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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더하기] 최고의 순간이자, 최악의 순간 속 여성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페미니즘 더하기

[페미니즘 더하기] 최고의 순간이자, 최악의 순간 속 여성

고래의노래 2019. 9. 17. 14:44

  '페미니즘 더하기'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10주간 의학, 종교, 심리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살펴보는 책들을 함께 읽게 됩니다. 첫 주제는 의학입니다. 4주동안 '여성의 진화'를 읽으며 여성의 몸을 마주해봅니다. '여성의 진화'는 생애주기별로 나타나는 여성 몸의 변화와 건강문제를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입니다.

 

 진화의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오늘날의 몸과 생체시스템을 설명합니다. 이 책의 핵심주제는 책의 서두에서 이미 던져집니다. 여성의 몸은 번식성공율을 높이기 위해 진화해왔으며 오늘날 여성들이 겪는 건강문제들은 현대사회가 몸이 진화해온 수백만년동안의 과거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건강이 아니라 번식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앞으로 여성의 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품고 가야할 명제입니다. 삶의 목적이 번식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히 몸의 배신으로까지 여겨질법한 이야기이지요. 몸을 이해한다면 내 몸과 내 삶이 조화로워질 수 있을까요? 책은 여성의 성장부터 월경, 임신, 출산, 육아, 완경까지의 생애주기를 시간순서대로 전개합니다. 이번 주에 읽은 것은 성장과 월경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초경이 빨라진 진짜 이유'들'

 

 초경 시기는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성장과 출산의 대립구도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몸은 태아를 희생해서라도 성장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초경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 공급이 원활한 환경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가설입니다. 오늘날의 과영양이 이른 초경을 유발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심리사회적 측면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초경은 여아가 성인남성과 지낼 경우 당겨지는데, 이 남성이 친아버지이면 지연되고 유전적으로 다른 남성이면 당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아버지가 안정적인 환경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불성실한 사람일 경우에는 오히려 이른 초경, 이른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네요. 즉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일찍 아기를 낳는 것이 번식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고 몸이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골반의 크기가 초경 시기와 관련이 있다거나 둔부지방이 많으면 초경이 빨라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나 둔부지방의 경우 태아의 뇌발달에 필수적인 영양소의 원천이기에 둔부지방이 많을수록 자녀의 인지 기능이 우수하다는 연구결과까지도 있다고 하네요.

 

 초경이 빨라지면 여러가지 질병과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월경통과 생리불순이 심해지며 불안장애, 우울증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과다한 단백질과 지방섭취, 이른 초경, 유방암 방별율은 분명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을 없애기 위해 초경 시기에만 집중해서 호르몬 요법을 시행하거나 비만에 대한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몸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정상적인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100년간 성적성숙 연령은 계속 내려갔지만 집단별로 차이가 큽니다. '정상'적인 사춘기는 넘치는 자원과 첨단 의료시스템 속 건강부국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진화적 공공보건'에서는 개인적 차원의 현상치료에 집중하기보다 자원을 제대로 분배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인류의 건강상 더 이득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월경의 비밀은 아직도 진행형

 

 월경을 하는 동물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두꺼워진 내막조직이 몸 안으로 다시 흡수되기 때문에 배출되는 양이 거의 없고, 가축화된 포유류 중 일부가 월경을 하지만 이마저도 양이나 빈도수에서 인간과 비할 정도는 아니지요. 왜 인간만이 월경을 하는지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저 복잡한 생식 시스템이 진화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라고 설명하는 가설도 있다고 하네요. 채식 위주로 진화된 몸에 과하게 고기를 넣고 있기에 필요없어진 자궁내막이 배출해야할 불순물이 되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는 반면 채식식단으로 바꾼 어느 할머니가 다시 월경을 시작하게 된 사례도 있습니다. 월경 자체가 건강의 지표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인류선조는 평생 100~150번의 월경을 했습니다. 초경도 늦었고 임신도 잦았으며 일찍 죽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날 여성들을 평생 350~400번 월경을 합니다. 문제는 여성의 몸이 임신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섭취하는 열량수준이 높아지면서 호르몬의 수치도 높아졌습니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데 확실하게 바깥으로도 티가 나는 현상을 매월 반복해서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 이유조차 모른다고 하니 '의미'를 위해 견디는 것까지도 불가능해지지요.

그런데 책을 읽고 이야기하다보니 월경이 우리에게 부리는 다른 차원의 '행패'가 있었습니다. 배란과 임신을 준비하면서 치솟았던 호르몬들은 임신이 되지 않으면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런 호르몬 변화를 매월 반복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몸에게 매우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게다가 배란 이후에는 수정란을 거부하지 않도록 면역기능이 떨어집니다. 스스로를 취약하게 하면서까지 번식의 목적을 이루려한 몸의 진화를 우리는 매월 감당해야하는 것이지요. 각자의 경험과 듣고 본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여성질환으로 여겨지는 갑상선 질병과 산후풍 또한 결국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비일상적으로 치솟았던 호르몬 수치들이 다시 평소의 균형상태로 돌아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증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월경 전 증후군도 호르몬의 극단적 변화로 인한 '금단'현상일 수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경구 피임약으로 월경을 조절하는 것은 어떨까요. 경구 피임약은 호르몬의 수치를 조절하여 배란을 막기 때문에 복용하면 월경이 멈춥니다. 이 약의 개발은 여성에게 성해방을 가져다주었기에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이지요. 경구 피임약이 호르몬의 널뜀에서 여성을 또 한 번 해방시켜 줄 수는 없는 걸까요. 저자는 경구 피임약의 제조가 호르몬의 수치가 극단적으로 높은 건강부국의 여성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집단의 여성에게 일관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약으로 인한 호르몬 조절은 임신, 수유 상태의 호르몬 상태와 다르기 때문에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하죠. 그 밖에 생리동기화(같은 공간에 머무는 여성들끼리 월경시기가 맞춰지는 것)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거나, 임신출산이 적합하지 않은 환경의 여성들은 오히려 월경 전에 기분이 나아진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토끼도둑 ⓒ (주)사이언스북스, 2015

"우리는 최고의 순간이자, 최악의 순간에 살고 있다"

 

 저자는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문장을 인용하면서 여성의 현실을 묘사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배고플 일 없이 더 오래 살게 된 우리는 문화적 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원시의 몸으로 신체적, 정서적 한계를 뛰어넘는 적응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위 그림은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에 나오는 인류의 진화 삽화입니다. 진화를 설명할 때 그림 속 인류선조는 항상 남자였지요. 이제 여성이 점차 허리를 펴고 걸어나갑니다. 처음엔 이 책을 페미니즘시각의 의학서로 선정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페미니즘적인 뜨거운 주장이 있다기보다는 "여성의 몸에 대해 내가 이해한 데까지 설명해주겠다."는 이 미지근한 다정함이 강점인 책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여성을 설명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대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의학분야는 물론이고 그 뿌리가 되는 진화의 역사에서도 여성은 배제되어 있었기에 여성만을 바라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페미니즘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으면서 김승섭 교수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진화의학은 현대 의학이 제시하는 정상범주에 의문을 제시하면서 정상이라는 개념을 확장시켰으며 질병현상의 궁극원인에 집중하면서 의학이 개입해야할 적당한 타이밍에 대해 고민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인류 보편의 건강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개선안을 내놓고 있지요. 진화의학과 사회보건처럼 거시적 차원에서 사안을 바라보면 나 이외의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는 것이 나에게도 이득이라는 결말로 이어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가 고백한 것처럼 진화의학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래서 지금 어쩌라고!'라는 심정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진화의 흐름을 그냥 따르는 것만이 답인건지 답답해지지요. 하지만 리처즈 도킨슨이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유전자의 폭정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것이 대항일지, 협상일지, 조화일지는 알 수 없으나 '여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여성'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그 여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 [페미니즘 더하기] 10주간 3권의 책을 읽으며 의학, 종교, 심리분야를 페미니즘의 필터로 살펴보고 인간, 여성 그리고 우리자신을 이해해보는 책모임입니다. 부분 참여나 특정책만 참여도 가능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https://forms.gle/amZTHYAQgozmWz2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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