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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벽돌책 읽기]: 호메로스 『일리아스』 후기

고래의노래 2026. 5. 11. 17:11

일리아스를 읽기 전에는 전쟁이야기에서 무언가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아무리 위대한 고전으로 불리는 글이라해도 전쟁상황이 배경이라면 인간의 잔인무도함 이외에 다른 내용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승자들의 허세 작렬하는 영웅담과 패자들을 향한 조롱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게 아닐까 했어요.

아니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아군과 적군의 삶을 모두 동등하게 바라보았고 일리아스 안에는 전쟁의 승패를 넘어선 인간의 삶이 압축되어 그려져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고 아들과 아내를 만나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헥토르와 다정했던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카이아 진영, 친구의 죽음에 분노를 가누지 못하고 헥토르의 시체를 마차로 끌고다니며 폭주하는 아킬레우스의 장면들을 읽으며 몇천년 전의 인류와 우리가 여전히 비슷하다는 사실에 신비로운 연결감을 느꼈습니다.

유한한 삶에서 무한한 명예를 쫓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실추되었을 때 떠오르는 들끓는 분노, 같은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전우애 그리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달픈 마음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의 슬픔...이 모든 강렬한 마음들이 죽음을 알지 못하는 신들과 죽을 운명인 인간의 대비를 큰 축으로 하여 펼쳐집니다. 번뜩이는 지혜와 비범한 용기, 어리석은 판단은 주로 신들이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연민은 오히려 인간의 것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부디 그대의 아버지를 떠올려주시구려. 신을 닮은 아킬레우스여. 나와 다를 바 없이 나이 들어 서글픈 늘그막의 문턱에 계신 그분 말이오..”

일리아스 이야기의 가장 클라이막스는 프리아모스가 죽은 아들의 시체를 돌려주길 간청하며 아킬레우스와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무장도 하지 않은 채 호위무사도 없이 프리아모스는 홀로 적장의 막사로 들어가 아킬레우스의 인간적 연민에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 둘은 각자의 처지에 통곡합니다.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주기로 하고 장례일정까지 휴전하기로 약속한 뒤 아킬레우스가 오랫만에 먹고 마시다 단잠에 빠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더라구요.

일리아스에서 죽음을 모르는 신들에게 일상은 단지 흥미거리일 뿐이지만, 죽을 운명인 인간은 자신들을 좌지우지하는 신들에게 순간순간 애처롭게 빌며 애원합니다. 그리고 신의 처분으로 내려지는 운명을 받아들이지요. ’필연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여성영성 책모임’에서 읽은 시몬 베유의 글에서도 반복하여 나오는 내용이어서 더 곰곰히 머물러보았네요.

이제 또하나의 운명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뒷세우스의 모험담, #오뒷세이아 를 14일 목요일부터 3개월간 격주로 읽어갑니다. 일리아스에서도 꾀돌이로 묘사되던 오뒷세우스에게 이번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몇천년 이후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줄지 기대가 됩니다. 우리, 함께 읽어요!

📍신청은 https://forms.gle/JVhmdLcbkEmWG3mn8

벽돌책인데 분량을 조금씩 나누어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답니다. 게다가 일리아스보다 얇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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