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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술로 만나는 여성과 나] 후기 : 창조하는 존재로서 나를 발견할 기회를 얻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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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술로 만나는 여성과 나] 후기 : 창조하는 존재로서 나를 발견할 기회를 얻다

고래의노래 2020. 12. 30. 16:30

 코로나 상황으로 직접적인 만남이 줄어들고 문화 프로그램들도 많이 축소되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위로하는 작업들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에 지친 여성들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 [책과 미술로 만나는 여성과 나] 프로그램이 12월 11일부터 19일까지 4회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갤러리와 책방의 문화 콜라보 – 기회를 주는 공간들의 만남


 [책과 미술로 만나는 여성과 나]는 서초구 내 문화공간들의 콜라보 프로젝트로, 여성, 책, 미술이라는 키워드 교집합 안에서 여성정체성을 돌아보고 미술작업을 통해 나를 표현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서초구 안의 문화 주체들끼리의 협업을 통해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반포동의 헬로에이치스페이스와 양재동의 책읽는 정원이 손을 잡았습니다. 헬로에이치스페이스는 미술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전시를 위해 공간을 대관하며 미술 클래스를 진행하는 갤러리 공간이고, 책읽는 정원은 밸류가든과 5명의 책방지기들이 함께 운영하는 시민참여형 프로젝트 책방으로 책판매와 책 중심의 모임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두 공간끼리 서로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공간이 중요시하는 가치과 주요 운영원리에서 공통되는 접점을 찾을 수 있었어요. 두 공간 모두 '선별과 기획'이라는 큐레이션을 통해서 운영되며 기회를 찾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었습니다. 헬로에이치스페이스는 작품전시와 판매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는 가려진 예술가들이 자신을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이고자 했고, 책읽는 정원은 책을 사랑하고 언젠가 책방을 꿈꾸는 시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면서 긍정적인 공동체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간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큐레이션이라는 공간지기의 필터로 주제와 내용이 선별되고 있었지요.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헬로에이치스페이스과 책읽는 정원은 '작품전시 + 책 큐레이션 소개 + 작품활동'으로 구성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기로 하고 주제를 '여성과 예술'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세 꼭지를 아래처럼 구체화 시켰지요.
 
1) 여성예술인들의 작품 전시 및 스몰토크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공간에 전시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직접 작품을 소개하고 여성정체성이 예술활동과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몰 토크 시간을 갖습니다. 
2) 여성, 삶, 미술에 대한 큐레이션 북토크
책방지기들이 여성, 삶, 미술에 대한 주제로 책을 큐레이션하여 소개합니다.
3) 미술활동 
북토크 내용과 이어지는 마음치유미술 & 자화상 드로잉 활동을 통해 직접 자신을 표현해봅니다.
그리고 미술작업으로 완성한 참가자분들의 작품을 공간에 전시하여 참여자들이 적극적인 문화 생산자로서 스스로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여성의 삶을 미술과 책이라는 표현양식이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고 현재 활동하는 지역 여성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신에게로 가져와 미술활동을 통해 표현해보고 전시의 기회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지요.
 같은 주제 안에서도 평일와 주말 프로그램의 포인트가 조금 달랐습니다. 평일 프로그램은 '여성의 삶'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여성에게 말을 거는 책과 그림들'을 주제로 한 큐레이션 북토크와 마음치유 미술활동으로 구성되었고, 주말 프로그램은 '예술하는 여성'에 초점을 두어 '그림 안과 밖의 여자들'이라는 주제의 큐레이션 북토크과 자화상 드로잉 활동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이웃 여성 예술가들의 여성과 예술가 사이


 프로그램에  참가해주신 3분 작가님들의 미술작품은 두 공간에 전시하고 온라인 프로그램 진행 시에는 회당 1분씩 작가분이 참여하셔서 작품을 화면으로 함께 감상하고 자신의 작품과 예술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일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신 여성 예술가는 조은혜 작가님과 곽민지 작가님이었습니다. 조은혜 작가님은 물의 이미지를 삶의 흐름과 연결하여 작업을 하고 계셨고, 곽민지 작가님은 여러 재료를 통해 여둠과 빛이라는 삶의 과정을 표현하고 계셨어요. 두 작가분에게 여성으로서의 삶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예술가로서의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여성과 예술가라는 두 정체성 사이의 관계는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에 더해, 여성 예술가들은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역할들과 자아 사이의 갈등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두 작가님께서는 이미 통과해본 어두운 시기에 대해, 또한 현재 감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셨어요. 여성이라면 흔히 경험하게 되는 상황이기에 많이 공감되었고 한편 위로도 되었습니다.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나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고픈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도 여쭤보았어요. 나를 위한 '이기적인' 돌봄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것과 내가 중요시하는 것의 가치를 좁게 바라보지 말고 멀리 바라보면서 현재 방해물로 보이는 상황이 나를 깊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 그렇다고 어둠을 통과할 때 억지로 힘을 내려하기보다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쉼을 충분히 가질 것 등 경험한 자만이 줄 수 있는 반짝이는 조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질문에는 작품들을 많이 감상해서 나의 취향을 알아간 후에 모방으로 먼저 시도해보면 좋다고 가이드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비록 화면상이었지만 삶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누다보니 멀게만 바라봤던 예술가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어요. 게다가 동시대에, 가까이에 살고 있는 여성예술가의 활동과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여성에게 말을 거는 책과 그림들 - 지금의 나를 알아가는 시간


 이어서 진행된 큐레이션 북토크는 책방지기가 가지고 있는 책 큐레이션 배경서사를 바탕으로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성의 삶이라는 물음표에 느낌표를 달아가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책과 예술작품들을 소개했어요. '여성에게 말을 거는 책과 그림들'이라는 주제 안에서  엄마와 딸, 여성의 자아분투, 여성의 말하기, 글쓰기, 본래의 나라는 4가지의 소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순서는 우리가 빚어진 지점에서부터 점점 나라는 모양을 다듬어가고 발견해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여성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바깥의 힘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인지한 후,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말과 글이라는 언어로 정의내리고 구분하면서 내 힘을 찾아가는 여정을 도와줄 책들과 영감을 주는 그림들을 소개했습니다.


 여성을 '어머니'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며 모성애 신화가 바깥으로부터 끊임없이 주입되지만 여성들이 목격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의 현실이기 쉽습니다. 여성들은 한 번도 어머니에게서 길러진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환희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건네받지 못했다는 것이죠. 여성들은 키운 것은 어머니라는 가면을 쓴 가부장제였습니다. 인정욕구와 나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내면에 스며듭니다. 이런 상태에서 여성들은 '그래야만 하는 당위'에 갇혀서 실제의 내 경험을 진짜 내 것으로 가져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당위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분열하는 여성들에게는 날것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이것이 나!'라는 것을 공감받을 수 있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책이나 예술처럼 누군가의 솔직한 표현을 접하는 것이 그 경험의 시작이 될 수 있겠지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투쟁을 의미합니다. 여성들은 지배계급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과 내면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지요. 여성의 창조성은 여성이 어떠한 상황이든 커다란 에너지로 우리를 흔듭니다. 그 창조성을 우리가 여성으로서 생에서 통과할 수 밖에 없는 역할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가 여성들의 과제겠지요. 창조하는 여성들이 책과 그림으로 고백하는 그 조율의 과정들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렇게 여성이 혼란스러움 속에서 투쟁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자신에 대해 글과 말로 언어화하는 것입니다. 글과 말로 내 삶을 이야기한다는 건 여성들에게 많은 경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야기 내용과는 상관없이 말한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투쟁에 대해서 솔직하게 쓴 여성들의 책과 자신의 상처와 혼란을 표현한 여성예술가들의 예술작품을 소개했습니다. 남성의 언어가 아닌 여성의 언어로 쓰여진 여성의 삶이 주는 빛나는 가치를 함께 느껴보았어요. 
 여성들은 혼란스러운 투쟁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만든 매듭과 내면의 나를 동시에 직시하고 본래의 나로 향해 갑니다. 본래의 나란 구체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직관을 믿는 상태입니다. 본래의 나로 향하는 여정은 즐겁고 기쁜 길만은 아닙니다. 그건 비록 바깥의 힘이 빚어낸 나일지라도, 이제까지의 나와 아프게 이별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 상실을 충분히 애도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가능성이면서도 한편 나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나'라는 여정을 잘 빚어가야겠지요. 


마음치유 미술활동 - 나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


 이렇게 큐레이션 북토크에서는 현재 나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의 위로를 주고 이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들과 그림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견뎌준 그 때의 나에게 감사하며 건강하게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허물을 벗고 거듭나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지요. 이어진 마음치유 미술활동에서는 이렇게 엿본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지금의 나를 격려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애쓴 나에게 위로와 격려, 응원의 편지를 보내고 미술작업을 통해 나를 위한 선물을 만들어보면서 지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초점을 두어보았어요.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큐레이션 북토크에서 이야기한대로 나의 언어로 나를 정의내리고 힘을 주는 작업이었습니다. 조금은 지친 나를 내가 토닥이는 것은 그 누구의 위로보다도 강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까지 감당해왔던 삶의 무게가 조금 아려서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나를 위해 눈물지으며 힘들었던 시간을 애도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에게 보내는 선물'을 만들어보았어요. 색종이와 여러 모양의 스티커로 종이 판을 장식했는데요, 오랫만에 가위질, 풀질을 해보고 그림을 그리니 정말 즐거웠습니다. 미술작업이라고 해서 시작 전부터 조금 위축되었었는데 손을 움직이다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고 하시더라구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는 진정한 자기표현의 예술가였던 어린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에게 편지를 쓰고 나를 위한 선물을 만들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주는 응원에 힘이 솟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첫 꼭지에서 여성 예술가분들이 조언해주셨던 '나만을 위한 시간 만들기'를 실제로 경험해본 활동이었네요. 


지금 이 자리의 한계에서 삶을 만들어가며


 코로나 상황으로 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분들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분들 모두에게 새로운 시도였고 모험이었이죠.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미술작품의 질감이나 재료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이야기를 나눌 땐 화면과 소리가 끊어지기도 해서 소통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시도해보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참여 작가 분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이를 낳고 작품활동할 시간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환경이었지만, 작품활동에 스스로 집중할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기획단에서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해주시면서 잘 맞을 거라고 독려해주셔서 참여를 결정했다. 막상 결심하고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없던 에너지가 솟았다. 이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여건이 아니면 작업을 할 엄두를 못내었는데, 이제 여건이 되는 대로 하게 되었다. 아이의 리듬에 따라 작업을 틈틈이 했고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프로그램을 '여성들을 위한 힐링타임'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참가 신청자분들의 힐링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힐링인 시간이구나 싶어서 뭉클해졌네요.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여성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주고 싶었던 가치를 스스로도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기획, 진행, 참여하는 모든 여성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발 내딛는 기회’를 선물받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이 역할의 무게에 힘들어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아의 어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삶을 긴 여정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속에서 만들어낸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결과 또한 사랑하는 것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그런 한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반짝이는 깨달음들도 있습니다. 


 참가자 분들의 미술활동 작품들이 헬로에이치스페이스와 책읽는 정원 두 공간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작가분들의 미술작품과 함께 말이죠. 단순히 예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우리는 하루하루를 새롭게 선택하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두가 발견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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