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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더하기] '서로 도우라!'는 진화의 페미니즘적 메세지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페미니즘 더하기

[페미니즘 더하기] '서로 도우라!'는 진화의 페미니즘적 메세지

고래의노래 2019. 9. 24. 15:03

 '페미니즘 더하기' 두번째 모임에서는 <여성의 진화>에서 '임신, 출산' 부분을 함께 읽고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아기의 발달과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모체를 중심으로 한 임신출산 이야기이지요. 진화의학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임신과 출산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태아를 이물질로 여기지 않으면서 면역기제로 공격하지 않아야 하고, 임신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번식을 위해서 효율적인 선택인지 끊임없이 조율하는 과정을 무사 통과해야 합니다.

 

 

임신의 진화적 신비로움

 

 진화의학적으로 초기유산은 번식효율성이라는 목표때문에 발생합니다. 배아가 건강하게 태어나 나중에 다시 아기를 낳을 가능성이 적다면 포기하는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고령의 산모에게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기가 많이 태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고령의 산모는 앞으로의 임신기회가 적기 때문에 일단 유전번식의 확률를 조금이라도 높이는게 필요할지 모른다는 거죠. 유산을 막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냉정하고 가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의 생식 체계는 그렇게 "아주 유연하고, 가차없이 효율적이며, 철저하게 진화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의 몸은 번식을 위해 진화해 왔습니다. 그래서 '가차없는 효율성'은 냉정한 헤어짐 외에 한없는 보살핌과도 연결됩니다. 주변환경, 내 몸 상태, 태아의 상태가 번식에 적합하다면 태아를 어떻게든 잘 성장시키려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돌아가지요. 다낭성 난소 증후군과 임신성 당뇨, 임신성 고혈압 등 임신관련 질환들은 태아를 잘 붙잡아두려는 의욕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습니다. 태아를 위해 자궁내막을 복잡하게 발달시키거나 태아에게 영양소를 더 많이 공급하려던 기전이 발달 과정에서 불완전해졌거나 현재의 과도한 영양상태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임신을 유지하고 태아를 지키기로 결정되었다면 그 순간부터 모체와 태아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배아가 제대로 착상되게 하기 위해 모체는 자기 면역을 억제하여 배아를 공격하지 않게 합니다. 착상 초기에 이것은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효과이고, 그 이후에는 태반의 기능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이를 '모체 발아의 면역적 무기력 현상'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다른 존재를 위해서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진화'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우리가 아이들과 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임신동안 왜 태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나눈다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반대로 어머니와 너무 비슷한 태아는 거부되기도 하는데, 이는 면역계 유전자의 문제로 일어납니다. 더 많은 병원체에 대해 저항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면역계 유전자끼리의 조합이 필요한데, 이 조합이 비슷할 경우 모체가 면역억제 기전을 작동시키지 않아 착상이 힘들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를 '근친혼 억제 기전'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월경이 인간의 특이한 현상이었듯 인간의 태반과 입덧증상도 다른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의 특징입니다. 인간의 태반은 다른 동물에 비해 매우 얇고 독소에 대한 보호력이 약해서 임신중 처방약을 실험할 때 많은 문제를 겪습니다. 실제로 원숭이 대상 실험에서는 문제없던 입덧약이 인간에게는 태아의 팔다리 기형을 유발하기도 했지요. 보호력이 약한 대신 연결은 더 뿌리깊습니다. 인간 태반은 모체와 혈관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다른 동물과 달리 2번 이루어집니다. 보다 깊숙하고 단단한 연결을 통해 영양전달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입덧도 인간만이 가진 증상입니다. 입덧은 임신 초기에 위험할 수 있는 음식물을 억제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아마도 인류 진화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인간의 영양상태가 열악했을 때 일단 무엇이든 먹을 것이 생기면 먹어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태아를 보호해주었을꺼라는 겁니다.

 

 

'도와줘!'라는 진화의 메세지

 

 임신상태에서 임산부의 심신안정이 태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화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 연결은 훨씬 더 깊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태아는 모체에서 전달되는 영양과 호르몬 상태를 바탕으로 자신을 프로그램화합니다. 출생 이후의 환경을 미리 예측해서 자신의 신체가 가장 효율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이를 '태아기 프로그램화 가설'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프로그래밍은 단순히 나를 품은 엄마로부터만 영향받는 것이 아닙니다. 태아는 이에 대해 모계 전체를 통해 단서를 얻습니다. 프로그램이 대를 이어 영향을 주면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런 설명이 상황 유지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즉, 열악한 환경에서 프로그램화된 것이 풍족한 환경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진화의학의 관점이라면 열악한 환경 속 여성의 삶을 개선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 주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이러한 악순환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임신 중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뿐이며 출산전후 기간동안 임산부를 최대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유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출산은 여성이 경험하는 인류 진화의 결정적 타협점입니다. 두발걷기를 시작하며 인류의 골반크기는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골반이 좁아지는게 유리하지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때문에 산도도 좁아지게 됩니다. 이동의 용이함과 출산의 용이함 사이에서 벌어진 대타협의 결과로 현재 여성의 골반모양이 진화되었는데, 이는 산도의 입구와 출구의 모양이 다르고 앞쪽이 뒤쪽보다 넓은 형태입니다. 그래서 아기는 분만과정에서 엄마의 등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오기 시작해서 한 번 몸을 뒤틀어야 합니다. 아기가 등을 보며 나오게 되면서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혼자서 출산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아기가 나오는 방향대로 손이 닿지도 않는데다가 아기를 자기 쪽으로 무리하게 잡아빼다가는 아기 몸이 꺾이면서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출산 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인류 보편의 현상입니다. 인간이 직립보행으로 선택한 것은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는 취약함이기도 합니다. 출산은 인류가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로 부탁한 첫번째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왕절개의 위험성이 질식분만보다 훨씬 높고 분만과정에서의 자궁수축와 호르몬이 태아의 면역력을 높이기 때문에 제왕절개는 신중히 선택되어야 합니다. 물론 제왕절개술이 많은 아기와 산모를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지만 의학적 편안함만을 위해 제왕절개술을 하는 것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죠. 게다가 현대의학에서 행해지는 일반적 출산법은 여성이 본능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임신출산 경험기를 나누면서 정서적인 교감없이 병원 시스템의 일부로 출산했을 때와 충분한 교감과 존중 속에서 출산했을 때의 차이를 이야기했습니다. 오랜 진통 후 결국 제왕절개를 했지만 아기와 함께하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가 존중되었던 경험, 내 마음대로 자세를 취할 수 있자 쪼그려 앉아서 출산했던 경험, 진통과정에서 의료진이 아기의 태명을 불러주며 응원할 때 따뜻한 연대감을 느꼈던 경험들이 오갔습니다. 그것은 존재를 흔드는 취약함, 내가 인류 속 여성이라는 연결감의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모임벗 중 한 분이 임산부이십니다. 몇 달 뒤면 이제 아기를 만나게 되는데,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출산과정과 출산방법에 대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두발걷기가 시작되고 산도가 좁아지자 아기의 머리는 더 커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뇌발달을 출생 이후로 미루게 되었지요. 이것은 어머니가 출산이후 더 많은 에너지를 자식에게 투자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뇌가 인지적 유연성을 갖게 되어 언어나 사회적 기술 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 효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진화의학의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는 출산이 끊어지는 짧은 사건이 아니라 태아의 난소가 발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식이 다음 생식을 시작할 때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의 일부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임신기간과 출산 후 6~9개월을 모두 재태기간으로 보아야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네요. 진화적인 면에서 임신 출산, 그리고 이후의 양육은 충분한 사회적 지지 속에서 하나의 연결로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화의 방향은 이미 페미니즘이다


 지난 시간 성장과 월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로지 번식을 목적으로 진화해온 우리 몸의 진실을 대면하자니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임신 출산 부분에 이르니 진화의학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특별함, 진화적 대타협, 그리고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이지요.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찾아 건드린다는 점에서 종교적 이야기와 오버랩되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월경에서 태반, 입덧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특별한 증상들이 어떠한 의미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간은 특별하다고 하는 성경의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졌었는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들이 이어지니 과연 무엇이 그리 다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두발걷기로 인해 힘들어진 출산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벌로 출산의 고통을 받은 하와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판단력, 지능(두발걷기, 선악과)을 선택한 대신 힘든 출산(좁은 산도)을 감당하게 된 것이지요. '태아기 프로그램화 가설'이나 '도움이 필요한 출산'은 한 생명이 온전하게 세상에 내려오기 위해 필요한 환대와 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는 현대사회가 진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의학기술의 발전은 진화의 방향을 거스르고 유산을 막으면서 취약한 생명들을 세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은 진화적으로는 인류에게 생소하고 익숙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진화는 우리에게 '생명이 오기까지의 여정에 다함께 참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의 뿌리는 이미 '모두 함께 사는 사회'를 준비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진화의 방향은 이미 페미니즘적인게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양육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진화적으로 '어머니'는 어떤 의미이며 가치인지 함께 나눠보아요. ^^

 

* [페미니즘 더하기] 10주간 3권의 책을 읽으며 의학, 종교, 심리분야를 페미니즘의 필터로 살펴보고 인간, 여성 그리고 우리자신을 이해해보는 책모임입니다. 부분 참여나 특정책만 참여도 가능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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