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융심리학과 신비로운 기독교] 읽기 1~3장

고래의노래 2025. 7. 2. 22:50

 

"요한복음은...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무의식과 접촉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사렛 예수의 실존을 알려준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 한 문장. 서문부터 기대된다. 


[제1장 중심의 창조성: 프롤로그] / 요한복음 1:1-18 29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가톨릭 성서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육신이라는 단어대신 사람이 쓰였다. 육신이 되셨다는 표현보다는 나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와 같은 취약함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육'을 죄를 지을 성향이라고 봤을 때도 연결되는 듯 하다. 

"몸에 대한 성서적 관점은 하느님이 몸과 영혼 모두를 창조하셨다는 것"
"우리는 하느님이 이 세상 안에서 성육신됨으로써 그리스도가 우리 각자 안에서 성육신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몸의 의미에 대해 간직하고픈 문구들.

[제2장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 신적인 로고스] / 요한복음 1:1-5 36
[제3장 기독교인 제자들: 처음 제자들] / 요한복음 1:35-51 50


언어의 한계 그리고 힘에 대해 최근 들어 계속 느끼고 있었다. 같은 단어라도 각자가 가진 단어의 의미가 다르기에 대화를 하기 전에 이를 맞춰놓지 않으면 동상이몽으로 흐르게 된다. 아주 단순한 문구조차도 소통이 안되는 걸 공동체에서 거듭 경험하면서 언어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 

경험의 언어화가 주는 치유력이 엄청 나지만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언어는 얼마나 초라한가. 그래서 온전한 소통이란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 가능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다른 자아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도 이런 맥락일 꺼다. 그 나라의 언어가 문화 속에서 다듬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 사회가 중요시하는 가치들과 태도가 언어에 스며든다. 마치 영화 "컨택트"에서 외계어를 습득한 언어학자가 미래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다른 관점과 능력을 체화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저자는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라는 성경 문구 속의 말씀은 로고스이며 이것은 단지 언어라는 뜻 이상의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문명 여신인 인안나 여신이 인간문화의 신 엔키한테 훔친 "메"가 로고스와 비슷한 의미아닐까. 문명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것이 생기게 하는 힘. 인간의 이성.

"로고스가 신이며 또한 모든 생명과 모든 지혜의 원천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이성은 그것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

미래의 인류의 소통수단은 언어가 아닌 텔레파시이길 희망한다. ㅎㅎ 꿈작업자 제레미 테일러는 꿈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연습하고있다고 얘기하기도 하던데…

그래도 여전히 언어의 힘을 느낀다. 성당 미사 때 독서를 하면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말씀의 에너지가 퍼진다고 느낀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고 죽이기도 하지 않나. 
성경 말씀을 가운데 두고 이렇게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것도 참 좋다. 각자의 진실이 모여 하나의 빛을 이루는 모양이 정겹다. 

아, 가톨릭 성경에서는 "어둠이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되어있는데 책에서는 "어둠이 그를 이기지 못한다."라고 해석되었던데, 이건 또 무슨 차이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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