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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여신모임] 가혹한 의지보다는 다정한 토닥임으로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4기 2019 가을

[여신모임] 가혹한 의지보다는 다정한 토닥임으로

고래의노래 2019. 9. 27. 15:51

 [내 안의 여신찾기] 두번째 모임에서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3~4장을 함께 읽고 만났습니다. 지난 번 모임에서는 가부장문화 속에서 우리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나의 믿음체계를 돌아보았었지요. 이번에는 그 중독상태에서 벗어나 내면의 인도자와 만나기 위해 무엇과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면의 인도자는 생각, 감정, 꿈, 몸의 느낌을 통해서 전해진다고 하면서 내면의 인도자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철저히 신뢰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이성의 영역만이 믿음과 연결된 시대에 '감정을 신뢰한다'는 건 과연 어떤 뜻일까요? 우리는 감정에 대한 경험들을 나누며 감정을 대했던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주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보다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어요. 막연한 불편감과 분노가 어디를 향한 것인지를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일단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천천히 따라가기 보다는 억압하는 쪽을 선택했죠. 그것은 아마도 감정을 명확히 인지한다는 것이 나의 욕구를 알아채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욕망을 쫓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배웁니다. 나 하나 참아서 모두가 편안하다면 기꺼이 그 쪽을 택하는 것이 선함으로 강요되지요. 내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어 상대방이 불편해하면 오히려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나의 욕구와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율하다보니 내적인 충만과 만족감은 오히려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충만한 만족감을 어떻게하면 우리에게 허락할 수있을까요. 그 충만함이 우리에게 가능한, 그리고 마땅한 감정이라는 것을 경험으로부터 살려내기위해 우리는 영적인 순간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머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면서 눈물이 흘렀던 경험, 미처 예상치못한 상황에서 마음 속의 무언가가 툭 끊어져 홀가분해졌던 경험, 다른 날들과 똑같은 평범한 하루였지만 자연이 나와 함께라는 걸 오롯히 느끼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던 순간의 경험들이 이어졌어요. 저자는 이성의 세계에서 우리가 등한시했던 '비과학적인' 것들을 믿어보라고 말합니다. 감정, 꿈, 몸의 느낌, 직관같은 것들 말이지요. 우리는 확실하는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 가능한 그 상태에 닿고 싶어서 이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떠한 에너지를 느끼는 능력이 직관이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직관의 이끌림이겠지요.

 


 위 그림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눈먼 소녀'라는 작품입니다. 두 거지소녀가 비 개인 후 무지개가 뜬 아름다운 순간을 각자의 방법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쌍무지개를 경이롭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언니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네요. 그런데 언니는 전혀 아쉬워보이지 않습니다. 세찬 비바람 뒤 찾아온 고요한 평화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건 오히려 언니인 것 같습니다. 다시 지저귀는 새소리, 물기를 머금은 풀들, 팔랑거리는 나비, 구름 뒤에서 얼굴을 내민 햇살을 언니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누가 더 전율했는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충만함이라는 진실에 닿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에게 자기주장을 할 발언권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중독에서 벗어나서 우리 안의 내면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강압적이진 않지만 분명히 저자가 이끌고자 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거기까지 닿지 않습니다. 떠올리고 풀어내라는 과거의 기억도 가물거리고 특별히 강렬한 감정도 없어서 난감한 느낌이지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한 분노를 풀어내야한다는데 그 사람과 마주할 자신도 아직은 없습니다. 어찌해야할지 막막한 심정입니다.

 여성들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여겨지면 쉽게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게다가 나를 위해 애쓰는 누군가 앞에서는 상대를 기쁘게 하라는 거대한 의무감에 사로잡힙니다. '지금 나와의 연결'이라는 진실은 옆으로 밀려나지요. 사랑의 에너지(차크라 4)와 창의적 에너지(차크라 2)를 동시에 사용하는데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들 내면에 이러한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이야기대로 따라가보지만 결국 우리가 믿고 따라야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 책이 길잡이가 되주지 않았어도 우리는 계속 스스로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나를 믿고 사랑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했었지요. 교육을 찾아듣고 상담을 받고 건강에 대한 여러 대안적인 방법들을 공부했습니다. 왠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수술을 받지 않았고 더 근본적으로 몸과 연결되고 싶어서 치료방법을 바꾸기도 했지요. 그것은 분명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른 선택들이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 나의 삶을 연결해보는 작업이 이제 시작됩니다. 그 시작에 앞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건 '가혹한 의지'보다는 '다정한 토닥임'이 아닐까요. '중독'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것은, 한 때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나를 살리기위해 어쩔 수 없이 붙잡고 있었던 동앗줄이었죠. 우리 안에 그 동앗줄을 놓을 변화의 힘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다고, 아프고 힘드니 돌봐달라고 말이죠. 저자가 아니라 우리를 믿고 시작해보아요. 우리 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걸 얻어낼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의 불편함을 무릅쓸 용기'이자 '상대를 불편하게 할 힘'입니다. 그 두 힘이 하나의 뿌리로 우리 안에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내가 의지했던 것들을 편안히 흘려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아직은 무언가 잘 되는 것 같지 않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바쁘고 복잡하고 부담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 순간 평온함이 깃들어 거기에 잠시 머물러 보았습니다. 똑같은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는 나를 알아채고 받아들이기도 했지요. 눈먼 언니가 만지작거린 작은 풀처럼 그렇게 작은 순간들을 조금씩 다정하게 쌓아가보아요.

 

 이번 모임에서도 믿음으로 마음을 열고 삶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서로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우리모두의 믿음이 아직은 주저하는 약한 마음들을 손잡아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5 월경주기, 6 자궁, 7 난소까지(~p214)까지 읽고 만납니다. 월경을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나에게 조금씩 다가가보겠습니다.

 

* [내 안의 여신찾기]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12주동안 진행되는 내면여행 모임입니다. 2권의 여성주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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