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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마무리 에세이 - 완벽함이 아닌 온전함으로 본문
여신모임 1기 마무리 에세이 - 2017년 12월
6명의 모임벗들과 함께 한 3권의 책, 12번의 만남.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 속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알아갔던 시간이었다.
*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는 내가 이제까지 내 삶을 대해왔던 방식이 진정 나의 의지였는지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랜 시간동안 내가 여성으로서 나를 긍정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성의 몸을 성적도구로 바라보는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 속에서 나는 '여성의 몸은 위험하다'고 정의내렸고, 여성이 사회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약자가 되는 모습에 좌절감을 느끼면서 그 패배자의 울타리에 나를 밀어넣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안전하고 싶었고, 약자의 영역으로 묶이기 싫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대신 더 강하고 분명한 무언가로 내가 정의내려지길 바랐던 것이다.
온전히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제까지 내 몸과 존재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죄책감과 무력감까지 느끼곤 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이 책을 통해 내 몸을, 그리고 우리 몸이 행하는 경험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힘을 느꼈고,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가 그 힘을 사용하며 인생의 항로를 거쳐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는 내가 어떤 여신원형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 유형인지 살피고 그 모습을 인정하면서 단단한 자아를 위해 변화를 시도하라고 이야기한다. 어릴 때부터 남녀차별에 분노하고 자매애를 중요시하면서 사회적 성공보다는 정의로운 가치를 쫓아온 점으로 보았을 때, 나는 아르테미스 원형으로부터 주요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대를 중요시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편하지는 않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러면서도 관계에 휩쓸리고 관계를 쫒는 관계지향적인 면도 있다. 이 지점은 다양한 면모를 보이는데 남편에게 정서적, 실생활면에서 의존하고 결혼의 책임감을 중요시여기는 것은 헤라, 임신, 출산을 매우 원하고 보살핌의 대상을 내 방식대로 조절하려고 하는 욕구가 강하며 관계에서 오는 요구들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데메테르, 관계의존적이고 아직 스스로 서지 못하는 점은 페르세포네 원형의 모습을 보인다. 어린 시절 부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안전감이 결핍되었고, 거기에서 관계에 대한 의존이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또한 사랑, 관심, 열정, 내가 사람들간의 관계와 일에서 추구해왔던 생동감의 원천은 아프로디테 원형의 영향인 듯 하다.
* 변화를 위하여
두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내면의 지혜를 듣지 못하게 하는 중독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며, 각자 안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원형들은 그 중독구조 안에서 삐둘어지게 강화되었을 수도 또는 억압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에 몸이 신체적 병증이나 감정적인 에너지로 전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내가 변화해야 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그 변화를 통해 자아를 단단히 하며 통합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내 안의 변화를 위해서 두 책이 제시하는 방법 또한 비슷하다.
명상, 공부,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운동하기와 같은 적극적인 행동,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고 기도하는 불러내기 작업,
혼란상황에서 질문과 함께 더불어 기다리며 '선험적인 기능'(내면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내 삶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이 될 것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다.
핵심가치 찾기에서 나는 내가 선택한 핵심가치들을 나의 원형적 가치와 내가 추구하고 싶어하는 가치,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가치로 분류할 수 있었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들은 촉진하기, 즐거움, 영적인 삶의 영역에서 많이 뽑혔는데 촉진하기와 즐거움은 확실히 아프로디테의 영역이며(느끼기와 창조하기도!), 영적인 삶은 헤스티아, 또는 페르세포네의 영역인 듯 하다. 아프로디테의 가치는 내가 중요시하고 그 자체가 나인 가치들이고, '영적인 삶' 부분은 내가 추구하고 싶어하는 가치이다. 발견하기와 숙달됨이라는 아테나적 가치를 뽑은 것도 의미있어 보인다. 나만의 일을 시작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원하고, 필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인 것 같다.
나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해서는 입장이 뚜렸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부족한 상태이다. 그래서 헤스티아의 고요하면서 단단한 내적 충족감이 계발되어야 한다고 느끼며 사회문제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수용적이며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
영성서적들을 보면 가슴의 소리를 따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충동적인 욕구인지, 진정한 내면의 소리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는데, <우리 속에~>책을 통해 그 구분이 명확해졌다. 각자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이후 욕구에 응할지 유보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저자는 그것을 '가슴의 소리'라고 정의했다. 셋째에 대한 욕구가, 시골로의 이주에 대한 욕구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책을 읽고 모임벗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명확해지면서 진정한 가슴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작년에 뱃 속의 셋째를 하늘로 먼저 보내고 거의 자아 분열 상태로 인생의 방향도 빛도 잃은 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치유모임벗들과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읽으며 차츰차츰 늪에서 빠져나와 걸어나올 수 있었다. 모임 안에서 반복적으로 내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서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내가 적었던 나의 미래 모습은 같은 아픔을 지닌 여성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도 난 여전히 같은 꿈을 꾼다. 나는 낙태의 아픔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안아주고 싶다.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받거나 위로받지 못한 채 힘들어할 그녀들과 함께 울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아무에게도 속시원히 이야기하지 못했던 아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 내가 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일단 '안전하게 들어주는 누군가'가 되어주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 불완전한 내 삶의 창조자
어떠한 사람들이라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겪을 수 있는 상처에 담대하게 대응하는 내가 되고 싶다. 가치에 몰입하는 힘을 지니고 관계의 위험함을 끌어안고 열려있으면서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과하게 진지하지도 과하게 가볍지도 않은 나이고 싶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나를 알고 내 안의 힘을 믿는다. 그리하여 나의 변화 속에서 미래를 끌어당기는 것은 불완전함 속에서 행하는 여러 시도들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12주 후에 내가 완벽하게 변화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어쩌면 인생이 끝나는 그 시점에서까지 나는 내가 바라는 그 모습이 되어있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모습을 이루기위해 무의식이라는 내 내면이 나를 끊임없이 채근할 거라는 걸 믿으며, 그 과정으로서 앞으로 맞이할 인생의 사건들과 몸의 변화들을 조금은 덜 두렵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때로 그 선택들이 슬프고 잔인한 용기를 필요로 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이라면 여전히 나는 삶을 창조하는 주인공일테니까 말이다.
평화롭고 단단한 나의 미래를 상상하되, 닫힌 기대 안에서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내 삶의 여정을 받아들이고 싶다.
완벽함이 아닌 온전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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