다. 결혼이 바로 장례인 것이다....
결혼은 곧 장례로 일생을 통해 거쳐 가는 최대의 변형이며, 또 기쁜 탄생이란 의미로 의례를 거행하고 축복한다....
남자는 결혼으로 자신의 발달 과정에 한 부분을 덧붙이게 된 것이다.
남성의 세계는 결혼으로 강화되고 삶의 기반이 튼튼해진다."
"여성이 결혼으로 남성에게 희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은 본래 여성이 지니고 있는 주요한 특질이다...
혼인관계에 관한 진실을 말하자면, 여성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일련의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단계들을 거치게 된다.
남편은 사랑의 신이자 동시에 산정에서의 죽음이다."
사랑이라는 달콤함이 빠진 이후 결혼은 남성에게는 충만함이지만 여성에게는 자아의 일부가 도려내지는 '현실'이 됩니다. 여성들은 이 부당함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해 왔습니다. 결혼 제도가 가부장제의 유지를 돕고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저자가 가부장제의 옹호자는 아닙니다. 다만 그는 인류의 역사에 실재했고 이것이 인류의 내면에 하나의 발달 과정으로 남아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는 프시케 신화를 남성으로 상징되는 아니무스의 지배에 도전하는 여성의 각성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여성은 일생에서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 혹은 아니무스의 지배하에 살아간다...
마침내 여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의 지배에 도전하여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지며보겠다."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은 한 여성의 내면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기가 된다."
"일단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알고 나면 아니무스는 더이상 그 여성의 심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관계를 시작하면더 이상 아니무스에게 끌려가지만은 않는다...
현대 여성은 질문을 하고, 등불을 들고 자신의 의식의 확장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여성들은 프시케가 에로스의 낙원에서 지냈던 것처럼 결혼을 통하여 '질문없는 복종'의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그러다 등불을 들고 에로스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지요. 이제 어떠한 관계를 만드느냐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프시케는 신인 에로스에 대응할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프시케는 곡물골라내기, 황금양털 얻기, 스틱스 강물 떠오기, 지하세계에서 아름다움의 묘약이 든 상자를 가져오라는 4가지 과제를 부여받습니다. 저자는 각 과제가 분별력과 로고스에 다가가는 바른 태도, 한가지씩 완수하는 고요한 집중, 창조적인 거절의 유용함을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지난 달에 읽었던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를 통해 우리는 콩쥐도 비슷한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프시케 신화에서 특별하게 구별된 것은 '황금양털' 부분과 지하세계에 다녀오는 과제였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황금양털 구하기는 여러 남성 영웅 신화에서 자주 나오는 과제입니다. 하지만 프시케 신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남성 영웅들은 양을 죽여 황금양털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프시케는 난폭한 양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털 조금을 가져옵니다. 저자는 이 차이가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힘의 게임을 통하지 않고도 필요한 남성성(로고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지하세계에 다녀오는 과제는 가장 우리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프시케는 도움을 요청하는 여러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해야 했습니다. 이 '창조적인 거절'은 부탁에 응하는 친절함에 익숙한 여성들에게 매우 필요한 점이라고 생각되었어요. 나를 바스라지게 하는 선행은 결코 선이 아니며 모든 것은 결국 '중심잡힌 나'로부터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의식의 등불로 남성의 가치를 비추어 드러내 주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을 잘 적용하면 남성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아직까지도 남성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는 데 여성의 인정이 필요한 듯하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진화의 매개자가 된다."
여성이 남성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이 말은 우리를 또다시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남성은 '좀 모자라기 때문에' 여성들이 잘 끌고 가줘야한다는, 언뜻 들으면 여성을 높게 평가하는 듯한 이 말은, 관계라는 상호성에 왜 한 쪽만 노력해야하냐는 분노를 산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실'을 '당위'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에게 이 부분이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언급합니다.
이제까지의 저자의 이야기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저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며, 여성과 남성은 내면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서로에게 진화의 매개자가 됩니다. 남성은 여성을 새로운 탄생을 위한 죽음으로 몰고, 여성은 남성의 가치를 등불처럼 비춰줍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이성 파트너에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내면의 다른 성의 측면, 즉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발견하고 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실현의 방향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옛이야기의 변화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
옛이야기 속 주인공과 주요 주제의 변화는 인류의 내면 발달과 연관이 있습니다. 프시케 신화는 여러 면에서 인류 진화의 변곡점을 의미합니다. 프시케의 등장은 풍요와 다산, 자기중심의 폭발적 에너지인 아프로디테라는 고대의 여성성에서 억압과 각성, 의식의 확장과 재탄생이라는 새로운 여성성을 나타냅니다. 고대의 여성성은 새로운 여성성을 시험에 들게 하지만 결국 길을 내어주고 주인공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프시케가 여자 주인공으로서 처음 황금양털을 손에 쥐었다는 것은 로고스라는 힘의 접근에 남녀구분이 사라진 것을 상징하지요. 남성성과 여성성의 교차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프시케는 신을 보고도 살아남은 첫번째 인간입니다. 그 이전의 이야기들에서는 신을 본 인간들은 강한 에너지를 이기지 못해 모두 녹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프시케는 인간이 신이 된 첫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이는 인간과 신의 관계가 인간 내면에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시케 신화가 인류의 이야기가 신화에서 민담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다고해요.
이야기는 인류의 정신이 계속 변화해왔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진화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진화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의 신체 진화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진화의학에서는 여성의 몸이 '번식'이라는 목적을 향해 진화하였고, 아기는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진화의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덧붙여 한가지를 더 이야기하죠. 진화는 과거를 알려줄 뿐 미래를 재단하지는 못한다고요. 즉 진화로 인해 지금 그렇게 기능하는 것과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체가 진화해온 것처럼 심리도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여성성'이라는 것도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진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일 것입니다. 진화의 결과로 내면에 갖고 있는 힘을 자각하고 이를 사용해서 '중심잡기'를 해나가는 것, 이것이 프시케가 현대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아닐까요? 그런 하루하루들이 내면의 신성을 향한 여정이라고 말이지요.
이번 모임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달빛 아래 함께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2시간 동안의 뜨거운 공감과 연결은 여전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해서 여러 예측들이 나오고 있지만 바로 하루 앞의 미래도 제대로 계획할 수 없는 요즈음입니다. 코로나는 인류를 어떤 진화의 방향으로 이끌까요. 인류는 이 방향잡기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닫게 될까요. 먼 미래의 인류는 지금의 인류를 어떤 이야기 속에서 어떤 진화의 흐름 속에서 해석할까요. 해소되지 않는 고민을 함께 끌어안고 이야기나눠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이렇게 치열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모르는 새에 고민이 우리보다 작아져 있으리라고 믿어요.
[달빛오두막]은 달의 기운이 가장 큰 음력 15일 즈음, 여성과 관련된 하나의 주제를 한 권의 책과 연결하여 읽고,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올해의 주제는 '옛이야기와 여성'이며 다음 달에는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의 저자 신화학 박사 고혜경 교수님의 온라인 강연이 진행됩니다. '옛이야기 속 여성성'이라는 주제 아래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고민들이 잘 정리되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 주제 : 옛이야기 속 여성성의 재발견
- 일시 : 10월 3일 저녁 6시 반 ~ 8시 반
- 참여방법 : Zoom 링크 접속
- 신청 : https://forms.gle/v5w7E7LbfLRJtZE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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