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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달빛오두막 - 8월 후기]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본문
달빛오두막 두번째 모임이 8월 1일에 진행되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여러 곳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어서 모임벗들께서 오실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오후 늦어지니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어요.
이번 달에 읽은 책은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입니다. 친숙한 우리나라 옛이야기를 중심으로 옛이야기속의 여성성에 대해서 탐구한 책입니다. 지난 달에 읽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과 비교했을 때, 세세한 설명과 논리적 분석이 있어서 더 쉬웠고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보니 받아들이기도 편안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매우 분명하게 구분되는 한가지가 있었는데 '여성성'이라는 키워드가 그것입니다. '늑대와 함께~'가 여성들이 사회구조의 중독 아래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내면의 힘을 자각하길 바라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여성성을 여성들의 근원적인 힘으로 연결하면서 '여성성의 회복'을 여성들 뿐 아니라 사회의 과제로 제시합니다. 여성들이 내면에 자연스럽게 간직한 여성성의 힘을 오히려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과 자긍김을 길러 가려는 노력의 연장으로 책을 쓴다.'고 하면서도 '여성성의 힘은 여성의 힘과 다르다.'는 저자의 구분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매우 생소한 구분이어서 이것을 의식하며 읽어나가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저자는 옛이야기를 통해 여성성의 신비를 회복할 수 있는 주요 과제들을 아래처럼 제시합니다.
- 삶의 주인공으로서 기쁨을 누리기
- 삶의 과제를 통한 내적 성장
- 부모로부터의 독립
- 배우자와 창조적 관계 맺기
- 성의 기쁨
- 그림자 통합
- 직관에 대한 믿음
이 중 우리는 심청전, 콩쥐팥쥐, 해님달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중심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저자가 심청전 이야기에서 짚어낸 것은 기쁨을 잃은 채 당위 안에서 살아가는 우울한 심청의 내면이었습니다. 밝은 빛을 바라볼 수 없는 '눈 먼' 심봉사는 그 어둠 속으로 심청을 끌어들입니다. 공양미 삼백석이라는 가당치 않은 약속을 위해 심청은 다른 가능성을 궁리해볼 여유도 없이 한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요. 전세계의 영웅 서사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자기희생'이 심청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적극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체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님 부모님을 거지잔치로 불러와 눈을 뜨게 하는 서사가 '감은장아기'와 배우 비슷하지만, 주인공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요. 저자는 인당수에서 죽어야할 것은 내면화된 우울과 자기의심이며, 자기의심은 여성이 갖는 최대의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없이는 삶의 기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콩쥐팥쥐 이야기에는 여성성 계발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들이 제시되어있으며 이는 세계의 여러 여성영웅 서사에서 반복되는 모티브입니다. 넓은 밭갈기를 통해 시야를 확장하고, 밑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서 심연으로 깊이 내려가며, 볍씨의 껍질을 벗기며 분별력을 키워갑니다. 이는 바살리사가 바바야가에게서 받은 과제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또 다음 달에 함께 읽을 프시케 신화에서도 반복되는 과제이지요. 이렇듯 여성 영웅은 남성과 달리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콩쥐팥쥐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서 가장 기존의 틀을 깨는 부분은 통곡의 힘에 대한 역설입니다. 통곡을 연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순수한 열림과 내맡김으로 보는 것이지요. 이제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나오는 탄식과 울음은 새로운 세계를 열리게 합니다. 그것은 바닥에 맞닥드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가여워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새로운 힘이 아닐까요.
해님달님 이야기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건강한 독립에 대한 의미를 전져올립니다. 외떨어진 숲 속 오두막은 안전하지만 정체된, '부모라는 울타리'를 상징합니다. '호랑이'라는 무의식적 야성은 남매에게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을 사용하게 되지요. 그 힘은 기지와 순발력, 도구 사용 그리고 간절한 기도까지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것을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로 해석합니다. 부모의 자식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걸음 내딛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는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한 적절한 통과의례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부모로부터 내면의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의례가 제공되지 않아 자기들끼리의 일탈을 통해 이를 해결하곤 하지요.
스스로 바로 서는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자녀 뿐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 시절의 부모님, 특히나 엄마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엄마가 자기 인생에 넘 충실해서 유년시절 조금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과도하게 자식에게 집착해서 숨이 막히기도 했었습니다. 엄마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나를 이제 자각하면서 마음이 쓰리기도 했어요. 그 시절 엄마에게 필요한 독립의 통과의례를 완경파티로 축복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아이에게서도 독립이 가능한데, 지금의 나는 부모님과 잘 분리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네요.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인간의 통과의례 중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내면의 여성상과 현실의 여성을 구분하지 못한 나무꾼은 선녀라는 여성 배우자와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며 결혼과 여성의 영적 성장이 같이 가기 힘든 현실을 한탄합니다. 선녀의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날개옷을 상실한 것이 결혼이고 이를 되찾는 것이 결혼에 위협이 된다는 대비가 주는 의미가 너무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선녀와 나무꾼은 '늑대와 함께~' 책에 나온 물개 여인 이야기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조금 다릅니다. '늑대~' 책에서는 물개여인이 물개가죽을 잃어버린 것을 나 자신을 잊어버린 중독상태의 결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결국 물개여인이 현실에서의 삶을 통과하며 내면의 고향과 현실을 오갈 수 있는'정신'을 낳게 되는 것으로 해석하지요. 하지만 선녀와 나무꾼의 결말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여러 버전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선녀와 나무꾼은 헤어지게 되지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새겨야 하는 메세지는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결혼관계 안에서 개개인의 영혼이 망가지기 보다 존중되고 오히려 고양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창조적 방법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주어진 방식을 답습한다면 결국 두 사람의 세계는 다리없이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심연으로 들어가 다른 시야로 삶을 바라보게 된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기존 가부장적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마치 나무꾼처럼 말이죠. 자신이 경험했거나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한 역할의 틀로 배우자를 판단하면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모든 관계에는 '기대치를 벗어난 여유공간'이 필요합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내면의 틀을 무시하지 않고 자각하되, 그 틀 주변에 '충분한 틈'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한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틀을 넘어 존재했던 경험이 매우 유효합니다. 그 경험으로 나 이외의 누군가의 선넘기에 대해 허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연민'이라는 감정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관계에서 힘들 때 '연민'만큼 모든 상황을 끌어안는 것이 없다고 말이지요. 연민으로 가게 하는 감정이입과 그러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열린 마음이 내면의 성장과 연결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 변곡점을 지나면서 여성들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통과의례가 죽음과 탄생의 과정을 무사히 지나가도록 공동체가 제공하는 의식이라면 자아의 죽음을 통과하는 중년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이야기 모임이 통과의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콩쥐가 받는 마지막 과제인 볍씨까기를 도와주는 것은 참새들입니다. 저자는 다른 과제에서는 한 마리의 동물들만 나오다가 마지막에 한 무리가 등장해 도와주는 것을 의미있게 해석합니다. 자기 삶의 과제이더라도 혼자서는 풀어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습득했다고 생각했는데 환경이 바뀌니 기존의 습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좌절했을 때, 서로의 생각과 변화의 의지를 지지해주는 여성들의 모임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 날 우리는 특히 '함께 읽기의 힘'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은 저자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권위이지요. 여성들은 이미 심청처럼 자기자신보다 바깥의 목소리에 권위를 부여해온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함께 읽는다면 '책이라는 목소리'에 대해 '한 번 들어보자'는 뱃심을 내어볼 수 있습니다. 여러 시선에 기대어 비판적으로 책을 해석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이 날 한 모임벗께서는 저자가 '영원한 처음', '처음의 떨림과 두려움'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처녀성'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여성의 시선으로 기존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책에서 가부장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읽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억압의 용어를 의식할 수 있도록 해주신 그 시선에 감사했습니다.
저자가 새롭게 정의내리고자 한 '여성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어렵게 남아있었습니다. 이미 여성성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쏠린 정의를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여성성과 남성성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갖고 태어나는 것인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영원히 끝날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단어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와 경험들도 다 달랐지요. 외적인 꾸밈을 유난히 강조했던 엄마와 돌봄과 헌신의 가치에 짓눌려 여성의 삶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던 엄마에게서 딸들은 '여성성'이라는 단어를 각자 다르게 가지고 갔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성성을 충분히 긍정하기 힘든 미묘한 거부감이 그것이었죠. 이 시대의 모두가 그러한 편향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그것이 여성에게 특히나 치명적인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가 바로 '여성'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자는 오랜 내면작업을 해온 지인에게 '여성으로서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는 'how to feel'이라고 답하죠. 어떻게 느끼는지 아는 것이 여성으로서의 힘이자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알듯말듯한 이야기였어요. 여성과 여성성은 하나가 아니고 여성성은 남성들도 자각하고 발견해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내면의 다른 부분이 통합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기반이 되는 출발점은 '나에 대한 자연스러운 긍정'일 것입니다. 자기의심을 넘어 자기부정을 발판 삼아 버티고 있는 여성들에게 저자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느끼는 것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 말이죠.
"내가 풀어낸 옛이야기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각자 자신의 이야기 풀이를 시작하기 바란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옛이야기의 여러 버전을 비교하지 않은 것, 미묘한 결말의 차이나 강렬한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은 것 등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책의 저자에게 모든 답을 바라거나 책을 읽고 나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 모두 우리가 '명확함'에 중독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저자의 말처럼 모임에서 받은 위로과 공감, 지지를 뒷배로 삼고 각자의 삶으로 고민을 잘 품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름 뒤에 가려졌지만 달이 있다는 걸 우리가 아는 것처럼요.
다음 모임에서는 여성 영웅 서사의 대표적 이야기인 '프시케와 에로스' 신화를 바탕으로 여성성을 탐구하는<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를 함께 읽고 만납니다. 다음 보름달이 뜰 때 다시 오두막을 열겠습니다.
[달빛오두막]은 달의 기운이 가장 큰 음력 15일 즈음, 여성과 관련된 하나의 주제를 한 권의 책과 연결하여 읽고,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올해의 주제는 '옛이야기와 여성'이며 다음 달에는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를 함께 읽으며 신이 된 여성의 이야기, 여성 영웅 서사를 살펴봅니다. 책을 읽지 않으셔도 참석 가능합니다.
- 일시 : 9월 5일 저녁 6시 반 ~ 8시 반
- 장소 : 책방 책읽는 정원 (서울 서초구 논현로7길 24 1층)
- 신청 : https://forms.gle/WaJxmKwidZwQTjfj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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